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식사 후 2시쯤 수술실에 들어간 집도 의사가 아내 말고도 몇 시간씩 소요되는 수술을 몇 건이나 했다. 아내의 수술을 조금 하다가 수련 의사들에게 맡기고 자기는 다른 수술방을 순회하였으니 수술이 제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시술 의사는 나의 후배 외과의로 잘 하려고 했겠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 문제였다. 후에 병원장에게 전화하여 미국 수련 때 집도 의사가 수술 중에 다른 의사에게 수술을 맡기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선배님 말씀이 다 옳다며 사죄하였다. 교수회의를 소집하면 가서 제도를 고치도록 충고하겠다고 하였으나 감감무소식이다.
본인은 의과대학 졸업 후 1889년에 설립한 전주 예수병원이라는 미국 남장로 교회의 선교병원에서 1963년부터 5년간 인턴과 외과 수련을 마쳤다. 현재의 미국식 수련 시스템이 당시에도 시행되고 있었다. 미국 의사는 집도하면 피부를 다 봉합할 때까지 수술을 직접 마무리한다. 다른 의사에게 맡기지 않는다. 한국은 의사들의 의학 지식이나 수술기술은 우수할지 모르지만, 의료시스템이 후진국이다. 환자를 위한 의료시스템이 아니고 의료기관의 수익을 위한 의료시스템이라 많은 환자가 희생당하고 있다. 본인은 한국에서 36년간의 외과 개원을 은퇴하고 2007년에 이민 와서 한의과 대학을 이수하고 지금은 침술을 통한 진료를 하고 있다. 크론병이라는 불치의 병과 심방세동이라는 심장병이 있어 복약 중이었다. 7년 전에 배가 아파 종합병원에서 위와 대장 내시경과 CT 촬영과 특수 CT 촬영을 받은 결과 위장 끝부분의 위벽 속에 약 1cm 직경의 혹이 있다고 하였다. 우리 집안은 암체질의 역사가 있었다. 아버지가 위암이었고, 맏형이 위암과 갑상선 암이었고, 둘째 형이 간암이었고, 셋째가 당뇨병이고, 넷째가 위암이었다. 본인이 다섯째로 건강이 제일 약한 편이다. 여섯째가 갑상선 암으로 수술받았다. 본인은 암수술 전문 병원인 전주 예수병원에서 약 200명의 위 수술을 집도하였는데 위암 환자가 월등히 많았다. 위암은 위 하반부 소만쪽 위 전정에 가장 많이 생긴다. 외과 과장이 위를 절반만 절제하는 수술을 하자고 제안하였다. 나는 재발을 예방하고 완치를 위하여 위의 2/3를 절제하는 수술을 선호했고 발생 부위가 위쪽이면 위의 100% 절제 수술은 했어도 하부쪽으로 50%만 절제하는 수술은 한 적이 없었다. 외과 과장에게 반위절제술(Hemigastrectomy)을 많이 했느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항상 위암을 걱정하던 터라 외과 과장의 의견에 동의하였다. 수술결과 조직검사에서 위 말단부에 있다던 혹은 없었고 십이지장에 위 조직이 있었다고 보고되었다. 위 조직 이소증이었다. 결론적으로 오진이었다. 위암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위 하부를 제거했으므로 위암이 예방되겠다 싶어 오진이라도 고마웠다. 오진으로 위 수술을 받은 환자가 고마워하는 특이한 경우일 것이다. 그 후에도 심장 관상동맥 협착증으로 그 병원에서 스텐팅(stenting) 시술을 받았다. 시술 후 회복실에서 회복 중, 정신이 든 후 가슴이 찝찝하여 만져보니 그것은 피가 흐른 것이었다. 수액 주사를 주입 중이었는데 연결 부위에서 수액 줄이 주삿바늘에서 빠져 있었다. 그 바늘을 통하여 계속 출혈이 되고 있었다. 담요를 덮어놓은 상태라 간호사가 곁에서 서로 이야기하고 있으면서도 눈치를 못 챈 것 같았다. 수혈을 받고 입원하였다. 환자 간호를 담당한 간호사가 소홀하면 환자가 죽을 수도 있는 것은 한국이나 여기나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1964년에 아내가 제왕절개 수술로 첫 아이를 조산했다. 