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인다. 모르면 손해다. 그래서 사람은 평생을 배워야 한다.
마이애미 숙소인 코트 야드 메리어트 호텔에서 순회 관광버스 역까지 네 블록 거리를 어제 아침도 오늘 아침도 걸어갔다. 날씨는 어제보다 한결 부드러워져서 걷기 좋았지만 호텔 부근에서 버스 역까지 가는 무료 경전철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 좀 억울하다. 이름하여 메트로무버. 갑작스레 추워진 어제 아침, 편안하게 경전철 타고 갔더라면 ‘따뜻한 남쪽나라 마이애미’에 대한 기대가 덜 깨어졌을 터인데.
세 개의 노선을 가진 메트로무버는 21개의 역이 있다. 외곽에서 도심으로 오는 사람들을 위해 주로 다운타운 중심을 도는데 주 전철인 메트로레일 또는 메트로버스 노선과 연결되어 사통팔달 마이애미의 편리함을 추구한다. 1987년부터 운행되어 점차 노선이 확장되어 왔다. 2002년까지만 해도 1인당 25센트의 요금을 받았지만, 그 후 무료로 전환된다. 하루 평균 3만 명이 이용한다는 이 경전철을 왜 무료로 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사업’을 잘 모르는 사람으로 간주할 수밖에.
공짜 좋아하는 것은 남녀노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동소이. 심심한 사람이 괜히 다운타운에 들어 커피 한 잔 마시고 햄버거 한 개 사 먹고 할 터. 하물며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려와 다운타운에 돈을 뿌린다면? 정작은 메트로무버의 무료화 후 메트로레일과 메트로버스의 수익이 더 늘어났기 때문. 무료 경전철은 미끼상품이 된 것이다.
좀 불편한 것은 좌석이 구석에 두세 명 앉을 공간 밖에 없다는 것이다. 공짜라고 몇 번씩이나 편안하게 앉아서 왕복하지 말라는 의도일까? 하긴 좌석이 있다면 노숙자나 무직자의 전용열차가 될 지도 모른다. 외곽에서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이용해야 할 차량인데.
출퇴근 시간을 벗어난다 치자. 춘하추동 마이애미에 몰려오는 관광객들이 도심으로 들어와서 돈을 쓰라고 무료 경전철을 만들었는데, 뉴욕 지하철처럼 지저분해진다면 오던 관광객들도 혼비백산 도망갈 것이다. 뿐이랴. 마이애미 경전철에는 똥오줌 천지더라는 말까지 동네방네 뿌려댈 것이다. 해서 아예 좌석을 많이 두지 않았나 보다. 있는 좌석도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어서 오래 앉아 있으면 엉덩이가 배길 듯하다. 서서 가쇼. 서서 가. 빨리빨리 이 정거장, 저 정거장 내려 쇼핑하고 식사하고 잠자고 하는 데 돈이나 많이 쓰고 가쇼. 경전철이 사람을 꼬이는 듯하다.
어제 이어 오늘은 해변 관광이다. 순환 관광버스가 출발하는 센트럴 역에서 10시 버스를 탄다. 도심 방향은 레드 라인. 해변 방향은 블루 라인. 세계 유명 관광지에서는 어디나 볼 수 있다는 빅버스(Big Bus). 지붕 없는 2층으로 올라 가려니 바람이 사납다. 기겁하고 내려 오는데 팔순이 되어 가는 여행자클럽 동행은 아예 2층 앞 좌석에 앉아 휴대폰이 아닌 전문가용 일제 카메라의 셔터를 연신 눌러 댄다. 한참(?) 젊은 사람이 바람 피하려 아래층으로 내려온 것이 창피해진다. 그러나 7박 8일의 카리브해 유람선 관광이 이번 여행의 주목적. 행여 감기라도 걸리면 일정을 망치려니, 자위한다.
마이애미 도심과 해변 사이를 가르는 비스케인 만 위로 맥아서 카즈웨이 다리. 차창으로 보이는 유람선 선착장에는 대여섯대의 크루즈가 정박해 있다. 그것 자체가 구경거리다. 우리 일행이 타고 갈 카니발 크루즈도 흑, 백, 적의 고래 꼬리 형상을 한 후미가 마음 설레게 한다. 미지에의 도전.
반대로 1513년 후안 폰세 데 레온이 처음 상륙하였을 때, 이들의 배를 본 원주민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 배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덩치 큰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민족을 말살하고 문화를 파괴할 줄은 꿈에도 몰랐으리라. 무심한 세월은 흐르고 이제는 학살자가 아닌 구경꾼들이 몰려오는 포구. 공사장의 원주민 인부가 어쩐지 슬퍼 보인다.
버스는 사우스비치 입구에 들어선다. 비로소 관광지 느낌이 난다. 도심에 숙소를 정했던 것은 크루즈 터미날과도 가깝지만, 볼거리가 도심에 몰려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심은 밴쿠버나 또는 서울이나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 주었을 뿐이다. 야자나무 가로수가 즐비하다는 것 이외에는.
미국드라마 베이워치(Bay Watch)의 촬영장소였다는 사우스비치를 보기 위해 버스에서 내렸다. 정류장 맞은편 야자 가로수에는 야자 열매가 주렁주렁, 제 무게를 감당 못 하고 축 늘어져 있었다. 시청 작업반들이 사다리 트럭을 움직이면서 열매 달린 가지를 톱으로 베고 있었다. 그냥 방치하면 시도 때도 없이 낙과하여 차량흐름을 방해할 수 있을 터. 제법 익은 야자가 가지 채로 떨어지는 것이 볼만하다. 관광객들이 가서 몇 개 달라고 하니 인심 좋게 서너 개씩 건네준다. 입을 연 관광객의 배낭이 금세 배부르다.

사실, 마이애미 사우스 비치를 생전 처음 보았더라면 그 밀가루처럼 부드럽고 하얀 모래와 햇볕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물빛, 그리고 포말 지는 창파에 넋을 잃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칸쿤 해변을 본 나로서는 별 감흥이 없다. 해운대만 못하잖아. 아내에게 중얼거린다. 나이 드니 더하다. 50대 초반에 미국 그랜드 캐니언을 보고 그 웅장함에 감탄했었는데, 동행했던 70대 초반의 남자분이 그랬다. 뭐, 별거 없네. 그냥 흙덩이잖아. 그래서 여행은 젊어서 많이 다녀야 한다. 곱씹을 여행 추억이 많다면 늙는다는 것이 마냥 서럽지만은 않을 것이다.
느낌 온 것 하나. 해변가 해상구조물을 보고 1990년대 방영된 데이빗 핫셀호프의 ‘베이워치;SOS 해상구조대’를 떠올린 것. 수영하다 허우적대는 사람만 구하는 것이 해상구조대인 줄 알았는데 바다로 마약을 운송하는 악당들과의 ‘한판’이 실감 나게 전개되던 드라마였다. 2017년 영화로 리메이크 되었는데, 우람한 근육질을 자랑하던 젊은 날의 데이빗이 선배 해상구조대로 깜짝 출연했다. 나보다 두 살 적은 그도 세월의 흐름은 비껴가지 못한 듯, 희끗희끗한 머리에 늘어지는 주름살은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게 했다.

문인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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