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제니퍼 노 교육 컨설턴트

 

‘나는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는 불쌍한 고아랍니다

내 죽어 산천에 간대도 그 누가 나를 묻어주리오 덮어주리오 술 석잔 부어주리오

나는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는 불쌍한 고아랍니다

내 죽어 산천에 간대도 그 누가 나를 묻어주리오 덮어주리오 술 석잔 부어주리오’

 

북한의 꽃제비라고 불리우는 소년소녀들이 동냥을 할 때 부른다는 이 노래가 왜이리 가슴에 사무치는지…나이가 들어서일까? 아님, 외로움이 넘치는 갱년기가 온 탓일까?

어린시절,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한참 놀다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이 되면 집집마다 엄마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곤 했다.

“그만 놀고 빨리 들어와 씻고 밥 먹어라.” 지금 생각해 보니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 수 있는 것은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부모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 육십이 되고 팔십이 넘어도 엄마 아빠를 찾는 아이의 마음이 가슴 한편에 추억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언제든 기댈 수 있는 부모님이 이 세상을 떠나실 때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보호자 없는 아이처럼 염려와 불안에 떨게 된다. 부모님이 계시던 그 자리는 먼지만 날리는 텅 빈 벌판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12월 어느 저녁시간, 북한 탈북자 출신인 이성주 연구원의 강연회를 듣게 되었다. 10대 초반에 부모님의 부재에도 모든 고난을 이겨내어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된 그의 인생은 어리지않은 나에게도 적잖은 충격이었다. 세련된 외모와 지적인 모습의 그를 보면서 상상하기 힘든 그의 인생의 역경은 지금의 경제적 풍요속에 내면이 가난한 현대의 젊은 세대들에게 어떤 방법으로든 전달이되어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대한민국 아이들은 알아야 하는 책임감이지 않을까 싶다. 캐나다에서 학업중인 적지않은 수의 어린 학생들은 100불 200불을 쉽게 생각하며 지출을 하곤 한다. 배가 고파서 소금과 물로 하루하루를 견뎌보는 일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며 초등학교 4학년에 사형장에 견학을 가는 일은 꿈에서도 경험하지 못 하는 일들이다. 음식이 풍요롭고 물욕을 쉽게 채울 수 있는 대부분의 평범한 우리들의 일상을 감사함으로 고개 숙여 보는 일도 드문 일이 되었다.

50을 앞둔 나는 요즈음 세상을 어찌 살아가야 할지 고민이 많다. 지금의 어린 학생들은 몇 년 후면 내 마지막 학생들이 될 것이다. 이들의 고민은 100여만원쯤 되는 조던 운동화를 어찌 살지, 온라인 게임의 충전(소위 아이들은 현질이라고 부르는)을 얼만큼 할지 등의 고민이 대부분 일이고 학습으로 규칙적인 생활을 언급이라도 할 때에는 입이 2-3cm는 나오는게 일쑤이다. 귀엽기도 하고 일부러 놀려보기도 하지만…세대가 그러하니 나무랄 일은 아닌 것 같아서 우리 어른들은 그저 웃음으로 넘기곤 한다.

분명히 우리는 알고 있다. 풍요롭게 누리는 지금의 삶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변화가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교육이라는 일을 하고 있는 어른으로서 부모에게 가져야 할 감사와 사랑도 가르쳐야 하며 한 민족이지만 열악한 세상을 살고 있을 동무들의 삶도 전하여 나눔과 이해도 가르쳐야 할 것이다.

중고등학교때 배웠던 도덕과 윤리는 시험점수 올리기 위한 깍두기 과목처럼 여겼던 그 때를 추억하며… 진정 필요한 교육이였음을 어린시절에 알지 못했던 그 때가 참으로 안타깝기도 하다. 그 시절 어른들이 지식을 갖추기 위한 과정이 아닌 인생에 지침서처럼 이야기를 해 주었더라면…철이라는게 조금 빨리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며 우리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진심이 생기는 현재이다.

얼마 전, 새롭게 학업을 시작하였다. 대학때 해 보지 못한 복지 관련 학업을 대학원에서 접하는 나는 우리 아이들처럼 토론과 발표 수업도 하게 되고, 수십페이지의 페이퍼도 과제로 제출하며 중간 고사와 기말고사도 치렀다. 이런 나를 보면서 가장 많이 지지해주고 돕는 이들이 내가 돌보는 학생들이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라이드 시간이나 식사 시간에 장애복지나 노인복지사례관리, 현대시대의 사회복지행정 등의 정보를 나누는 시간이 너무도 소중하고 뜻깊다.

이런 화제거리가 생기다보니 대화 시간도 늘어가게 되고 아이들의 생각도 공유하게 되니 자연스레 친구가 되는 것 같다. 우리 어른들과 젊은 세대에게 부족한 공감과 공유는 분명하게도 어른들의 잘못이었다. 내가 하지 않으며 따라오기를 바라는 교육은 없는 것 같다.

‘인생은 목표를 이루는 과정이 아니라 그 자체가 소중한 여행일지니 서투른 자녀 교육보다 과정 자체를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훈육을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키에르케고르의 말처럼 좋은 부모란 진정한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현명함을 가져야 하는 것 같다.

 

반 백살을 사는 지금,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부모님인 이유는… 그 시절, ‘공부해라, 출세해라’가 아닌 ‘어른에게 인사 잘 해라, 콩 한쪽도 나누어 먹어라, 스승의 그림자는 밟는게 아니다, 가족을 소중히 여기고 내 나라를 귀히 여겨라’ 등으로 세상을 가르쳐 주셨던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금은 뵐 수 없는 그리운 이름 아버지를 사무치게 그리워 하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