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숙 작가는 우리나라가 독립하기까지 독립운동에 참여했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하여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그림책 형태로 책을 엮었다. 첫 번째 《그날의 약속》을 출간하고 어린이들의 호감에 힘입어 두 번째 《그날의 함성》을 삼일절에 맞춰 출간했다. 만세운동이 일어난 1919년 3월1일과 만세운동에 참여한 대표 인물 유관순 누나는 많이 알고 있지만, 영원한 스승 임용우 애국 열사를 아는 어린이는 많지 않다. 그래서 고현숙 동화작가 쓴 《그날의 함성》을 소개한다.
삼일절은 그날 하루만 기억 할게 아니라 우리는 내내 기억해야 할 날이다. 신채호 선생님은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라고 말했다. 역사는 과거를 통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알려줄 나침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 역사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는 우리 이민 어린이들은 《그날의 약속》이나 《그날의 함성》과 같은 책들을 읽고 모국의 역사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책 뒷면에는 〈김포 3•1 만세운동 전개도〉와 〈덕적도 만세운동 지역〉 지도를 첨부하여 이해도를 높혔고 책속의 등장인물들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자료가 있다. 아울러 작가가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취재한 사진도 수록되어 생생하게 독립만세운동의 인물들을 만나 볼 수 있다.
《그날의 함성》의 주인공 2대 독자인 임용우는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3.1운동 만세에 참여하고 만세운동을 이끌고 계획한다. 임용우는 고향 경기도 김포군 월곶면 창신학교와 덕적도 명덕학교에서 수많은 애국청년들을 길러낸다. 그들은 곳곳에서 또는 보통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경성을 오가며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왜놈들이 어민들의 어업권까지 빼앗아가 어민들이 항의하자 그들을 끌고 가서 고문을 하고 행패를 부리는 것을 용우가 막는다. 임용우는 “우리 바다에서 웬 행패요. 우리 바다에서 우리 마음대로 고기잡이하는 것이 뭣이 잘 못이란 말이오.” 하며 따져 잡혀간 어민을 구해 오기도 한다. 임용우는 고향으로 내려와 해변에서 연합운동회를 열어 섬마을 사람들과 만세를 부르고 감옥에 갇히고. 곧 태어날 아기가 있음에도 모든 것을 책임지고 만세운동의 주동자로 잡혀가 끝까지 떠안고 형무소에 들어간다. 서대문 형무소로 이감되어 잔혹한 고문을 받고 5월 10일 젊은 나이 35살에 조용히 숨을 거둔다. 제자들은 “독립은 꼭 이루어질 것이니 지켜봐 주세요.”하며 애통해한다.
“임용우! 서른다섯 살, 경기도 김포군 월곶면 개곡리 출생! 맞느냐?”
“맞다!”
“3월 1일 경성에서 만세를 불렀느냐?”
“그렇다!”
“3월 29일, 김포 월곶면에서 만세 시위를 계획하고 이끌었느냐?”
“그렇다!”
“4월 9일 덕적도 명덕학교 운동회를 핑계로 제자 차경창, 이재관 등과 민세 시위를 주도 했느냐?”
“나 혼자 계획하고 추진했다.”
“만세를 부른 것이 어찌 죄랸 말이더냐. 남의 나라에 함부로 들어와서 주인 행세를 하는 도적들이 무슨 말이 그리 많은게냐? 어서 네 나라로 돌아가라. 어서! 대한 독립만세!”
일본 헌병에게 채찍과 각목으로 심한 매질을 당한 용우는 끝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
“물을 끼얹어라. 지독한 조센 샌새이!”- 그날의 함성 중
고현숙 작가는 “역사와 교육은 국력이고, 우리나라를 지키는 명분이에요. 우리는 후손들에게 자유와 행복한 미래를 물려 주어야만해요. 이것이 우리 역사를 바로 알고 선열들이 중시 여겼던 교육도 계속 이어가야하는 이유랍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