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그 눈동자 입술은/내 가슴에 있네.//바람이 불고/비가 올 때도/나는/저 유리창 밖 가로등/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그 벤치 위에/나뭇잎은 떨어지고/나뭇잎은 흙이 되고/나뭇잎에 덮여서/우리들 /사랑이/사라진다 해도//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그 눈동자 입술은/내 가슴에 있네.//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박인환 시 ’세월이 가면’ 전문)

화장실 대형 거울 앞에서 나는 내 사랑하는 시인의 시를 한 편 암송한다. 세월이 가서 내 머리가 백발이 되니 기억력도 예전 같지 못하다. 자꾸 잊어버린다. 하지만 가수 박인희가 부른 노랫말을 떠올리면 3연까지는 거뜬하다. 마지막 연이 잘 외어지지 않는다. 노랫말의 마지막은 시의 마지막 연과 달리 그냥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다. 시는 앞 구절이 반복되는 데도 자꾸 노래 가사가 입에서 나온다. 한 세월 두고 애창곡이었던 노래는 내 기억 속에서 단단히 자리 잡았다.
지금도 그러하겠지만 우리 전후(戰後) 세대는 중학교부터 문학을 배웠다. 국어시간에 자신도 문학도인 선생님이 눈을 지긋이 감고 옛 시인의 시를 외우는 것을 보노라면 나도 닮고 싶었다. 대구 계성학교 시절, 나는 문학이 좋아 문예반에 들어갔고, 하교 후 친구들과 청라언덕을 넘을 때면 화사한 백합을 보며 잠시 멈춰 시 암송시합을 했다. 김소월의 ‘초혼’, 김영랑의 ‘산유화’, 박목월의 ‘나그네’등을 한 줄 틀리지 않고 외우면 틀린 친구가 나를 업고 언덕을 내려 갔다. 내가 틀리면 그 반대였다.
그러한 서정과 낭만이 나를 평생 문학도로 만들었다. 때로는 돈도 되지 않는 문학이 거추장스럽고 부담스러웠지만 대학에서, 군대에서, 직장에서도 글을 써서 발표했다. 서정과 낭만이 나를 키웠다.
그러나 세월의 바람 속에서 나는 한가하게 문학놀이만 할 수 없었다. 입만 열면 줄줄줄 터져 나오던 주옥 같은 명시들은 나를 버렸다. 명예와 지위와 돈벌이가 내게는 우선이었다. 나는 시 한 줄 읊을 여유가 없었다.
한국의 재능 시 낭송협회 의 첫 해외 지회인 캐나다 지회를 만들게 된 것은 6년전이었다. 세월의 뒤안길에서 흰머리 희끗희끗 날리는 자신을 발견한 것은 어느 정도 밴쿠버 생활을 한 후였다. 못다한 꿈에 대한 갈증이 나를 다시 문학으로 인도했다. 해서 2009년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를 만들어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려 여생을 살아 왔다. 즈음에 한국의 시 낭송 열풍을 알았다.
불모의 밴쿠버에 시 낭송 열기를 받아들이려고 한국의 여러 시 낭송단체에 수소문했다. 그 중 역사가 40년 가까이 된 재능시낭송협회를 알게 되었다. ‘재능’이라는 기업체의 이름이 붙어 조금 저어했다. 업체의 홍보에 이용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재능그룹의 박성훈 회장이 문학도여서 기업차원에서 적극 후원하고 있다는 것 이외에는 여느 시 낭송 단체와 다를 바 없었다.
해외라서 참여 및 협조의 어려움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회장단에서 심사 숙고한 끝에 캐나다지회를 승인해 주었다. 2013년 7월 25일 여러 시 낭송 애호교민들이 모인 가운데 창립행사를 하였다.
