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26년을 살고 있다. 얼마 전 갑자기 모찌떡이 먹고 싶었다. 그런데 가까운 T&T에 가서 모찌를 찾아 보니 모찌는 없고 모찌 과자만 있었다. 그거라도 사서 먹을까하는 충동이 없진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원하는 것은 부드럽게 입안에서 촉감을 느끼고 가루가 입가에 뭍어 나는 그 느낌을 원했던 것이다. 비슷하다면 금방 만들어 부드러운 인절미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은 먹지 못하고 아주 심한 몸살을 앓았다. 그리고 최근에 갑자기 비지찌개가 먹고 싶었다. 때마침 한국 마켓에 쇼핑하러 가서 청국장을 보자 비지찌개 대신 이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청국장을 사다가 집에서 청국장을 끓여 먹었는데 좀 짭쪼롬했지만 청국장 특유의 맛이 입안에 돌아서 정말 먹고 싶은 것을 먹었다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우리는 늘상 주변에서 쉽게 구하는 음식들을 아니면 식당에서 제공하는 음식을 먹는다. 많은 메뉴중에 정말 내가 그날 먹고 싶은 것이 없음에도 그래도 그중에서 고르라면 차선책으로 뭔가를 골라서 먹는다. 특히 해외에서 사는 교포인 나로서는 때로 정말이지 먹고 싶지 않은 깔깔한 토스트를 입안이 헐기까지 하면서 씹어 삼키다보면 살기 위해서 먹는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에서도 대부분의 동양사람들은 라이스 즉 밥을 원하고 빵으로 만든 샌드위치나 햄버거등을 원하지 않는 편이다. 물론 선택의 여지가 없을땐 먹는다. 살기 위해서 하지만 정말 원하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아니다라고 대답하게 된다.
이민하고 처음 한국에 방물을 했을때 시골 시외버스 대합실에서 연탄난로위에 올려 놓은 오뎅을 많이 먹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서울에서도 포장마차에 들러 혼자 쑥쓰러워 하면서도 오뎅을 아주 많이 먹고 꼬치를 남겼던 기억이 있다. 물론 서울 생활을 할때는 시골의 돼지고기 두르치기와 제사하고 나온 부침개로 찌개를 끓인 부침개찌개나 동태와 무우, 두부를 넣어 끓인 탕국을 먹고 싶었던 기억이 있었다. 외국 생활을 하다보니 늘상 내가 먹고 싶었던 것보다는 주어진 음식에 적응을 했던 것 같다. 생활도 내가 원하는 것보단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면서 살아 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인도사람들이 음식을 만들면 인도 카레가 빈도가 높고 중국인이 음식을 만들면 중국음식이 빈도가 높아진다. 만약 메뉴가 없이 직원식사를 만들게 된다면 말이다. 아무리 외국에 오래 살아도 한국적인 맛을 잊지 않는 것이 사람의 혀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아무리 오랫동안 외국음식을 오래 먹었더라도 어릴적 음식을 잊지 못하는 것이다.
