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이원배
 
기다리던 첫 손자가 태어났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면서 그 작은 입을 오물거리기도 하고 하품도 한다. 세상에 나오기를 기다리던 열 달은 너무 지루했다는 듯. 앞으로 만날 아기의 세상은 재미로 가득하도록 해 주어야 할 것이 할애비라는 생각이 든다. 어깨가 무겁다.
품에 안고 찬찬히 뜯어보는 얼굴. 참 친숙하다. 내 아들, 그러니까 지 애비 처음 세상 볼 떄 얼굴과 꼭 같다. 그 얼굴에는 나와 내 아버지의 모습도 오버랩 된다. ‘ 참 신기해요. 그래서 씨도둑은 못한다더니 영락없는 당신네 집안 남자네요.’ 아내의 한마디가 아니더라도 경이롭다. 도톰한 입술, 넓은 양미간, 동그르한 코, 초롱한 눈매. 태어나면서부터 어쩌면 그렇게 우리집안 남자들의 기본적인 용모를 지니고 나올까.
내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대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조상을 닮은 아들을 보며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었을 선조들이 생각난다. 인간이 갑자기 우박처럼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닌 이상, 수천 년, 수만 년 거슬러 올라가면 거기 태초의 조상이 있었으리라. 200만 년 전의 호모 루돌펜시스, 또는 호모 하빌리스로부터 100만 년 전의 호모 에렉투스, 호모 에르가스터를 거쳐, 호모 안테세소르, 하이델베르크인, 호모 플로랜시스에 이르러 마침내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에 도달하기 까지 뿌리는 계속 뻗어 나갔으리라. 그들이 있었기에 현재의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겸허함이 온 몸을 감싼다.
인간이 기록을 남기기 전까지의 조상은 알 수 없다. 미국 작가 알렉스 헤일리의 소설 ‘뿌리(Roots)’에서 그의 7대 조상인 ‘쿤타킨테’가 1767년 아프리카 감비아에서 노예사냥꾼에게 잡혀 미국으로 끌려온 이야기를 200년이 지났는데도 외우고 있는 역사전달자이자 이야기꾼인 한 노인으로부터 들었을 때 그의 감동은 대단하였을 것이다. 우리는 나라에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성(姓)씨가 하사된 고려시대부터 족보가 만들어져 오늘에도 소위 조상의 업적이 큰 집안사람들을 뼈대 있는 집안, 또는 ‘족보 있는 집안’ 후손이란 자부심을 가지게 한다.
우리 집안은 본관이 진성(眞成)인 이 씨 집안이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본관만 겨우 알 뿐 계파를 잘 알지 못했다. 그저 퇴계 이황의 자손이라는 자부심만 코에 걸고 다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퇴계는 집안 조상일 뿐 내 직계는 아니었다. 다만 우리 집안이 학자출신이 많다는 것에 그나마 내가 문학을 하고 박사공부를 한 당위성을 억지로 견주어보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손자의 이름을 지으면서 뿌리가 궁금해졌다. 내가 사는 곳은 캐나다 밴쿠버이고, 손자가 앞으로 살아갈 곳도 한국이 아닌 이곳이다. 손자 이래 후손이 생겨난다면 어느 시점까지 우리가 진성이씨 가문의 일족이라는 것이 알려질까 궁금하다. 서양 사람들은 본관이라는 개념이 없으니 뿌리의식이 희박하리라 생각했었는데 그들도 가문의 조상을 의식하는 소위 ‘양반’들이 많다. 내가 왕가의 후손이라느니, 백작의 후손이라느니, 물론 사석이지만, 이런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하는 백인들을 가끔 본다. 족보는 없지만 가계도(Family Tree)라는 것을 만들어 후손에게 알리기도 하고, 인터넷에 ‘조상 찾기(Ancestry)’ 사이트가 있어 수수료를 내면 어느 정도까지의 조상계보를 찾아준다.
