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흙담벽 위로 넝쿨장미가 피어있는 집을 좋아하고 호박꽃이 올려져 있는 집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발돋움하여 몰래 집안을 한번쯤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식구들이 보는 꽃이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아름다움을 선사해 주려는 마음씨를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마당에 눈부시게 흰 빨래들 사이로 아기의 기저귀가 바람에 팔랑이는 모습에서 순결함과 평화를 느끼고, 대문 앞의 고추나 숯을 달아 놓은 금기줄을 볼 때엔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아기가 자라는 집엔 기도와 축복이 흐르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곳은 더 할 수 없는 천진무구의 세상임을 느낀다. 아이들이 자라는 집은 가난할지라도 꿈이 있고 행복이 있다.
방문 앞에 가족사진 액자가 붙어 있는 집을 방문하면 저절로 눈이 액자 속으로 빨려든다.
퇴색돼 가는 흑백사진과 천연색 사진이 어울린 이 액자 속에는 이 가정의 내력과 행복과 사랑이 고스란히 숨쉬고 있다. 멀리 떨어져 살고 있지만 명절 때 모이게 되는 가족들에게 한 번쯤 옛날의 추억과 사랑을 떠올리기에 더없이 좋은 계기를 마련해 주리라 생각한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모습도 보이고 외국으로 떠나가 몇 해째 만나지 못한 형제도 있다. 편지도 한 장 내지 못하고 얼마나 무심한 세월을 보내왔으며 어머니는 이 사진액자를 들여다 보시는 것을 즐거움으로 알고 지내오시지 않았는가.
어떤 집을 방문하였을 적에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을 보고 화목과 질서를 느끼며, 온 식구들이 대문 밖에 나와서 배웅해 주는 모습에서 예절과 신뢰를 느낀다.
마당에 맨드라미 분꽃 접시꽃 채송화가 피고 석류나무 곁에 펌프로 길어 올리는 시원한 샘이 있는 집을 좋아한다. 잎새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낮잠을 즐기고 싶다. 나는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랫소리가 들리는 집 바깥에 잠시 멈춰 서서 혼자 방 안의 정경을 떠올려 보며, 지금은 찾아보기 힘드나, 내가 어릴 적 어머니 등에 업혀서 듣던 자장가 소리를 흥얼거려 보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떤 가정이 행복한 것일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값비싼 넓은 아파트가 아니다. 아이와 꽃들이 자라는 집, 바로 꿈과 푸르름이 있는 생명공간을 갖고 싶다. 가족들이 모여 얘기를 나누고 정든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음식을 만드는 집을 갖고 싶은 것이다. 난초꽃이 필 때, 그리운 이를 초빙하여 술 한잔 나누는 여유가 있는 삶을 갖고 싶다.
가족과 함께하는 삶이야말로 행복한 인생이 아닐까 한다. 가족과 이웃과 더불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가장 인간다운 삶이 아닌가 생각한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을 것이다. 마음속에, 가정 속에 평범 속에 있다. 가족사진 액자 속에, 식구들의 신발 속에…  바람에 나부끼는 아기의 기저귀와 흙담 위로 고개를 쏙 내밀고 웃는 덩굴장미 속에 있다. 아, 나야말로 언제나 보다 먼데서 보다 높은 곳에서 행복을 헤매어온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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