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마지막날 아침 일찍 설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시모아 마운틴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원래 계획은 좀 더 일찍 출발하는 것이었지만 밤에 잠을 설치다 7시가 넘어서 일어 나는 바람에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그리고 집에서 출발하여 5분도 채 되지 않아 집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설산을 등산하려면 스노 슈즈나 크럼 폰을 가져가야 하는데 스노 슈즈는 고장 났고, 크럼 폰을 가져간다고 생각만 했지 가방에 넣지 않은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서 아내가 내민 것은 셀폰이었다. 셀폰도 안 챙긴 것이다. 내가 왜 이럴까?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몰라. 자꾸 잊는 것을 반복한다. 병원 치료받을 땐 목록을 적고 노트하라고 했지만 노트에 열중하면 다른 것을 잊기 일쑤이다.

아무튼 즐겁게 다시 출발하여 밴쿠버 나이트 스트리트를 거쳐 NO 1 하이웨이로 진입하여 시모아로 향할 수 있었다. 시모아로 올라가는 길 입구에서 직원들이 위에 올라가는 이유를 묻는다. 하이킹하러 가!라고 말하니 위에 가면 주차공간이 없을 수도 있다고 한다. 난 이때 여기서 돌려 내려왔어야 했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게 된다. 경사가 심한 시모아 길을 엔징이 힘들어 힘들어 반복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힘들어도 올라가야 돼 하고 올라갔다. 결과는 주차공간으로 쓰는 사이드 로드는 물론이고 한참 아래 있는 2번 주차장에도 꽉 찼다는 사실이다. 중간에 차를 돌릴 수도 없어서 아니 혹시나 하는 미련 때문에 올라갔지만 결국 차를 돌려서 내려와야 했다. 제2주차장에 혹시 주차공간 있다 살피는 차들을 보며 난 미련 없이 내려왔다. 그리고 내려오면서 그럼 어디로 갈까? 딥 코브로 갈까 아니면 린 벨리로 가서 라이스 레이크로 갈까? 망설이는 와중에 딥 코브와는 반대방향인 고속도로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고속도로에서 린 벨리로 향하는 출구를 2개나 그냥 지나치고 나서 차를 돌려 돌아갈까 하고 망설이다 그냥 쭉 가고 있었다. 사이프레스로 향하는 나는 결국 사이프레스 출구로 올라가고 있었다. 시모아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가 9시였다. 그래서 좀 더 일찍 올 걸 하는 후회를 했었다.
그리고 사이프레스 3번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기 전 홀 리번으로 올라갈까 하다가 큰길은 물론 3번 주차장까지 주차하고 홀 리번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보고는 보웬 아일랜드 뷰포인트까지 갔다 오자, 컨디션을 봐서 더 가던지 하고 할 수 있는데 까지 하고 무리하지 말자고 마음을 먹었다. 주차장 끝에 초소에서 하이킹하는 사람들의 무료티켓을 나누어 주고 있다. 그리고 조금 걸어 커브를 돌아가니 반 정도 빈 주차장이 나온다. 뭐지 하는 순간적인 후회. 여기다 주차할걸 하다가 그곳은 스키나 스노 보더 타러 가는 사람들이 주차한 것을 알게 된다.
스키 티켓을 팔고 장비 대여해주는 롯지 앞에 와서 크럼 폰을 신발에 차고 출발하면서 시간을 보니 10시 15분 스키를 타려는 사람들은 대규모 무리가 되어 컨베어 벨트의 상품처럼 곤돌라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의 얼굴엔 만면의 웃음과 행복이 보였다. 하이킹하러 올라가는 나와 그들이 비교된다. 나도 한 번쯤은 스키를 타고 싶다. 그래서 그들이 부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하이킹을 좋아해 하면서 길게 늘어선 줄에 서있는 그들을 지나 산행 트레일 입구에 들어섰다. 갈림길에서 다시 이글 블루프와 블랙마운틴이 있는 쪽으로 갈 것인지 잠시 망설이다 보엔아일랜드 뷰포인트로 가기로 했잖아 하고 나를 오른쪽 길로 밀었다.
올해 겨울 두 번의 눈산행을 했다. 두 번다 밴쿠버 병원에서 치료차 카운슬러와 동행한 홀 리번 산행. 그래서 이번에도 홀 리번으로 올라가려고 했다. 두 번의 경험이 두려움을 없게 했으니까? 하지만 마음은 세인트 마크 길에 눈길을 그리고 있었다. 같은 눈길이지만 완연히 다른 두 산행길은 자세히 보아야 더 이쁜 세인트 마크 산행길이다. 시작은 힘들지 않지만 숲길을 지나 언덕길이 나오면서 여기도 언덕길이 있었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곳 보웬 아일랜드 룩아웃 트레일은 사람들이 장비도 준비하지 않고 오는 경우가 많다. 물론 홀 리번도 마찬가지다. 아무런 장비도 없이 미끄러운 신발만을 의지한 그들을 보면서 안쓰러운 생각까지 든다. 언덕을 오르면서 숨이 차고 다리는 아프고 이제 시작인 산행에 힘든 것을 느낀다. 그리고 보웬 룩아웃까지 얼마나 걸리냐고 묻는 사람에게 20분 정도만 올라가면 된다고 했다. 나는 성큼성큼 앞서 걷는다. 그리고 도착한 보웬 룩 아웃은 정말로 그리 같이 아름다운 하늘 눈이 쌓인 산이 멀리 보이고 육관으로도 또렸이 보이는 섬의 집들까지 아름다운 날이다.

