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에는 필요한 것들과 그것을 추구하는 일이 많다. 특히 그 중에서 육체적인 즐거움이나 심리적인 만족을 추구하고 두려움이나 결핍에서 자신들을 해방시키고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것들이 채워지면 만족하고 구원이 확실시 될거라는 생각으로 노력하고 희망하며 기도 또한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작 현재 내가 갖고 있는 것은 그다지 좋아보이지도 않고 관심도 없고 맘에 차지도 않으며 이것 말고 저것으로 생각만 옮겨갈 뿐이다. 이 모두는 생각의 움직임일 뿐이고 그것으로 진실이라는 타당상을 찾게 되고 누군가를 문제의 원인에다 결부시키고 있다. 모자라고 없다고 생각하는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의 삶에 뭐가 모자라고 없어서 억울하고 분노하며 원망하고 살고 있는지 필요한 두가지에 촛점을 맞춰 볼까 한다.

첫번째는 편안하고 자신감 있는 마음을 유지하는 일이다.
마음의 갈등은 생각에서 먼저 신호가 온다. 그 생각이란 것이 느낌과 기분으로 밀고 들어 올 때는 속수무책으로 붙들여 헤멜 때가 많다. 뻔히 눈뜨고 자기자신에게 속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생각으로 삶의 추구하는 바를 성취시켜 볼 거라고 무진애를 쓰고는 있지만 매양 한자리에서 맴맴 돌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며 또 절망하기도 한다. 이런 일은 우리가 추구하는 것과 생각너머에 있는 그 본성을 체험하기전에는 항구한 자유와 평화는 말이나 생각에 그치고 마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 한번의 체험은 일찍이 석가모니와 예수가 체득하고 선지식들과 성인들이 체험한 그 일을 두고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또 불교경전에서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했다 여기서의 어떤대상 즉 “나는”과 “존”이라 함은 이 본성 ,법,창조주, 깨달음을 말하고 있고 체험하게 되면 가슴에서 스스로 그런 고백이 나오게 되는 “이 일”이다. 그 체험의 마음 밭에는 해가 지는 일이 없고 영원히 이어질 것이며 또다시 번뇌와 갈등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 없고 더이상 물러남이 없는 불퇴전의 위가 있을 뿐이다.

두번째는 우리가 삶 중에서 씨름하고 있는 일이 “돈”에 대한 일이다.
난 돈에 큰 관심과 욕심이 없고 그곳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말을 믿기가 어렵다.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기 때문에 돈으로 인한 더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다. 재물이 있는 곳에는 마음이 머물기 마련이다. 그런 온전치 않은 맘으로 삶이 피폐해지는 일들 중에 돈으로 문제가 야기됨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돈은 우습게 볼일도 아니다. 나의 마음의 병이 어떤 깨달음의 체험으로 편안해지고 숨통이 트이는 일로 세상이 달리 보이는 일로 나의 경제관념 또한 바뀌어 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바뀌었을까? 분명 남편의 인컴으로는 한달 생활비로는 아무리 쪼개어도 모자라는 금액이었다.
그러나 아주 적은 금액이라도 먼저 저축부터 시작하자는 마음이었다. 돈에 관한한 별도의 왕도는 없는 것 같다. 많이 버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돈을 어떻게 모으고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한 것 같았다. 어떻게 절약할 것이며, 어떤 용도로 쓰여지는가하는 돈에 대한 태도와 관념이 바뀌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 막연한 생각에서 구체적인 행동으로 전환해가는 패턴이 옮겨져가고 있었다.

즉 남편과 나의 정신적 갈등 안에 돈 문제도 일조를 한다는 것과 하루가 멀다하고 치솟는 물가와 노후대책이 시급한 현실문제로 대두되어 있었다. 이 모두는 마음의 안정이라는 토대 아래 이어지는 일이라는 조건이 함께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맘이 편치 않을 때는 돈을 버는 사람도 어떤 목적의식 없이 그냥 왔다갔다 하다 불만과 억울함으로 하루해를 채우고 그때 남편이 가져다준 돈은 남편은 돈을 준다고 생각했지만 난 금액과 계산을 받았던 것이다. 아무런 고마움도 없었고 더 가지고 싶은 마음만 있었을뿐…..

