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치는 그 과수원에서 날일을 했다. 만약 과수원이 팔리기라도 하면 일할곳이 마땅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정도치는 과수원일에는 이골이 난 사람이다. 과수원에서 태어나 어릴때부터 보고 자랐고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아부지 일을 도우며 배웠다.
그 어느해 인가 수확기를 앞두고 모진 태풍에 나무가 꺽이고 쓰러지고 뿌리가 뽑히는 수난만 당하지 않았어도 정도치의 젊은날은 그처럼 외롭지는 않았을게다. 아버지는 홧병으로 돌아 가셨고 그 얼마후에 어머니도 따라 가셨다. 도치는 과수원을 떠돌아 다니며 외로운 늑대처럼 품일로 살아갔다.
오지 마을 가을 날씨는 누구에겐가 꼭 보여주고 싶은 아쉬움을 남긴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하늘과 잘 익은 꽃게 딱지 같은 단풍사이로 산을 타고 오르내리는 구름하며 집집마다 늘어진 감나무의 정취만 봐도 금방 알수 있다.
스피커에서 정도치네 돌잔치가 있으니 마을회관으로 오시라는 마을 방송이 산 계곡을 메아리 친다. 빗자루로 쓸어 버린 것 같이 고요만이 감돌던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마을 사람들이 내려온다. 어떤 분은 기억자로 굽은 허리를 지팡이로 버티고 또 다른 노인들은 시옷자로 유모차에 의지해서 세월에 지친 발걸음을 무겁게 뗀다. 여러 번이나 반복되던 안내 방송이 끝나자 방정맞은 메들리 음악이 흥을 돋운다.
마을 사람들이 술잔을 걸치고 제법 잘 어우러져 있을 때 이다. 정도치의 장인 어른이 참지 못하고 사위를 치켜 세운다.
“고맙네 정서방. 자네 때문에 내 딸이 살아서 호강을 하는구먼”
도치가 민망해 하며 몸 둘바를 모르다가 겨우 권씨 어른을 가리킨다.
“그건 지가 아니구유 여기 께신 권씨 어르신 비방 때문이래유”
“아이구 감사합니다 어르신 고마워유..”
고개를 깊이 숙여 감사를 했다. 권씨 할매가 후후훗 웃었다.
“감사를 받아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디?”
“그럼 그분이 누구신데유?”
“우리 아부지유”
“그분은 어디 계신데유?”
“이사 갔시유..”
“어디루유?”
“북망 산천이유. 호호호”
마을 사람들이 왁자지껄 웃는다.
“염려 마시유. 내가 곧 뒷따라 갈 것 같으니께 잘 전하지유 호호호. 그런디 아무리 좋은 비방이 있다한들 조석으로 잘 끓여 먹이지 않으면 무슨소용이 있겠시유? 새신랑 공이 맞고먼유. 후후후”
모두들 즐거워하며 손벽을 친다.
그날 밤이다. 안사람이 봉투를 내밀며 당신이 예전에 맡겨둔 것이라며 아부지가 주셨다고 한다. 도치는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안다. 안사람과 생면부지 상견례를 치루던 밤이다 장인 어른께서 딸을 부탁한다는 간절한 말과 함께 앞으로 약도 써야하고 생활도 해야 하는데 자네가 잘 쓰면 생활의 터전도 마련할 수 있으니 귀하게 쓰라고 했다.
그러나 도치는 제게도 쓸만큼 있다며 사양했다.
서로 밀고 당기기를 거듭하다가 결국 장인어른께 맏겨 두기로 한것이다.
“그러니께 이 봉투는 애초부터 내것이 아니래유”
모든 얘기를 듣고난 안사람은 가벼운 탄식을 한다. 잠시 침묵이 흐른후 입을 떼었다.
“이 봉투 우리가 쓰면 안되겠시유……?”
도치가 깜짝 놀라 거부하는 눈으로 바라본다.
“아부지가 우리를 위해 주신것이니께 감사합니다 하고 받으면 될 것 같은디유?”
이 여자가 언제부터 뻔뻔스러워 졌는가? 두 아이의 어미가 되더니 강해진 것일까?
도치가 가늠을 못하고 있을 때 아내가 말을 했다.
“그렇게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벌어서 갚아 드려유.”
매봉산을 멀리 뒤로 하고 마을 옆으로 청솔 과수원이 있다. 눈 사태가 난듯 한창 흩트러지게 사과꽃이 피어 있다.
모를 심듯 반듯하게 서 있는 과수들과 얌전하게 심어진 개나리 울타리가 정겹다.
전 과수원 주인이 떠날 때 눈물 까지 지으며 자녀 여섯을 모두 제자리로 돌아 가게 헀고 이제 힘이 다해 자식에게 의탁하러가게 되었으나 내 평생의 소원은 다 이루어진 셈이라고 하면서 남저지 소원을 줄라니께 받게, 공을 던져주는 형상으로 정도치에게 던치며 껄걸 웃었다.
산골 오지 마을은 고요로 시작해서 늘 적막으로 끝난다.
하늘을 가르고 날아드는 산새 소리에도 반가운 미소가 감돌았고 할일없이 지져대는 개 짖음 소리에도 친근감을 느낀다.
비가 오다 햇빛이 들면 ‘호랑이가 장가가는 가베’ 하면서 산다.
