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나는 미안합니다.
살다보니 늙고
늙다보니 떠나는 사람도 많습니다.

여러분, 미워해서 미안합니다.
나는 몰래 당신을 미워했습니다.
대놓고 하지는 못했습니다.

내가 싫어한 가수,
내가 싫어한 탤런트, 아나운서
내가 싫어한 이웃, 친구
내가 싫어한 지나가다 만난 사람,

당신들은 상관없었겠지만
나는 미안합니다.

나의 미움은 그들에게 전달되지 않고
그 미움은 나에게 남아 있다가
나를 부패시키는 거름이 되었습니다.
나는 평생,
사랑한 사람보다는
미워한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나는 단지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쉬쉬하며 말하지 않고 지냈지요.
나는 사랑에도 소극적이었듯이
나는 미움에도 소극적이었습니다.
다행일까요?

불행일까요?
표현하지 않고 알아주길 바랐으며
표현하지 않아서 다행이길 바랐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 인생을 후회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내가 지금까지 무사히 산 것을
나는 내가 지금까지 무난하게 산 것을
후회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나는 나를 미워했던 사람을 떠올려 봅니다.
나를 아직도 미워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나는 나를 사랑했던 사람도 떠올려 봅니다.
나를 아직도 사랑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나는 뒤뜰에 나와서 나를 비추고 있는 햇빛을
막연하게, 焦點 없이 따뜻하게 만나고 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미워할 때 비추던 그 빛 같고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비추던 그 빛 같기도 합니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 있을까요?

60년 전보다 하늘은 뿌옇게 되었습니다.
50년 전보다 내 눈은 많이 흐려졌습니다.
우리들의 미움도 또 그렇게 흐려졌을까요?
우리들의 사랑도 또 그렇게 흐려졌을까요?

내일은 비가 온다는 군요.

비가 오면 먼지는 비에 씻겨 땅으로 흘러가고

그리고 비가 개이면 하늘은 맑아집니다.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도 피어날 거예요.

나의 가슴에는 오늘부터 비가 오고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