결혼하고 한동안은 음식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물론 결혼전엔 혼자 자취를 하면서 라면이나 밥에 고추장을 비벼 먹거나, 칼국수나,순대국밥을 사먹는 시골출신 고학생의 생활이었지만 결혼하고 아내가 해주는 밥을 먹으니 자꾸만 엄마가 해주던 시골 밥상하고 비교가 됐다. 물론 객관적으로 보면 시골엄마가 해주던 음식은 맛이 없는 것이 정상이다. 냉장고도 없이 담장에서 텃밭에서 채소를 뜯어다가 두부 한 모 사와서 찌개에 두부를 넣고 그렇게 만들어진 밥상은 때론 김치가 상온에서 오래 있다보니 시어 터질때도 있고 화로에 김치찌개 한가지만 끓여서 감자가 올라가거나 감자 개떡이 올라간 밥을 먹는 것이 다였다. 그런데 수십년이 지난 그 감자개떡이 평생토록 먹고 싶은 것이다. 만들어 먹으면 그 맛이 나지 않는다. 어머니의 손 맛이 아닌 것이다. 물론 음식을 만들면서 보여지는 비주얼도 중요하지만 비주얼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은 시간에 먹는 것이다. 그리고 맛이 있다면 더욱 좋은 것이다. 외국에서 살면서 한국식으로 밥상을 차려서 먹는 지인의 집에 가서 보고 내심 부러웠던 적이 있다. 늘 한식도 양식도 아닌 음식을 먹기 일쑤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늘 듣는 맛집이나 사대천왕등의 거창한 이름을 붙인 식당들은 방송을 타고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지만 많은 사람들은 실망하기도 한다. 내가 정말 원하는 그 음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87년 군대를 제대하고 부터 요리를 해왔으니 30년이 넘게 조리일을 해오고 있다. 군에서 특기가 항공정비병이고 군대가기전에도 금형일을 했으니 사실 조리일을 시작한 것은 남들보다 늦었었다. 그리고 조리를 시작하고 처음엔 너하고 조리하고 안맞는 것 같아라는 소릴 동료들에게 많이 들었다. 글이나 쓸 것 같은 사람이 음식을 하는 것이 왠지 안어울린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젠 타성에 젖어서 음식을 만들지 않을까하는 염려에 늘 음식을 만들때 온 정성을 다하려 한다. 그리고 정해진 레스피에 안주하지 않고 좀 더 맛있거나 이쁘게 보이는 음식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때론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남들이 보기에 미흡해 보일 수도 있는 음식들이었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정말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싶은 때에 먹는 것 그것이 최고의 맛을 느끼는 음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렇다고 메뉴가 수십가지로 널려 있는 식당은 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모든 손님을 다 받으려고 한국의 분식집처럼 왠만한 음식은 다 만드는 것보단 정말 잘음식을 잘만드는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삶의 행복을 주는 것이 틀림없다.
때론 몸이 알아서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하는 경우가 있다. 나 오늘 달달한게 땡기네 하면 아마도 에너지가 떨어졌을 수도 있다. 소위말하는 당이 떨어진 경우일 수도 있다. 그리고 아침에 방금 원두커피를 그라인더에 갈아서 내린 원두 커피 아메리카노는 머리가 아프다가도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어킨다. 몸이 알아서 얼큰한 짬뽕을 찾기도 하고 시원한 냉면을 찾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얼마전 나의 경우처럼 갑자기 모찌가 먹거 싶거나 비지찌개가 먹고 싶어 지기도 한다. 백인들 같은 경우 어려서 엄마가 만들어 준 라자니아가 먹고 싶다던지 이것저것 들어간 숲이 먹고 싶어진다든지 하는 것이다. 무우 숭숭 썰어서 찜통밑에 깔고 코다리를 양념으로 무쳐서 올리고 쪄서 먹는 코다리찜은 어떤가? 이민사회지만 이젠 한국음식을 대하기가 쉬워졌다. 한국식품점도 많이 늘었고, 중국마켓에도 당면, 고추장등은 기본으로 있으니 말이다. 캐나다의 내륙시골같은 곳에선 아직도 김치 한 번 담그려고 수퍼스토아 갔더니 누가 한 박스 다사가버려서 김치를 담그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고 아무래도 한국음식을 제대로 챙겨 먹기는 힘들다. 밴쿠버나 대도시에서 보내주지 않는 다음에야… 양식은 외식으로 한 번 먹는 것은 괜찮지만 날마다 먹기엔 이민자인 한국사람도 쉽지 않은 일이다. 짬뽕이나 한 그릇하게 만납시다하고 전화하게 되는 날이다. 막걸리도 한 잔 하면 딱 좋은 비오는 밴쿠버에서.

글쓴이 | 전재민
시인/ 수필가/ 조리장
문학사랑협회 회원, 캐나다한국문협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