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접했던 이야기 하나가 생각나는 오늘이다. 프랑스의 공군 조종사이자 외교관 그리고 소설가였던 로맹 가리는 어렸을 때 어머니가 장신구를 팔아서 겨우 생계를 이어 나갈 만큼 가난한 가정에서 성장하였다고 한다.
힘겨운 어린 시절이었지만,
그의 어머니는 늘 로맹 가리에게 희망의 말을 전해주며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너는 훌륭한 소설가도 되고 외교관도 될 거야.” 라고 들려주었던 어머니의 모습이 그를 이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게 만들었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공군 조종사가 된 로맹 가리는 국가의 부름을 받고 전쟁터로 떠나게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전쟁터에 있는 아들에게 계속하여 편지를 보내었고 아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으며 그렇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던 것이다.
편지속의 어머니의 메세지에도
“무엇이든지 네가 마음먹은 대로 분명히 이루어질 거야.”라는 위로로 로맹 가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있었다.
이렇게 로맹 가리는 3년 동안 어머니를 만나지 못했지만 사랑이 듬뿍 담긴 편지를 계속 받아볼 수 있었고 그렇기에 그 긴 시간의 전쟁터에서도 무사히 귀환할 수 있게 된 것일지 모르겠다.
고향으로 갈 때쯤에는 어머니로부터 받은 편지가 250통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런데 마지막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아들아, 내가 한 잘못을 용서받을 수 있다면 좋겠구나.”라는…
로맹 가리는 어머니의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전쟁은 끝났고, 많은 훈장과 공군 대위 계급장을 달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 앞에는 그를 반겨줄 어머니는 더 이상 계시지 않았다.
이미 오래 전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아들에게 보낸 250통의 편지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의 10일 동안 아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하여 미리 써 놓은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웃에게 1주일 간격으로 편지를 아들에게 보내 달라고 부탁해 놓았던 것이다.
자신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아들에게 희망을 담은 편지를 온 힘을 다해 써 내려갔던 어머니…
그 어머니의 한없는 사랑을 우리 자녀들은 다 알 수 있을까? 그리고, 평생 살면서 조금이나마 이 마음을 닮아갈 수 있을까를 스스로에게 묻고 생각하는 나는 열 아이들의 어머니 자리에 서 있다.
우리 자녀들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긍정적인 표현은 나와 부모님들이 갖는 공통된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이 아이들의 가능성을 꽃피우게 하기위해서 자신감을 느끼도록 끊임없는 격려와 그들의 노력을 이해하는 큰 마음의 표현이 지속되어야 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 또한 어른들의 몫인 것이다.

나의 어린 자녀들과의 1년전 첫 만남의 모습이 기억 난다.

씻고 먹으며 입고 자는 것 또한 스스로 챙기는 것이 쉽지 않은 3, 4학년의 어린 아이들의 모습은 생각과 행동이 모두 달랐고 아이들마다 표현이 다르게 결핍되어 있는 모습도 가지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한 가지 일화로, 집이 낯설어 무서움을 표현하는 아이는 항상 불을 켜고 있어야 하였고 화장실을 갈 때도 문을 닫는 일은 생각하지도 못 하였다. 그렇다 보니 안방에서 데리고 자야 하는 것도 여러 날이었고 그에 따라 다른 아이들도 모두 안방에서 함께 하는 날이 많았던 기억이 있다. 마치 군대의 취침 모습처럼 옆으로 나란히 누운 아이들을 보며…사생활의 존중은 잊은 지 오래 되었고 오히려 내가 낳은 아이들이라는 상상에 부자가 된 것 같은 날도 있었다.
작은 아이의 표면적인 불안감은 어쩜…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 중 일부분일 수 있다.
외동으로 성장하거나 귀하게 보호받고 자라는 우리 아이들은 세상에 대한 면역력이 생각보다 강하지 않은 것 같다. 단체 생활에서 함께 듣는 훈육의 분위기에 주눅이 들어있고 한국 생활의 바쁜 스케줄과 확대 가족이 생소한 아이들은 모두 상실의 시대에 서 있는 듯 느껴진다. 또래 아이들끼리 비교 대상이 되고 물질 만능주의에 익숙한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은 것이다. 많이 가졌고 누리는 환경 속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단 하나의 잃음에도 긴장하고 두려워하기에 ‘상실’이라는 단어에 약자가 될 수밖에 없는 듯하다.
이 곳에서 나누어야 하고 배려하는 생활에 익숙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지금처럼 에티켓있는 초등 고학년이 되기까지는 모든 아이들의 부모님과 이 곳에서 만난 어른들의 애정과 격려가 있고 타인과의 저울질하게 되는 평가가 아닌, 자신을 뛰어넘는 것을 배우는 문화가 주는 결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내 아이들은 아침에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경우는 누룽지로 속을 달래고 등교하는 것을 따뜻하게 느끼기도 한다. 아이들이라서 햄버거 피자만을 좋아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엄마의 위치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첫 단추는 의식주의 편안함이다. 그 후에 보여지는 진심이 담긴 어른들의 마음과 행동은 작게 움츠려있던 아이들의 날개를 펼치게 하는 것이다.
지금 작은 아이들은 저마다 색빛을 만드는 중이다. 이미 아이를 성장시킨 나로서는 그 시절 로맹 가리의 어머니처럼 행동하지 못 한 부분을 아쉬워하며 이 작은 아이들에게 성숙한 태도로 임하려고 몸을 낮추고 있다.
적어도 우리의 자녀들은 두려움, 상처, 사랑의 결핍, 강박, 외로움…등의 개인적 취약성은 접하질 않기를 바라며 말이다.

등교하는 이 아침,
부모님들의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들려주었다.
“부모님의 사랑은 언제나 지속적이고 너희들의 존재 그 자체에 감사하며 행복하고 계심을 잊지 않아야 해. 그러므로 너희들은 언제 어디서나 고개를 떨구지 않으며 세상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하루를 보내고 오도록 하렴”
이 말에 “네”라고 대답하는 아이들의 음성이 참으로 듣기 좋은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