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왜 4개의 상을 석권하고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좋은 영화라고 열광 하는 것일까?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나올때의 느낌은 이거 뭐지?
왜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을까? 근데 난 그렇게 열광한다거나 영화관에 오기를 잘했네 하는 느낌보다는 허탈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한 두달이 지나 서양친구가 물어 왔다 . 그 영화 봤느냐고. 그 친구는 하와이에서 방문한 친구인데 그 영화에 대해 감탄을 했다.
어떤 부분이 그렇게 감동적이었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4개 부문에 상을 탓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나는 물었다. “그 영화가 당신의 삶에 어떤 좋은 영향을 주었어?” 그 친구 왈…우리의 현실의 삶이 잘 반영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것이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못 들은 것 같다.
오늘 칼럼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그 영화가 메스컴을 후끈 달구면서 상을 타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문화 예술 분야에 위상을 높여주고 그 감독의 입지는 자고 나면 팔자가 바뀌어 있는 사람이 있다더니 이 사람을 두고 하는말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 였다. 그 열광은  자신의 삶들이 그닥 만족하지 못한 현실의 소용돌이 속에서 누군가가 대신 한방 터뜨려 주는 대리만족의 결과물이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일은 잠시 환호하고 최고라고 외치지만 돌아서면 자신의 직접적인 문제와 걱정이 생각의 줄기를 타고 나와 빼꼼이 고개를 내밀고 있으며 나는 뭐지? 하면서 비교하고 자신의 삶을 못마땅해한다. 그러면서 이 영화에서는 CLASS 바꾸자! 로 진입한다. 이런 일은 단지 순간의 기쁨과 환호일 뿐이다. 바로 다음 전개되는 세계는 “어떻게 이 자리를 유지할까? 또는 “더 높은 곳은 어디메뇨?”하는 끝도 없는 욕망의 삶의 노예생활에 끌려가고 있을 뿐이다.

옛말에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고 했다 .
그렇다고 사회체제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 하고자 함은 아니다. 내 개인에 대한 물음이다. 난 과연 부자와 가난한 자 중에서 어느 쪽이 내집이냐고 물으면 부잣집이 내 집이라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은연 중에 부자의 삶은 동경하고 가난에서는 도망치고 싶은 삶이였다. 그렇다면 그 가난을 벗어나기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가능성에 얼마나 힘을 실어 노력했으며 내가 노력하고 기대한만큼 성과가 나지 않을 때도 다시한번 자신에게 용기를 먹여주며 재 도전 해본적이 얼마나 되는가?
비록 그 노력과 시도가 자신이 원한 만큼의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을지라도 일단 시도라도 해보려고 자기자신을 잠시나마 생각해 보는 마음 스캔은 있었던가? 만약 그런일이 실행 되었더라면그 영화에서처럼 그토록 극한상황으로 몰고 가지는 않았으리라.
또한 가난하다고 해서 자신의 권리를 그 영화에서처럼 주장하게 된다면 결코 희망없는 빈껍데기 미래에 목숨을 거는 것과 별반 다를바가 없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마음스캔, 그 이후
지난번 칼럼에서 나누었던 마음스캔을 이 영화와 대비한다면 이야기의 전개는 부잣집과 간난한집의 생활근간에 주제를두고 펼쳐진다. 부잣집 사장님은 가난한 집 사람을 만날때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한다. 꼭 그 가난한 사람을 꼬집어서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 말이 가슴에 꽂혀버린 것이다 . 그럴 때마다 가난한집 사람은 위축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 여겨지기에 빈정 상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빈정상한 마음을 어떻게 할것인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마음스캔이다. 그때의 자신의 맘이 가진 느낌 ,감정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면 그냥 넘어 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옳고 그름의 판단이 아닌 그냥 그렇게 자신의 맘을 쓰윽 한번 훓어본다는 것!
이 일은 전쟁도 막을 수 있는 힘이 여기에 있다. 또 상대에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겨 표현할 수도 있고 아니면 누구한테라도 (친구 ,가족 등) 털어내놓는다면 결과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지만 이 영화의 흐름은 흥행의 판도에  금이 가는 마음 스캔 쪽으로는 아랑곳하지 않고 빈정상한 마음을 어떻게 갚아 줄 수 있을까부터 생각하고 바로 행동에 돌입하게 된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거짓의 프로젝트인 인간생명의 소중함이 얄궃은 감정에 의해 무참이 말살되는 일이 자행된다.
우리는 여기서 주목할 만한 일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꼭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을 때는 해서는 안 되는 일에 가담하게 된다. 그렇다면 꼭 해야하는 일은 무엇인가? 마음스캔, 그 이후 건전한 배출구 사용이다.
이런 과정을 묵살시키고 건너 뛰었을 경우,마음은 건강치 못한 쪽으로 흘러갈 확률이 아주 높아진다. 그럴땐 바로 비교하게 되고 열등하다고 느껴지면 경계하게 되면서 그늘지고 외진 곳으로 도피하려 한다. 또한 자신의 감정을 보려고도 하지않기에 상대방에게 표현하려는 일은 실행에 보지도 않고 거절의 두려움앞에 무릎을 꿇어버린다.
곧 감정충동의 하수인이 되어 눈에 보이는 자신이 정해놓은 이름 “가난한 자”라는 명찰과 빈정상한 열등한 처지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해결책을 찾아나선다는것이 이 영화에서는 한 탕 하자! 로 기수를 정한다.
결국 그 한 탕은 엄청난 비극을 초래하게 된다 .