과수원 저 쪽에서 정적의 틈을 깨고 장난감 나팔 소리가 났다. 첫번째 나팔에서 ‘삐익’ 소리가 울리면 두번째 나팔에서 ‘뻬엑’ 하고 소리가 난다.
‘삐익-삐익 뻬엑-뻬엑……’
큰애가 앞장을 서고 아직 귀저귀를 떼지못한 둘째가 등짐장사처럼 작은 엉덩이를 씰룩이며 그 뒤를 따른다.
샛참 바구니를 이고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정도치 안사람은 마냥 즐겁다.
나팔소리가 한참이나 복작거리다가 합창이나 하듯 ‘아빠 어딧시유~~’ 부르 짓는다.
일을 하던 정도치가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풀어 해친 가슴으로 산적처럼 나무사이에서 나타난다.
“아부지 여기 있는디?” 애들은 달려가 안긴다.
참지 못할 뿌듯함이 온몸으로 스며든다. 사과나무 그늘에 자리를 펴고 소풍이라도 나온듯 둘러 앉아 새참을 먹는다.
그래봐야 시퍼런 김치쪽 하고 쑥털터리가 전부지만 쓸데없이 욕심을 내며 다투는 아이들의 모습만 봐도 즐거움을 더한다.
누가 아이들을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고 했는가?
그 자라남을 측량할수 없기 때문이리라.
아이들이 학교 가기를 시작했다. 큰길까지 걸어 나가면 세마을 거쳐 읍내까지 버스가 다닌다. 읍내에는 중학교까지 있었다. 힘든 등교 길이 었으나 운동회 두어번 소풍 몇번 따라간 것이 전부인데 빛나는 졸업장을 받았다.
중학교는 더 싱겁다. 여름방학때 더우실 냇가에서 자라다만 잡고기 한주먹 잡아다가 끓여먹던게 전부다. 고등학교는 도시에 나가 하숙을 시켰다.
큰애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나도 고등학교 까지는 가야 겠다고 둘째가 안달을 했고..큰애는 전문 대학교라도 나와야 취직을 한다며 고집을 부리더니 대학을 졸업하고 자동차 부품회사에 취직을 했다.
그리곤 몇해후다
개들이 어지럽게 짖어 댔다.
과수원 앞에 낯선 차가 세워지고 큰애가 내리더니 얌전을 떨며 각시가 내린다. 그들은 안으로 들어서자 아부지 며느리감 이라며 대뜸 인사부터한다.
알고보니 장은 파한장이요 이제 결혼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정도치는 괫심한 생각에 말문을 닫고 있었으나 저질러진 일이니 어쩌겠냐는 안사람의 말에 서둘러 결혼을 시켰다.
그 얼마 후엔 처가집 동내에 좋은 혼처가 있다고 해서 둘째마져 시집을 보냈다.
세월은 때를 따라 열매를 맺게하고 아이들이 있어 즐거웠던 시절은 대보름날 널 뛰듯 한순간에 스쳐 지나갔다.
정도치는 땅에 묻어둔 보화를 도둑이라도 맞은 것 같은 억울함과 허전함에 허덕인다.
“뭔 세상이 이런겨?”
원망스럽게 뇌까려도 보았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현실은 30년전 안사람을 지게에 지고 두둥마두둥로 들어올 때와 같이 달랑 두 부부만이 남아있는 것이다. 변한것이 있다면 큰애가 언젠가는 집으로 돌아 올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크게 집수리를 한 것뿐이다.
정도치는 목침을 더듬어 들어 눕고 만다.
안사람이 일 가자고 했으나 ‘재미가 없구먼’ 한마디고 끊고 만다.
그렇게 사 나흘씩 속앓이를 하던 정도치를 깨운것은 경로당 회장이었다. 막다른 우물집 귀덕이 어른께서 운명 하셨다고 했다. 이 마을에 장례를 치르는 일은 별스러운 일이 아니다.
말하자면 노인들만 살고 있는 노인들의 천국이기 때문이다.
정도치도 70대 중반을 접어들고 있지만 이마을에서는 청년이다. 모든 힘쓰는일은 그가 도 맡아했다.
귀덕 어른의 노제(路祭)는 노인회관에서 치뤄졌고 도시에 살던 자녀들이 서럽게 울었으나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
예전엔 상여를 썻으나 맬 사람이 부족하고 목짐으로 지자니 힘이 붙여 버틸사람이 없다. 결국 경운기로 관을 옮기고 장지 앞에선 지게를 진다. 그것은 늘 정도치가 할일이다.
귀덕어른은 외롭게 혼자 살다가 굶어서 돌아갔다고 했다.
경로당 회장이 한 이틀 안보이기에 찾아 갔더니 밥상에 언제적 밥인지 하얗게 곰팡이가 끼어 있고 반찬이라곤 달랑 간장 종지가 전부라고 했다. 아마 낮에는 경로당에서 얻어먹고 그도 없으면 술 몇잔으로 때우고 산 것 같다고 했다.
정도치는 진저리를 쳤다.
“사람이 어찌 밥을 굶고 살겠는가? 배가 고픈데 어찌 참는단 말인가?”
이 참혹하고 비정한 현실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본다 그러고 보니까 처음 이 마을에 들어 왔을 때,
“저 여자 보쌈해 온 것 아니여?” 라고 말했던 어른도 “도망꾼 같은디?” 했던 아저씨도 “뭔 사정이 있것지..” 염려해주던 어른도 보이지 않는다.

< 다음호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