수 만리 떠나는 길
동행한 어떤 사랑
질곡의 육십 년이
거실에 놓여있고
세월도
비켜가는지 오동 꽃이 피었다

이방인 고된 삶에도
나에겐 경전 같던
흘려 쓴 숭덕광업*(崇德廣業)
곰삭은 옷 칠조차
향기로
번져나오며 지친 나를 달랜다

삭이고 다독이며 홀로선 유배의 성
초라한 자존심에 중년은 구겨지고
떨잠에 배어 나오는 푸른 빛 눈물 한 줌
어쩌면 고심하며
종장을 생각하듯
반백 년 불이 붙고 타오른 오동 꽃은
결 고운
화첩이 되어 어머니로 놓여있다.

 

*떨잠=조선시대 왕족이나 귀족들이 사용하던 머리장신구
*숭덕광업(崇德廣業) 출전(出典)= 역경(易經) 이란 덕(德)을 쌓는데 힘쓰고
사업(事業)이나 학업(學業)을 넓게 펼친다는 뜻.

 


당선소감

오늘도 로키는 적막한 정적을 드리우며 그 자리를 지킵니다. 봄이 오는 소리를 듣기 위해 찾아간 Mt. Edith Cavell은 비파를 뜯으며 눈덩이를 떨구고 있었습니다.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일상 속에서 이방인의 무디어진 언어를 추스를 수 있었던 것은, 모국어를 통하여 고향과 어머니, 그리고, 두고 온 산하를 기억해내는 일이었습니다.
절필의 긴 침묵을 깨고 써 내려간 3악장의 아다지오, “떨잠, 그리고 이방인 눈물 한 줌”이 긴 겨울을 깬 적멸의 흔적으로, 로키를 넘어 봄소식으로 전해진 날, 이곳엔 또 눈이 내렸습니다. 멈춰 섰던 시간 내내, 알버타의 광활한 대평원을 홀로 걷다가 장엄한 로키의 매력에 빠졌던 시간들,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더 이상 낯선 것은 없습니다. 부족한 저의 시를 선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깊은 감사를 올립니다. 경계인의 삶이 비록 고되더라도 마주한 로키의 기개처럼 당당해지고 싶습니다. 곁에서 용기를 심어준 사랑하는 가족들, 그리고 지인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며, 작지만 세상에 스며들 수 있는 글을 쓰도록 창작에 매진하겠습니다.
거듭 캐나다 한국문인협회의 발전을 기원하면서 오래도록 우람한 숨소리로 평원을 지키는 행복한 나무이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글쓴이 | 이상목
한양대학교 대학원 건축공학과 졸업(건축사), 한국문인협회(서울) 회원, 캐나다 한국문협 부회장(전), 시조문학 편집위원, 현 Alberta 거주 , 한국시조시인협회 상임위원 역임, 2008 The Story That Brought Me Here 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