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다 잠에서 깨어났다. 새벽 두 시쯤 되었을까? 오늘 꿈 내용은 작년 이맘때쯤 이별을 하게 된 남매와의 재회였다. 헤어지는 과정이 그리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이별이었기에…나에게는 부끄럼움처럼 여겨졌던 그 이별은 남매의 어머니와 맥주 한 병 씩을 나눠 마시며 술 값을 치른 후, 아이 둘에게 용돈을 쥐어 주며 잘 지내라는 인사로 웃으며 헤어졌다.
어쩜, 일 년의 시간이 흘러오며 마음 한 켠에 부담으로 있었기 때문인지, 이 꿈으로 아이들에 대한 서운한 감정과 미안한 마음이 어느정도 치유가 된 듯하다.
 
4주간의 겨울 캠프의 끝은 아이들을 한국의 부모님께 인계 해 주며 마무리가 되었고, 웃으며 헤어지는 얼마 전의 모습에는 후회 보다는 아쉬움이 더 크게 자리 잡았다. 조금 더 즐길 경험을 많이 할 걸~ 맛난 음식도 더 많이 해 줄 걸~ 등등.
늘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지향점은 후회 없는 삶의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네의 삶은 늘 후회라는이것을 반복하기 일쑤이니 그래서 자기 반성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이렇게 웃으며 헤어질 수 있는 이별은 아쉬움이 남고, 예의를 갖추지 않는 이별은 언제나 서운함과 후회가 남는 듯 하다. 그렇다보니 이제 3개월 후면 졸업을 앞두고 있는 우리 집 두 아이에게도 늘 버릇처럼 얘기하곤 한다. 끝까지 잘 마무리하여 얻고자 하는 성과를 가지고 돌아가며 웃는 이별을 하자’ 라고…
 
홈스테이 맘으로 살아가며 요즘처럼 자기 반성이 많았던 시간도 처음인 것 같다. 복잡한 감정과 속상함에 내 안의 감정을 내려 놓고 들어 놓기를 반복하며 지내는 요즈음엔 나도 모르게 말씀을 붙들게 되는 걸 보면 칭찬과 위로가 참으로 그리운가 보다.
처음 시작하며 첫 아이들을 졸업 시킬 즈음 까지만 하여도 주위의 어른들께는 ‘저렇게 하기 쉽지 않을텐데, 참 아이들에게 잘 하네, 아이들 참 착하네’ 등의 소리를 들으며 지칠 줄을 몰랐던 것 같다. 초신자였던 우리 가정의 열심은 일상에서도 함부로 살 수 없었던 기준점 역할을 했던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 후 몇 년은 겉치레로 생활 하였던 모습도 컸던 게 현실이었다. 그렇다보니, 아이들의 말 소리 하나에도 상처 받았고, 그냥 웃어 넘기는 태연함이나 너그러움이 결핍 되는 하루하루를 보냈던 게 사실이다. 나의 마음이 이러함을 느끼게 된 동기가 된, 이번 겨울 캠프 아이들과 부모의 만남은 어쩜 하나님께서 주신 마지막 붙드심이 아닐까 생각하여 본다.
 
