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한 사장은 필자에게 좋은 사람으로 다가왔다. 2003년에 온 까마득한 이민 후배인 필자로서는 아직도 닮고 싶은 이민선배 중 한 분이다. 밴쿠버 이민사 70년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동분서주할 때 그는 그가 가진 개인적인 사진이나 책자 등 소중한 자료를 모두 기증했다. 참으로 감사했다.
이상하게 본인이 사망하면 모두 사라지게 될 자료들을 감추고 숨기려는 분들이 많았다. 이민사를 기록하려는 것은 먼저 온 분들의 경험을 반면선생 삼아 후세대들이 잘 되게 함이다. 그런데도 자료수집이 생각만큼 잘 되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김사장은 여러모로 개척자이며 선구자다. 최초의 한인 식품점, 최초의 한인식당, 그리고 여행사 등 한인사회를 위해 필요한 여러 비지니스를 하면서 교민들이 좀 더 살기 편리한 밴쿠버로 만들이 위해 노력했다.
그는 1988년 제22대 한인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한인사회를 위해 다양한 일을 하게 된다. 당시 연합교회에서 시작되었던 한인회는 1979년 10월 6307 Chester St., Vancouver에 최초로 독립주택건물을 구입하여 회관건물로 9년동안 사용해 오다가 1988년 2월 동 회관을 매각하고, 동년 3월에 5715 Joyce St., Vancouver에 $172,000을 지불하고 신회관을 구입, 사용하게 된다.(자료 1988년 한인주소록/김지한 제공)
새 회관은 조이스가와 41번가가 만나는 지점에 있어 교통이 사통 팔달로 연결, 교민들의 접근성이 한결 수월해 졌다.
그동안 새 건물을 구입하기 위해 많은 교민들이 자발적으로 모금운동에 참여하였다. 그 결실이 빛을 발하는 날, 김사장은 노인회 회원들과 함께 입주기념식을 했다. 아울러 제69주년 3.1절 기념행사도 새 회관에서 열렸다.
버젓한 한인회관이 있으니 손님들도 많이 찾아왔다. 그래 5월 말경 모국 연예인단이 회관을 방문했다. 제법 영화광인 내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사진 속의 연예인은 유일한 남자배우인 김순철(작고), 왼쪽 두번째 서 있는 정혜선(현재 81세) 정도. 나머지는 낯이 익은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키 크고 잘생긴 당시의 김지한 사장도 그들 옆에 서 있으니 연예인에 버금간다. 젊은 시절에는 나도 한 인물 했는데—세월이 야속하다.
6월 25일은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초청하여 버나비 센트랄 공원에서 피크닉 겸 배구대회를 가졌다. 이름도 모르는 낯선 나라에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젊음을 희생한 참전용사들. 특히 사진 속 가장 좌측의 목발 짚은 상이용사가 눈에 밟힌다.
전쟁 한 달 여 전에 태어난 나같은 핏덩이를 위해 부상을 당했는 듯한 그. 살짝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래서 역사는, 역사의 기록사진은 중요하다. 세월이 흘러 그들이 모두 세상을 버리더라도, 후손들은 영원히 잊지 않고, 그러한 비극이 다시 되풀이되지 않도록 몸과 마음을 갈고 닦기 위해서. 8월 15일은 광복절을 맞아 기념식과 함께 5월 21일부터 한인회가 주최한 ‘아동미술대회’ 시상식을 개최했다. 특상으로 선정된 전미화(영어명 Alice Chun. 당시 에밀리카 초등학교 7학년)양의 그림은 한인주소록 표지로 사용되었다.
‘전 양의 그림은 7학년생의 작품으로는 약간 앳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색상이나 구도 면에서 별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퀸 엘리자벳 공원에서 밴쿠버 전경을 대상으로 그린 작품인데, 동화적이고 정서적이면서 밴쿠버의 풍취를 잘 표현하였다.’라는 심사평이 주소록에 실려 있다.
36년전이니 전양은 지금쯤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에 이르겠다. 어른들이 마련한 아이들을 위한 잔치. 전양은, 아니 전씨는 아직까지 잊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어른들은 자기들이 살아온 경험과 지식을 고스란히 차세대들에게 물려주어 그들이 살면서 시행착오를 덜 겪도록 해 주어야 한다. 사소한 이득을 위해 패거리를 만들고 싸움박질 하는 일은 마치 날이면 날마다 부부싸움을 일삼는 가정과 같다.
그 집안 아이들이 바르게 자랄 수 있을까? 서로 양보하고, 위로하고, 한없이 사랑하는 부부 아래 아이들은 부모들의 성정을 그대로 본받는다. 어른으로 존경받는 여생을 살 것인가, 틀딱충(틀니 딱딱거리며 잔소리나 일삼는 벌레 같은 노인)으로 살아갈까? 온고지신(溫故知新). 옛날 사람들로부터 배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