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떠나간 너를 생각한다.
한 때 너는 나의 몸이고 머리카락이었다.
너는 수많은 머리카락 중에 하나였지만
특별히 네가 좋거나 멋있지 않았어도
특별히 네가 나쁘거나 흉하지도 않았다.
열 손가락 중에서 어느 손가락이나 다 똑같다는
변명 아닌 변명, 차별 아닌 차별은 하지 않겠다.
다른 사람들 보기에 나를 돋보이게 하고
네가 없는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았다.
치장을 위해서 너를 다듬을 때도 있었지만
많이 잘려나갈 때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었다.

지금은 떨어져 나가서 독립된 너지만
아직도 나는 너를 남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너는 이제 예전처럼 뽐낼 수도 없고 너의 몸을
치장하거나 자르려고 미장원에 가지 않는다.
너의 전성기는 아마 나와 같이 있을 때가 아니었을까?

아직은 내 눈 앞에서 어디로 갈지 모르고
떨어진 여러 개 중 하나인 너 머리카락이여,
누구나 하는 이별처럼 우리도 헤어져야 할 때다.
너와 나, 우리는 모두 한 몸이었는데
이제 우리는 별개의 독립된 개체가 되었구나.
오랜 시간이 흐르면 너는 보시 받은 땅에 속하겠지.
그러기 전까지 아마 너는
나였던 과거를 지니고 살아갈 거야.

나였던 수많은 나 그리고 나,
잊고 있었던 그 시절의 좋은 추억들,
나와 제일 가까이 있었으면서도
한 번도 아까워하지 않았던 나의 무심(無心),

나도 태어나기 전 엄마이었던 때가 있었고
나도 태어나기 전 아버지였던 때가 있었다.
그들이 나를 그들의 소유라고 주장하지 않듯
나는 나였던 너를 소유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나는 이별이 나의 소유라고 우기지 않는다.
아마 이래서 소유란 없다고 하는가 보다.
그래서 나는 질문한다.
네가 나의 것이었듯이 나는 누구의 소유일까?
나는 나의 소유일까?
아니면 나는 누구의 소유도 아닌 걸까?

소유란 소유(逍遊)하는 것,
가지거나 가지려 하지 않고 흐르는 것.
나의 생각도 나의 육체도 너처럼 흘러가고
당첨될 수 있다는 확신으로 복권을 사듯
부근에는 없다고 아주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나는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믿고 기다린다.
나의 육체도 나의 생각도 언젠가는 다시 만날 거야.
나에게 길게 느껴지는 이 시간은 단지
내가 모든 것을 나의 인생에 비교하기 때문이다.
너무 긴 시간도 너무 짧은 시간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하던데.

나는 오늘도 하루살이처럼
나의 주기를, 인간의 주기를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주기가 길다고 자랑하고
그 주기를 늘릴 수 있다는 선생과 정보가 넘친다.
그러나 조금만 크게 보면 다 거기서 거기다.
자신의 주기에서 절대로 빠져나올 수가 없다.
나는 어떤 능률주의자도 아니고
나는 또 어떤 내용주의자도 아니다.
그렇다고 형식주의도 방임주의도 아니다.
나는 그냥 하루하루 나의 인생을 살고 있다.

수많은 추억을 사진첩처럼 꺼내보고
앞으로 만들 추억을 고민하면서
이 겨울을 보내고 있다.
봄은 또 코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