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인생에도 겨울이 있고 봄이 있다.
나는 지금 분명 봄은 아니다
겨울도 아니다

싸늘히 흐르는 겨울의 찬 공기는
어렸을 적 옛 집을 생각 나게 한다.
우리 집 마당 앞에는 수돗물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내가 하는 일은 먼저 연탄 불에 물을 끓이는 일이다.
팔팔 끓는 물을 부엌에서부터 들고 나와서
새끼 줄로 꽁꽁 묶은 수돗물을 녹이는 일이다,

차가운 수돗물과 더운 물을 섞어 미근한 물로 만들어
그 물로 세수하고 학교에 갈 수가 있다.

요즘은 전혀 볼 수 없는 겨울의 풍경이다.

이런 겨울이 지나고 삼삼한 봄의 기운이 돋으면
뜨거운 물을 끓이지 않아도 된다

이것이 첫 봄의 신호다.

수돗물이 더 이상 얼지 않는 시기, 그 시기인 봄이 오면 우리는

동네 친구들과 전혀 다듬어 지지 않은 동네 어귀, 수염 같이
수두룩하게 나 있는 풀이 많은 동네 산을 풀잎 하나 물고
어영차 노를 젓듯이 흘러 가곤 한다.

원피스 입고 풀 한 포기 한 손에 들고 봄이라 외치지 않아도 봄은
느긋하게 우리들의 마음을 덥혀준다.

봄비가 내린다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봄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한 계절을 녹이고 시작한다.

봄비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