동 협회는 서울의 중앙회를 비롯,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울산, 강원, 충북, 충남, 경북, 전남, 전북, 전남, 경남, 밀양 등에 지회 및 분회가 있다. 지역별 예선대회를 거쳐 연말에는 서울에서 결선대회를 거친다. 이 대회는 재능그룹의 문화지원단체인 ‘재능문화’와 한국시인협회가 공동 주최한다. 그리고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교원단체 총연합회가 후원한다. 본선 수상자는 대상 및 금, 은,동, 장려상으로 구분하여 푸짐한 상금 및 한국시인협회의 시 낭송가 인증서를 받는다. 이들은 공식적인 시 낭송가로서 시 낭송 공연 및 강의 등에 참여한다.
캐나다 지회도 시 낭송대회에 경선자를 보내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러나 길이 열렸다. 2018년부터 예선은 온라인으로 참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서 여섯 명의 회원들이 참여해서 두 명이 예선에 들었다.
허나 개인사정으로 본선에 참여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내가 밴쿠버에서 시 낭송열풍을 일으킬 때다 되었다 생각한 것이다.  전문 시 낭송가를 발굴하고, 생활 속의 시 낭송으로 하나의 즐거움을 우리네 삶에 더할 때가 되었다. 참가자가 많으면 우리도 자체 지역예선대회를 거쳐 본선대회 참가자를 파견하거나 한국의 심사위원을 초빙하여 본선심사를 하겠다는 야무진 꿈도 가지게 되었다.
‘누가 시 한편도 외워 읊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1967년 처음 ‘시인만세’ 대회를 조직, 한국 시 낭송대중화를 시작한 협회 김성우 전 고문의 저서 ‘시 낭송교실’서문에 있는 말이다. 시 낭송은 한국인의 얼과 정서를 심어준다. 문자가 발견되기 전에도 사람들은 옛 영웅들의 이야기나 보통사람들의 삶 등을 외어서 후대에 전했다. 소설 ‘뿌리’의 저자 알렉스 헤일리가 조상 쿤타킨테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아프리카 감비아 강 부근에서 수백 년을 이어 조상의 계보를 읊어온 만딩카의 역사시 낭송가 때문이었다.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에서는 시가 잔치에서 낭송되는 장면이 나온다. 동양에서도 고대 중국의 주(周) 문왕(文王)의 모친 태임이 문왕을 잉태하자 태교의 방법으로 낭송가로 하여금 시를 읽게 하였다는 이야기가 ‘열녀전’에 전해지고 있다.
사람을 사람답게, 민족을 민족답게, 국민을 국민답게 하는 최고의 교육수단이 시 낭송이다. 특히 각국의 민족시를 통해 그 민족의 정체성을 찾고, 국민 시를 통해 애국심을 고취할 수 있다. 캐나다 한국 문협이 매년 개최하는 ‘한카문학제’ 초기에 초등학교 고학년 생 둘이 참가하여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낭송한 적이 있었다. 일제 치하에서 고향을 그리면서 신음하다 감옥에서 숨진 윤동주 시인의 애절한 시어에 참석자 모두가 감격하였고,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의 정서와 감정을 도탑게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른들에게는 고국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하는 시간이었고 청소년들에게는 민족과 조국의 정체성을 피부로 느끼게 하였다. 또 다른 해에는 다문화 가정의 자녀 둘이 참석하여 멋들어지게 한국 시를 낭송하였는데, 한국인 어머니의 조국사랑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다들 훌쩍 성장했겠지만 그 초롱 한 ‘눈동자’와 한국어 시를 낭송하던 그 자랑스런 여린 ‘입술’ 내 가슴에 아직 남아 있다.
2019년 온라인 시 낭송대회가 시작되었다. 2,3세대만 되어도 한국인의 뿌리를 잊어버리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해버리는 차세대들을 위해 시 낭송열풍의 촛불을 들고 싶다. 몸은 타국에 있지만 마음은 금잔디 푸른 동산 옛 고향 잊지 못하는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아가는 이주 1세대들에게는 향수를 달래고 위안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한 줄기 불빛을 선사하고 싶다. 하나의 촛불이 둘이 되고 셋이 되고, 마침내 밴쿠버 교민사회를 훤히 비출 때쯤이면 우리들의 자긍심과 문화민족으로서의 자존심은 더불어 살아가는 타 문화민족들에게 부러움과 존중의 대상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문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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