이 번 한국 방문 일정에서 상담을 하게 된 겨울 캠프 아이들의 엄마들은 오랜만에 만나 대화를 갖게 된 젊은 세대들이었다. 대학생 아들을 둔 나는 꽤 나이가 있어 보일 것 같은 느낌으로 그 자리가 즐거웠음 하는 기대로 듣기를 많이 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고작 큰 아이가 중학교 1학년이 되는 나이가 가장 연장자인 엄마는 초등학생만을 둔 그녀들 사이에서는 왕 언니처럼 대우를 받는 듯 하였다.
나름의 역사를 자랑하던 서울의 모 초등학교가 폐교가 되는 시점, 경기도 외곽에서도 더 들어가야 하는 위치의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누구 집에 수저가 몇 벌인지 알 정도로 좁은 지역이고 적은 학생 수를 보였다.
하지만, 세월은 지역이나 학생 수와는 별개로 지금의 한국 분위기를 따라가 듯 엄마들은 교육에 열정이 가득하였다. 그것도 이해가 되는 것이, 4주 캠프에 수 백만원을 들여 영어 캠프를 보내는 현실이니 지역에 상관없이 자녀 잘 키우기 부모의 마음은 지역이나 나이가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이 자리에서의 화제도 ‘어느 집 아이는 유치원 시절부터 원어민 수업을 하였다. 수학 과학 과외를 몇 회 한다. 음악도 체육도 어디를 나가서 배운다더라. 용인 외고가 목표라던데…’ 라는 등등의 대화는 쉴 틈이 없이 내뱉어졌고, 예전에 느껴 보지 못한 마음 속에서 나오는 나의 미소는 여유가 아닌, 그 뒤에 겪을 수 있는 허탈함으로 다가왔던 게 아닌 가 싶었다.
이 자리의 상담은 진정한 교육의 대화가 이루어지기는 이미 물 건너간 듯 보였다. 아이들이 무언가 크게 될 것이라는 기대에 가득 찬 그녀들에게 할 수 있는 나의 객관적인 말은 ‘누구는 머리가 스마트해요. 누구는 운동 신경이 좋아요’ 등의 기분 맞추기 정도였으니 그 옛날 상담으로 300-400과목을 계약했던 나는 이미 실패한 상담 자리였다. 그저, 우리 집 예쁜이 혜란이 엄마에게만 진심이 담긴 나의 말을 전한 자리일 수 밖에 없었다. 동생을 4주 정도 지켜보니, 대인 관계에도 활발한 성향을 보이고, 머리도 영리한 아이이니 좋아하고 잘 하는 걸 시키라고, 누가 무엇을 하니 따라가는 게 아니라 아이가 좋다고 말하고 잘 할 수 있는 것 하게 해 주며 가족이 화목한 것만 보이라는 나의 말에는 진심이 전부였다. 정이 많은 아이라서 친구에게 맺고 끊음을 잘 하는게 부족해 보였기에 한 친구와 단짝이기 보다는 폭 넓게 친구를 사귈 수 있는 활동 영역만 넓혀 주면 참 좋을 거 같다는 말도 함께 전하였던 그 자리는 2시간쯤 지났을 때 끝마칠 수 있었고, 대한 민국의 교육이 조금씩 쉴 틈을 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음 하는 바람으로 나는 그들을 이 곳에 공부 하러 오라는 말은 전혀 섞지 않고 후회 없는 헤어짐을 가졌다.
 
이렇게 나만의 정답 같지 않은 행동에는 얼마 전, 도움을 받게 된 백화점 안내 요원의 모습이 많이도 기억에 남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밤 10:30이 되니 문을 닫는 백화점에서 아들을 기다리며 닫히는 문을 바라보던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에… 마치 서울에 처음 상경하여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노인처럼 사정을 얘기하였다. 안내 요원은 보이기에 23-25살 정도로 보였는데 나를 1층 지하철 연결 장소로 안내 하며, ‘아드님께 00역에 내려 00길을 따라 오면 백화점 입구와 맞닿는 곳이 이 곳이다. 이 곳 1층은 12시까지 문을 닫지 않으니 쉼터 의자에 앉아 기다리시며 아드님을 만나게 되면, 주차장으로 연결 되는 한 통로를 가리키며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안전하게 차를 가지고 귀가하라’는 안내로 나를 흐뭇하게 하였다. 내가 글로 표현하는 것 보다 훨씬 친절하고 적극적인 그 누군가의 아들은 참으로 훌륭하게 느껴졌다.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내 아들이 이 청년 같은 나이가 아니었을 때는 공부 잘 하여 높은 자리에 앉을 사람이 되기를 바라였지만, 누구든 보기에 좋은 대학 입학과 나름의 목표도 높은 아들을 둔 나는, 지금 가장 갈망하는 것이 어느 직업, 위치에 있든 최선을 다하며 자기 역할을 하는 이 젊은 청년처럼 자리길 간절히 희망하게 된다. 나이가 들어서도 부모와 가족을 만나는 게 즐거움이 되고, 소소함에 행복을 찾는 것이 진정한 삶이 아닌 가 하는 내 생각은 부모라면 누구나 갖는 희망이길 권하여 보고 싶다.
행복의 기준이, 또는 사람의 평가가 스펙이나 재력이 아닌 참 인간됨임을 함께 바라여 보며 이러한 자녀 되기를 기도하는 부모의 역할이 필요한 지금이지 않을까 싶다.
이런 말씀이 오늘도 가슴을 두드린다.
‘네 자신을 알라’라는 말씀으로 각자가 모두 귀한 존재임을 안다면, 눈에 보이는 인간적인 행복이나 타락을 쫓지 않을 것이라는 어느 목사님의 설교 말씀은 내 자녀들에게 ‘’너희 모두 참 귀한 자녀이다” 라고 얘기해 주며 꼭 안아 주고 싶은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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