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심기가 불편한 날이 많다.
나 자신의 마음을 건강하게 다잡기 위해서 글을 쓰려고 한다.
평생을 글을 쓰기는 했어도 나이를 먹으니 쓰는 글이 새로움이 없고 생각한다는 생각이 맨날 그 타령이고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고루한 노인네 잔소리 같은 것이 불만이지만 어쩌겠는가, 그릇이 작으니 내가 살아온 인생이 그렇고 살아온 인생 내내 해온 생각이 그것밖에는 없다고 생각하면 무슨 다른 생각을 하거나 쓴다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하다고 자성하게 되었다. 남들을 쳐다보다가 남들을 따라하는 것으로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고 결론짓게 되었고 결국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서 돈과 인성을 바꾼 졸부가 되거나 권력을 손에 넣었다고 해도 무엇이 정의인지 기본을 모르는 정치인이 되지 않았으리라는 자신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의 가난이 그나마 다행스러운데도 불쑥 불쑥 안에서부터 올라오는 섭섭함에 이렇게 휘둘린다. 늙었다는 것에 책임을 지우기에는 낯이 뜨겁다. 수행자가 되었더라도 돈오돈수는 아예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누구나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중생이겠으나 자신을 깨달아야 하는 욕망과 욕망을 끊어야 하는 욕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탐진치의 윤회를 돌 듯 거기서 벗어날 수 없으니 누구를 탓한단 말인가. 마음이 점점 여려지는 자신을 보는 것도, 탓하는 것도 민망하기 짝이 없다.
이럴 때면 나에게 말해주는 스승이 지금 계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지금 나는 아이러니 하게도 나의 눈의 들보보다 친구나 내자의 티눈이 더 잘 보인다. 아직도 세상을 불평하는데 익숙한가 보다. 그들은 언제나 친구이거나 친척이거나 대부분이 내가 만나고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나의 일이 급한데도 자신만 보는 게 아니라 자신을 볼 때 그들이 먼저 보이고 오로지 자신의 문제에 집중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문제는 자신의 문제대로 또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문제는 그 문제대로 한꺼번에 나를 둘러싸게 마련이다. 냉정하지 못한 일 같기도 하고 그것이 다 서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도 있다.
여기서 나는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므로 남들과 같이 산다. 자신에게 대입하는 잣대는 느슨하고 남들을 재는 잣대가 더 가혹한 것은 아니고 분명 의견이나 감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내 판단으로 보게 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 이랬으면 저랬으면 하는 의견이 없을 수 없겠지만 말할 수 없을 때가 많다. 아니 아예 말하지 않는다. 어느덧 그 생각만 그대로 내 마음 속에서 굳어버리고 만다. 젊어서는 서로가 말해주고 고치고 같이 발전하기를 주장하던 바람직한 대인관계의 원칙이 사라지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 새로 사귀고 다시 시작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럴 사람도 없고 그렇게 해서 평생의 관계가 된다고 해도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젊어서 놀고 젊어서 일하라고 했듯 모든 것이 젊어서의 일 같기만 하다. 모든 게 젊어서의 일이라니 더 슬프다. 젊어서는 그것이 목숨 거는 일이라는 생각을 못했다. 순간처럼 지나갈지도 몰랐다. 피를 흘리는 일인지도 몰랐다. 상처 나는 일인지도 몰랐다. 세월을 다 보내버린 지금의 노쇠한 심신은 더 이상 피를 흘리고 싶지 않다. 아주 조그만 상처라도 가지고 싶지 않고 아주 작은 상처도 다른 사람에게 주고 싶지 않다. 상처를 주는 것도 즉시 나에게 돌아와 나의 상처가 된다. 상처가 나면 자랄 때와 달라서 약을 발라도 오래 간다. 아예 낫지 않고 만성이 되거나 흉터로 남거나 덧나기 일쑤다. 나에게 힘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서 타협하고 어떻게 하던지 그런 일을 모면하기 위해서 다른 일을 포기한다. 산행이 위험하다면 거기를 가지 않거나 아예 산을 멀리한다. 물이 위험하면 물을 멀리한다. 내가 사는 환경이 산수를 빼면 또 뭐가 남겠는가? 그러나 무엇이든지 원천봉쇄하고 마는 고집스런 노인네가 되어간다. 나의 몸과 마음은 움츠러들고 실체가 아닌 가짜를 풍선처럼 부풀려 자신인 척한다. 그렇다고 씁쓸한 마음까지 없어지는 건 아니다. “그냥 다들 그렇게 살아.” 하면서 위로 아닌 위로를 한다. 그들도 나처럼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이런 떠밀려가는 노련함과 세련됨이 두렵다. 남들과 같아지는 것이 싫다.
나는 오늘도 꿈을 꾼다. 누군가를 바라봤을 때, 가섭의 꽃을 본 게 아닐까하는 환상 같은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꿈꾼다. 가섭처럼 미소 짓는 사람이 불쑥 내 앞에 나타나는 꿈을 꾼다.

글·사진 | 오석중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