무엇을 놓쳤는가?
마음스캔 ,그후의 행동인 털어 내어놓는일!
즉 ,한탕하고 싶은 일이든 죽이고 싶도록 미운 일이든 누군가를 붙들고 얘기만 할수 있었더라도 답은 있었을 것이고  그 순간은 지나가게 마련인 것이다.
본시 이 마음이란 것이 그렇다. 비록 빈정상한 마음이지만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수없는 그 마음 하나가 이토록 큰 마력을 행사하게 될 줄을 누가 알수 있었겠는가? 그렇기에 이 마음스캔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덕목 중의 하나이다.
거기서는 위기도 모면할 수있는 힘도 있으며 사랑도 겸손도 지혜도 거기서 나온다. 그곳에는 크나큰 비극을 막아주기도 하기에 새 걸음을 내딛일 수 있는 힘도 있다. 이런 덕목은 자신의 삶을 위한것이지 누구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려고 행해지는 일이 아니며 그렇게 될 수도 없다.
가난하다고 스스로가 이름 붙인 사람들은 어느 누구 다른 사람이 가난하다고 하지않음에도 자신들이 가난하다는 명찰을 달고 있을 뿐이다. 그 가난한 이 라는 사람들은 자신에게도 감정이 있고 기분이 이렇게 저렇게 변할수도 있다는 것을 표현할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알릴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자신의 처지에 이미 값을 매겨놓은상태라는 것이다.
“말하지 않으면 귀신도 모른다” 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알아주지 않고 대접해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비판하면서 급기야는 큰일을 내고야 마는 사태가 벌어지게 만든다.
하지만 알리고 표현했을때에는 자신에게도 진실의 힘으로 그 마음이 무엇이든 자신을 민낯으로 볼수있는 마음의 초연함이 생기고 때로는 당당하게 살아갈수 있는 힘 또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가난한 사람들은 머리에 뿔이나고 도깨비처럼 생기지 않았다 그냥 나 자신이고, 문열고 밖에 나가면 마주치는 나의 이웃, 한 집에 함께 사는 가족일수도 있다.

오늘도  당신의 가난한 이는 안녕하십니까? 그러고는 나에게 씽긋 웃어보인다. 지금 이 마음 이 상태에 만족할수있는 자신에게 좀 더 점수를 후하게 주면서…. 없는사람, 있는사람, 잘난사람, 못난 사람 ,그 모든 일이 한순간의 생각이며 결국 너와 나 세상이라는 한 공간에서 살아가야한다면 난 어느 길을 선택할것인가? Think about i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