나는 둘째아들이라서 족보는 그동안 서울에 있는 형님이 보관하고 있었다. 내 항렬은 원(源), 아들은 동(東), 손자는 환(煥)인데, 혹 겹치는 이름이 있을 까 해서 우리 가족이 있는 부분을 사진으로 찍어 카톡으로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족보 표지를 보니 ‘진성이씨 참의공파 세보’라 적혀 있었다. 70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아, 참의공파 후손이구나!’하는 것을 알게 되어 조상님께 부끄러웠다.
본관이라는 것도 대부분 시조할아버지가 태어난 곳을 지칭하는데, 우리 집안 선산이 대대로 안동에 있어 나는 ‘진성’이라는 고을이 안동에 속한 줄로만 알았다. 이번에 손자의 탄생을 계기로 제대로 된 뿌리를 정리해 두어야 겠다는 생각이 알렉스 헤일리처럼 불현듯 일어 조사를 좀 해 보았다. 그랬더니 ‘진성’은 경상북도 청송군에 있는 ‘진보’면의 옛 명칭이란다. 인터넷 자료가 없었더라면 자칫 뿌리없는 집안이 될 뻔 했다.
그러나 안타까움은 여전하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젊은 아빠’들은 집안 항렬을 거부하고 자기 자식들이 태어나면 순한글 이름이나 영어이름을 짓기를 고집한단다. 밴쿠버는 오죽하랴. 학교에서 부르기 힘든 이름은 외면당하고 심지어 놀림까지 당한다니 모두 이름자, 즉 퍼스트네임은 영어로 정한다. 그나마 항렬이 들어간 한국이름은 중간이름, 즉 미들네임으로 전환해 버리고, 그렇게 자란 2세, 3세들은 본관을 물으면 외계인 언어처럼 생소해 한다. 심지어는 본관을 주 건물(Main Building)로 잘못 이해하는 젊은이들이 있으니 살기에 바빠서 뿌리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 부모를 탓해야 할 지 아니면 바뀐 세상을 탓해야 할 지 모르겠다.
고려 충렬왕 때 청송군 진보현리로 있다가 생원시에 합격하여 일가를 이루기 시작했다는 시조할아버지 이석. 그의 뿌리에서 조선시대 성리학을 집대성한 대학자 이황과 민족시인 이육사(항렬명은 이원록)를 비롯한 수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다. 하늘에서 보면 그 뿌리가 힘차게 뻗어 오대양 육대주를 아우르니 얼마나 흐뭇하실까 생각된다.
캐나다 밴쿠버. 또 하나의 씨앗이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 태평양을 건너 타국 땅에 안착했다. 이곳에서 내리는 내 집안의 뿌리가 좋은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나무로 자랐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수세대가 흐르면 한국에 대한 추억과 향수는 사라지고 그냥 캐나다인의 이름으로 남을 나의 후손들. 그러나 대대로 학문을 숭상하고 겨레와 민족을 위해 온 몸을 바친 조상들처럼 그들이 서 있는 곳에서 자랑스러운 가문의 후손이라는 긍지를 가지고 잘 성장해 주었으면 좋겠다.
품에 안은 손자가 알겠다는 듯 끄덕이는 것 같다. 아니면 고리타분한 할아버지의 설교가 지루해서 하품을 하는 것일까? 꽉 움켜지고 있는 앙증스러운 손을 살짝 만지면서 이렇게 속삭여 본다. 세환아. 약속하는 거야. 너는 너의 뿌리를 잊지 말아라. 잃지도 말아라. 너는 진성이씨 참의공파 24세손이란다. 어서어서 무럭무럭 자라 세상에 이름을 빛내고 한국인의 얼과 정신을 빛낼 큰 인물이 되어야 한다. 그때쯤 내가 너와 함께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늘에서도 너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고맙다. 네가 이 세상에 와 주어서.
  
**이원배
시인, 수필가. 캐나다 한국문협 이사장, 시집 ‘이방인 향단이(2000년). 2016년 해외한국수필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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