요즘 세간에 유행하는 용어인 YOLO(You Only Live Once)족과 FIRE(Fina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족에 대해 많이들 얘기 하고 있다.이 욜로족이라 함은 한번뿐인 인생 후회없이즐기라는 소비추구의 삶의 방식이다 또 퐈이어족은 조기은퇴를 위한 경제적 독립을 말한다.

나의 경험으로는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이들은 밀레니엄세대로 펜데믹 이후 바뀌어 가는 세상에 그 물결을 스스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고 나이가 어떻고 여건이 어떠하든 공부하면서 스킬을 습득하여 디지털시대에 맞게 직업도 평균 두세개는 가지고 이일 저일 자신에게 맞는 일을 컴퓨터 한대로 돈을 벌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큰 부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고 소비를 많이 하지 않아도 대체되는 소소한 행복을 찾아서 살아낼 수 있고 그 소소한 행복을 작은 자본으로 극대화 하기위해 돈을 얼마나 쓰야 하는지를 알아낼수 있는 삶을 영위할 줄 아는 사람들의 부류이다. 즉 나의 삶이 행복하기 위하여 뭘 해야 하는지를 알고 행동하는 사람들이랄까?

지난날 나의 맘이 온전치 못하고 그로 인하여 몸이 맘과 함께 “나 죽겠다”고 하는 바람에 경제적 관념은 비현실적으로 바닥을 쳤고 그럼으로 인하여 생활은 매달 쪼들리기만 하였고 아이들도 욜로족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런 한탕주의로 살고 있었다. 흔히들 자식은 부모에게서 “시킨대로는 잘 하지 않아도 본대로는 한다”는 말이 있다. 부모가 그렇게 대책없이 가난하다고만 하고 살았지 어떻게 살아야하는 방도를 보여주지도 못했다는 일이다. 그 시기에 나에게도 모든 것이 장애로 느껴지고 그런 환경이 발목을 잡았지만 그렇다고 그 결핍과 아쉬움을 베짱이처럼 나무그늘 아래에서 한탄의 노래만 부르고 있을 수 만은 없었기에 작은 도전이었지만 식구들과 나자신에게 마음의 치유를 신앙안에서 그토록 목마르게 찾던 사랑이 이런 모습으로 표현된다는걸 보여주고 싶었으며 그것은 말이나 이론이 아닌 생산적인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또한 그때의 돈에 대해 경제관념없이 허덕이던 생활도 불행한일이 아닌 나의 자산 항목에 들어가는 일임을 알게도 되었다. 그런일이 있었기에 돈을 우습게 여기지 않게 되었고 돈 벌어오는 사람에 대한 나의 예우가 달라지고 고마움과 인정의 표현이 소득을 높이는데 일조하게 되는 일로 연결되어 갔다. 일선에서 손을 놓고 팬션(연금)에만 의존하는 삶이라 할지라도 아주 작은 금액으로도 저축을 하거나 소액의 종자돈이라도 있다면 소일삼아 투자(Invest)에 관해 많은 영상과 서적들로 정보가 많은 세상이니 공부하면서 소소한 재미를 보는 경우도 있다.

나의 삶의 행보는 어떻게 바뀌어 갔을까?
난 십여년 전부터 내 삶의 경제적인 위기와 노후대책이 심상치않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돈은 쓰지 않는 것에 주력하게 되고 정기적으로 무조건 월급을 가져오면 저축부터 하고 그 다음은 어떻든 맞추어 살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저축금액이 높아지게되고 투기와 투자에대해 공부를 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금융에 관한 정보에 관심을 기졌다. 소득이라면 저축하고 맞춰서 사는 나의 경제관념을 아이들이 보고 따른다는 일이다. 그것은 FIRE족으로 살아가는데 한걸음 내딛는 일이며 혜택이 보장되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은 지난날 진흙탕에 빠진 나의 삶의 행보를 내 아이들은 걷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게 돈이 없을때는 아이들은 돈을 달라고 아우성을 치더니 지금은 돈 달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오히려 얘들이 나에게 자주 돈을 준다.

참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