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은 안정되고 복된 삶을 계속 누리면서 살고 싶어한다.
흔히들 주위에서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유언장을 작성해야 한다. 영정사진을 찍는다’ 고들 하고 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썩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고 거북하게 들릴 수도 있다.그러기에 인연을 맺고 살아온 관계에 있어서는 이별의 아쉬움이고 상실 그 자체이니 만만한 감정처리가 되기는 어렵다. 이미 40년이 훨씬 넘은 시기에 어머니를 보내면서 슬픔보다 더 큰 걱정이 앞장선 일이 있었다. 엄마없이 어떻게 살아갈까?하는 무섭기만한 맘과 함께 20살을 넘긴 내가 바라본 홀로 남겨진 아버지는 배우자를 먼저 보낸 상실감으로 하루하루를 죽음으로 다가가고 있었다.10년이나 나이를 덜먹은 아내가 떠나고 설상가상으로 시집도 가지않은 손녀 같은 막내딸이 시름시름 앓다가 곡기를 끊고 문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엎어져 있는 꼴을 보시고 홀아버지가 탕약을 다려 갖다 바치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엄마가 떠난 슬픔 보다는 내 설움 ,내가 살 궁리만 하고 있었더라.그도 그럴 것이 늦게 낳은 막둥이가 손끝에 물도 한번 안 묻히고 공부만 하라고 지나치게 보호하고 응석받이로 키운 탓에 엄마없이 뭘 어떻게 해야 하는 줄을 몰랐으니 안타까울 수 밖에 없었다.그런 부모님의 죽음의 그늘에서 서성이던 사람이 벌써 나의 죽음을 운운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 쉽게 넘고 지나갈 감정처리는 아니겠지만 후회되어 그 폭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한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죽음은 오늘까지 살아온 정리와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은 하지만 그 일이 말처럼 깔끔하게 정리가 안되는 이유는 한번도 경험해보지못한 변화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남은 자와의 끊어진 연결고리에 대한 걱정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의 일상에서부터 상호간의 독립된 생활에서 자립이 필요하다. 그러니 먼저 떠나는 사람의 정신적인 건강상태인 마음이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살아있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서로에게 봐 달라는 신호를 보낼 때 응답해주는 일이다. 그런 일들이 이행이 되지 않을 경우 후회와 아쉬움과 슬픔이 오래동안 지속될 수도 있다.이 일은 죽은 자와 산 자의 벽을 무너뜨리는 일이니 쉽지는 않은 일이다. 그러니 살아 있을 때 언젠가는 떠날 죽음이라는 주제를 삶속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이다. 그렇게 된다면 아무리 근거리의 관계라 할지라도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매듭은 풀고 뒤틀어진 곳은 바르게 고쳐 놓고 아쉽고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채워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어느날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할 수가 없고 해야 하는 일임에도 할 수 없어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가 있다 그때, ‘나’라는 존재가 없어질 때 일어나는 일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처리해야 하는 죽음의 준비이다.먼저 부채가 있다면 필히 갚을 수 있는데까지 갚아나가야 하며 빚은 청산하고 떠날 수 있다면 본인에게 자유를 주는 일이기도 하다.그 다음으로 재산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분배와 권리양도가 분명하게 처리해야하는 유언장 작성에 관한 일이다 .이 일이 잘못되면 남은 자들의 불화의 원흉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니 각별히 유념해서 처리해야할 일들 중의 하나이다.도 다른 일이라면,병이 들어 치료하는 과정을 어떻게 진행하여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어떤 절차에 따라 장례식과 안치를 할 것인가도 가족들과 의논하여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 부부에게 정부로부터 연금을 받고 나서부터 죽음에 대한 준비가 숙제처럼 머리에 떠 올랐다. 그때까지는 죽은후에 어디에다 어떻게 안치를 해야할지도 생각만 하고 있었지 생활고에 쫓기면서 살다보니 그럴 만한 여유도 찾지 못한 채 살고 있었다.이제는 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하고 남편과 장례문제에 대해 의논한 끝에 매장을 하기로 결정하여 이젠 1가구 2주택으로 부자가 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통고를 하고는 다른 절차에 관해서도 일러 두는 시간을 가졌다.그날이후 남편은 마음이 어수선하고 편치 않아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남편에게서 두려움과 불안함 그리고 죽음에 대한 염려를 느낄 수 있었다.나역시 오늘이라도 시한부 생명이라는 진단을 받는다거나 또 다른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리 쉽게 마음의 정리가 차분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묘자리 사 놓은 일로 심난해하는 남편이 안쓰럽게 보였다.그것은 그동안의 삶과 오늘하루가 힘겨웠다는 의미다. 그러나 죽음도 또다른 삶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이는 소풍길에 비유하는 사람도 있었다.그리고 변화이고 살아서 움직일때 일어나는 일과 같은 현상이다.그러니 살아있을 때 잘 살아 보려고 했던 일들처럼 죽음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살아있는 동안 삶이 버겁고 힘들어 ‘죽겠다,살기 싫다’하면서 비바람 맞으면서 살때도 있었지만 이왕사는 인생이라면 한번 잘 살아봐야 하지 않겠나 싶어 살다보니 햇볕 쨍쨍한 날도 있었다.죽음도 그와 마찬가지로 같은 동률선상에 있다.이왕 이세상에 와서 그 시간수가 얼마가 되었든 그시간 다 채우고 떠나는 일이라면 가뿐하게 떠나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 우리가 어떻게 죽음을 준비 할 수 있단 말인가?
위에서 말한 이런 준비들이 사정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보다 더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이렇게 살다 가고 싶다. 마음의 준비 일상 안에서 오늘 하루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에 예사롭지않게 여길 줄 알고 많이 웃고 많이 칭찬해 주고 많이 고맙게 여기고 살아간다면 오늘하루 잘사는 일이다 오늘하루 잘사는 일이 죽음을 준비하는 첫째가는 덕목이고 멋지고 소박한 준비가 아니겠는가? 여러분의 준비는 어디쯤 와 있으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