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이 사랑하는 일이 병을 앓고 있다고 인정할 수 있고 그 병을 이겨내기 위해서 할수밖에 없었던 역할게임에서의 연기가 멈추어진다면 치료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 이후 그것은 그동안에 받아왔던 교육과 사회적인 편견으로 고장난 프로그램을 삶의 지침으로 여겨왔기에 간단한 길을 가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경향의 사람들은 역할 게임 속에서 연기 하곤 한다. 때론 생활 속에서 문제 해결을 잘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동정심을 유발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그녀들은 사랑을 한다고 하지만 행복한 적이 없다.그렇기에 비뚤어진 남자에게 끌리게 되고 선택을 하게 된다.그러고는 그들을 길들이는 일에 총력을 기울인다.어떨 때는 원망하고 저주하고 또 다른 때는 동정하고 측은하게 여기면서…..

나 역시도 그랬고 지금 나를 찾는 내담자들 역시 고통을 호소해 올 때 ‘그러면서 왜 같이 사느냐?’고 물으면 ‘아이 때문에’ 혹은 ‘돈 때문에’ 등 의 이유를 들고 있다.그것도 일정부분은 수긍이 가기는 하지만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내 경우라면 삶의 전부라고 여겨왔던 부부생활이 실패로 끝난 것 같은 평가를 남들로부터 받는 일과 그들에게 어떻게 비춰질까 하는 일이었다. 또한 남자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조력자가 되어 도움을 주면서 언젠가는 그 공로를 알아주는 사람으로 고쳐질거라는 바램도 한 몫한다. 그들은 함께 살면서도 살아준다는 우월감에 취해 있을 때가 많다.그래서 헌신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기도 하고 자신의 공로로서 이나마도 유지할 수 있다고 믿고 주장하기도 한다.그야말로 병이 들어 있기에 우물안 개구리의 시야밖에 볼 수 없는 처지가 전부라고 믿고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을 비교하고 부러워만 할 뿐이지 그들이 어떤 노력을 하는지는 관심도 없고 무시하는 일이 대부분 이다.어떤 경우에도 ‘갑’의 자리에 있고 싶다는 이야기다.

만약 자신의 병을 인정한다면 행동부터 해야한다. 남녀관계 안에서의 편안함과 불편함은 두 사람 모두 함께 겪는 일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상대와 함께 공동으로 작업하는 어떤 계기를 만들려고 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이럴때 상대는 끌려가는 인상을 받기 때문에 거부하는 행동양식을 취할 수 밖에 없다.누가 되었든 처음 시작은 혼자서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결과로 나타난다.어느 한 사람의 용기로 문제를 직시할수 있다면 그와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영향권 안에서 혜택을 받게 된다.
그럼 어떻게 치료할까. 치료에 있어서 만나는 사람들이 사회단체의 일원 이거나 또 다른 특정한 사람이 될 때도 있지만 이 일을 먼저 경험한 사람들의 도움이 더 전문적이고 실질적일 수가 있다.그러나 상황에 따라 전문의를 찾아갈 때도 있다.이런 경우라면 이미 해 볼 만한 일은 다 해본 뒤의 일이다.그래서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오는 곳이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이런 사람들에게 치유가 일어나고 생활이 바뀌어 가는 일은 나와 비슷한 일을 이미 겪었거나 지금도 겪고 있는 사람들의 무리속에 발을 들여 놓는 일이 먼저 행해져야 한다. 생각은 아무리 좋은 생각 이라고 해도 행동이 우선시 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임을 증명해 준다. 그 행동이라 함은 나의 고통을 어느 누구 한 사람에게라도 알리는 일이다.나에게 있어서 그 일은 내 인생의 가장 큰 용기 였으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었다.

나의 경우 이런 치료과정이 진행되면서 내가 알고 있던 사회적인 통념이나 교육의 방향성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로의 잘 잘못을 따져서 좋고 나쁨이 구별되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승패의 문제가 아니고 둘을 나누는 비교와 분별 자체가 부서져 버림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었다. 이전의 나는 너무 사랑하는 일에 집착하여 비뚤어진 남자를 길들이기 위해 무서운 엄마 역할도 서슴치 않았다. 상대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기 죽이고 제압하기 일쑤였고 적어도 나는 실수하지 않는 사람, 완벽한 사람이라고 유세를 떨고 살았다. 그 결과 남편은 천리나 만리나 나에게서 정이 떨어져서 멀리 달아났고 난 외롭고 슬픈 삶의 주인공으로 남았다.

남편은 중독성향이 짙은 사람이지만 우수한 두뇌를 가진 사람이다.
그 기질을 직업이나 삶에 연결하여 적용시킬 수 있었던 일이 지금의 52년차 기술직에 종사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그 일은 엄청난 능력으로 드러나게 되었고 동종업계 에서 많은 이들이 필요로 하고 있고 인생 제 2막의 자신감 있는 행보가 계속되고 있다. 내가 만난 그 남편으로 인하여 난 어떤 병과 성향을 가졌는지를 알게 되었다. 동시에 치료와 회복도 함께 이루어졌다. 함께 회복되어 가는 일에 길동무 되어준 남편에게 소중하고 고마운 맘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