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누구에게나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때 그 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넉넉해지고,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는 기분 좋은 일들. 어쩜 누구나 웃음이 번지게 하는 그런 노란색 추억 하나쯤은 마음속에 담고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현실의 크고 작은 시련 앞에서도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조금의 여유는 간직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순간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노란색 추억 여행을 떠나곤 한다. 그리고 어린아이로 돌아가 그 시절의 소박한 행복 앞에 자족하게 된다. 커다란 쿠키 상자를 탁하고 열었다. 고소하고 달달한 냄새가 코끝에 와 닿는 순간,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엄마, 별 과자! 별 과자 만들어 줘.”
“너희는 매일 별 과자 타령이니. 조금 기다려 봐.”
나는 두 살 어린 동생과 별 과자를 해달라며 엄마를 조르는 일이 많았다. 눈처럼 하얀 밀가루에 달걀 이랑 우유랑 베이킹파우더를 넣어 조물거리면 금세 말랑말랑한 반죽이 되었다. 엄마가 인심 좋게 뚝 떼어 준 반죽을 한 덩이씩 받아든 우리 자매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반죽을 굴리고, 당기고, 두드리며 어떤 모양을 만들지 한참을 궁리했다. 반죽은 오리가 되기도 하고, 자동차가 되었다가 새가 되어 하늘을 날아갔다. 또 기다란 수염이 되어 어린 동생의 코밑에 올려지기도 하고, 반지가 되어 가운뎃손가락에 보란 듯이 끼워지기도 했다. 하얗고 보드랍던 반죽은 어느새 거무스름하게 변해서 눈처럼 하얀 가루를 날리며 말라갔다. 엄마는 빠른 손놀림으로 반죽을 밀어 이불처럼 넓게 폈다.
“우와! 이제 별 만들 차례다. 별!”
동생의 환호와 함께 우리는 별 모양의 과자 틀을 찾아 들었다. 외국 영화에서 보면 온갖 모양의 과자 틀이 있어서 만들어 내놓는 쿠키의 모양도 가지각색이었다. 사람 모양도 있고, 크리스마스트리, 굴뚝이 있는 집, 하트 모양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 집에 있는 과자 틀은 오직 별 모양뿐이었다. 그것도 하나뿐이라 동생이 한 번 내가 한 번 차례를 기다려서 써야만 했다.
“언니, 빨리…. 빨리. 빨리하라고.”
나는 동생의 재촉에 급하게 별 모양 반죽을 찍어 냈다. 별 모양 반죽을 하나씩 떼어낼 때마다 나는 위업을 달성한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양 가슴이 벅차올랐다. 별 모양 하나하나에 담긴 어린아이의 설렘과 말로 다할 수 없는 만족감은 기다란 깃털로 겨드랑이를 간질일 때 터져 나오는 웃음처럼 해맑고 순수한 것이었다.
“자, 그럼 어디 한 번 튀겨 볼까?”
엄마는 별 모양 반죽을 기름에 튀기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지금은 어느 집이나 작은 오븐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그래서 기름에 튀겨내는 번거로움 없이도 쉽게 쿠키를 만들어 먹을 수 있다. 그러나 그때는 오목한 프라이팬에 기름을 따르고 기름이 달구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팬 위에 작은 반죽 조각을 떨어뜨려 찌직 소리를 내면 우리 자매는 환희에 찬 눈빛을 교환하여 서로의 손을 맞부딪쳤다.
“앗싸, 이제 반죽 넣어도 되죠?”
엄마의 허락이 떨어지면 기름이 담긴 팬 안에 조심조심 별 모양 반죽을 집어넣었다. 부시식 하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 퍼졌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흡족한 미소를 주고받았다. 별 과자는 노릇노릇 기름에 튀겨져 접시 위에 올려졌다. 그럼 엄마는 하얀 설탕을 그 위에 솔솔 뿌리고는 먹어도 된다는 신호로 별 과자 가득한 접시를 우리 앞에 내밀었다. 나는 갈색빛의 별 과자가 하늘로 둥둥 떠오르는 상상을 하며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따듯 별 과자 하나를 높이 들어 입속으로 끌어내린다.
“아, 맛있어!”
“역시, 별 과자가 최고야!”
엄지를 척 들어 올리며 감탄사를 연발하던 우리 자매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가 되어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런 우리를 바라보던 엄마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별 과자와 함께 하는 나의 노란색 추억 여행은 언제나 소소한 일상의 행복과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남보다 많은 것을 소유하고, 경쟁에서 앞서야만 만족이 있을 거라는 세속적인 생각이 얼마나 천박한가를 새삼 느끼게 한다. 넘치도록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도 책 한 권 읽을 여유가 없고, 이웃의 이야기에 단 오분도 귀 기울이지 못하는 메마른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나! 유년 시절, 별 과자를 만들며 누렸던 작은 일상의 기쁨은 어른이 된 지금도 문득문득 찾아와 똑똑 마음에 문을 두드린다. 그리고 작은 것에 깃든 커다란 가치를 잊지 말라고 말한다. 고소한 별 과자 냄새가 코끝에 와 닿는 듯 하다. 한입 베어 물면 바삭거리는 기분 좋은 식감에 마냥 행복했던 그 시절, 그 달콤한 추억이 있어 나는 오늘도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내가 찾는 행복은 어쩜 아주 가까이에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당선소감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우리의 삶에 시간의 점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시간의 점이란 사람의 마음속에 남아 한 줄기 빛처럼 고달픈 삶을 밝혀주고, 위로가 되어주는 순간을 말합니다. 한카 문학상에 응모하면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시간의 점을 찾아보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철없던 어린 시절, 엄마를 졸라서 만들어 먹던 달콤한 별과자의 추억은 다 자란 지금에도 입가에 미소를 꽃피우는 따뜻한 순간입니다. 평범한 일상에서 찾은 나의 시간의 점 하나가 한카 문학상 당선이라는 뜻밖의 선물을 안겨 주었습니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내 안에 잠자고 있던 글쓰기의 새싹이 움트고 자라나길 조심스럽게 기대해 봅니다. 지금의 저를 있게 해 준 사랑하는 가족과 항상 곁에서 힘이 되어 주신 모든 분께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수상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그리고 선택해주신 심사위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글쓴이 | 권은경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석사). 출판사에서 오랫동안 어린이 책을 만들었고, 지금은 캐나다 토론토에 살며 어린이를 위한 글을 쓰고 있음. 저서 <토끼와 호랑이>, <이것도 예술이야>, <요리조리 먼저 보는 사회 교과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