당시 본인은 광주 제중병원(지금의 광주 기독병원)에 파견을 나가 있어 병원장 지시로 인큐베이터 담당 간호사를 배치해서 잘 간호하도록 했다. 점심시간에 감독 간호사가 자기가 지키고 있을 테니 점심 먹고 오라고 보낸 후 잠시 자리를 떴다. 그 사이 아기가 인큐베이터 안에 있던 소독 거즈 수건을 만졌던지 얼굴을 덮어 토한 것이 기관지로 들어가 폐렴이 되었다. 조산아가 토하여 폐렴이 되면 대개 치료가 어렵다. 조산아였지만 이목구비가 또렷한 사내아이였다.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의료인은 어떤 위치에 있건 성실하고 헌신적으로 최선을 다해야한다. 세상을 다 준다고 해도 생명과 바꿀 수 없다. 스텐팅한 후 6년이 지난 작년에 다른 종합병원에서 2차로 심혈관 스텐팅을 또 받았다. 이번에는 시술을 손목 혈관을 통해서 간단히 하고 출혈도 없었다. 사타구니로 했을 때는 출혈이 엄청 많았다. 허리가 아파서 15년 전쯤 한국에서 내시경으로 시술을 하고 그럭저럭 지내다가 계속 허리가 불편하여 MRI를 신청하여 1년 이상 기다려 촬영하였더니 요추관 협착증이 세 군데 있고 디스크도 있었다. 주사 맞는 시술을 원했으나 1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하였다. 너무 아파서 이민 후부터 8년간 다니던 캐나다인 주치의에게 응급으로 의뢰서를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자기 목을 조르는 모습을 보이며 이런 것이 응급이지 그런 것은 응급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 후 주치의를 다른 캐나다인 의사로 바꿨다. 1년에 5회 특별 진찰료로 2,500불을 내야 한다고 하였다. 내가 요구하는 대로 의뢰서는 잘 주는데 받는 쪽에서 연락이 없으니 도리가 없었다. 처제가 치료간호사로 일하는 뉴욕으로 가서 응급으로 시술을 받고 신통하게 효과가 있더니 얼마 지나서 다시 아프기 시작하였다. 우연히 유료로 진료하는 병원을 알아 진찰을 받고 수술을 약속받았다. 심장 문제가 있어 심장 전문의의 동의서가 있어야 한다며 6개월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 답답하던 중 한국에 시술을 아주 잘한다고 하는 척추 전문병원과 연락되어 시술 일자를 예약하고 비행기 표까지 구입하여 다음날 떠나려고 하는데 그때야 2일 후 수술받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숙고 후 수술을 취소하고 서울로 가서 시술을 받았다. 그렇게 아픈 시술은 상상도 할 수 없었고 몇 배나 통증이 더 심해져서 오기 전에 5일 동안 3번이나 추가로 시술을 받았는데도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시술한 원장은 잘하는 동문이 미국 맨해튼에서 개업하는데 가보라고 권했다. 한국에서 다시 한번 속고 여기 와서 수술을 신청했더니 5개월 만에 수술이 이루어졌다. 1박 2일 입원하기로 했는데 수술 후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휴일인데도 응급으로 피검사를 했다. 인산이 많이 부족하고 마그네슘도 부족하다면서 인산염 3팩, 마그네슘 1팩을 주입하고 3박 4일 만에 퇴원했다. 인산염이 많이 부족하면 심장이 멎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서울서 시술받은 후유증이 아직 완쾌되지 않은 것 같다. 지금은 한국인 주치의를 만나 처음으로 크게 만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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