고사목은 오늘도 그 자리에서 까마귀와 함께 날 반긴다. 그리고 새들이 사람들 머리에 앉기도 하고 손바닥에 먹이로 유인해서 새의 사진을 찍기도 한다. 누군 이게 불법이라고 야생동물보호법에 위반이라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새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갖는다. 앉아서 간식을 먹는 이들 점심을 먹는 이들… 올라올 때 앞서 왔는데 얼마나 걸리느냐 묻던 이들도 도착해서 반갑다고 인사한다. 새들 찍는 사진사들이 새들을 찍고 젊은 친구들에게 사진을 보여주니 와우 하는 감탄을 한다.

그리고 스낵을 먹고 물을 마시고 세인트 마크 정상으로 향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목표지점이 바뀌었다. 보웬 룩 아웃까진 사람들이 왕래가 많지만 이젠 사람이 뜸하다. 익숙한 산길 하지만 왠지 낯설기만 한 오솔길을 걸으면서 한 발만 잘 못 디디면 저 아래로 굴러 떨어지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곳은 3미터가 넘는 눈이 만든 홀이 있었는데 그곳에 빠지면 나오기 힘들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벗어나면 눈이 푹푹 빠질 텐데 과연 다시 트레일로 올라올 수 있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든다. 그렇게 산행을 하면서 눈사태가 자주 일어 나는 곳에 도착하기 직적에 까마득한 절벽에서 일단의 젊은 친구들을 만난다.

그들을 뒤로하고 조심조심하면서 눈사태 지역을 벗어나 마운트 스트라찬이 보이는 협곡에 도착해서 앞서 가는 백인 부부를 만났다. 그들은 길을 찾느라 열심히 네비를 보고 있었다. 난 이 길이 맞다고 이야기하고 앞서 걷기 시작했다. 조금 더 가서 앞서 가던 다른 팀을 만난다. 그리고 험한 산길을 지그재그로 올라가면서 지금까지 온 것보다 이곳이 힘들다는 것을 느낀다. 전에 세인트 마크에 산행할 땐 동행이 있어서 힘든 것도 불안한 감정도 없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이곳의 힘든 기억이 없는데 갑자기 나타난 난관처럼 생소하다. 그래도 앞서 가는 다른 팀을 쫓아 열심히 올라가다 그들을 놓쳤다. 이곳이 정상인가 싶었지만 정상이 아니었다. 뒤따라 오던 부부도 와서 다시 네비를 보던 중이고 난 트레일에서 하산하는 중국인 팀을 만나 정상이 얼마나 남았냐고 하니 절반 왔다고 한다. 뭐라고 절반? 갑자기 멘붕이 왔다. 그래서 열심히 트레일을 따라서 내려가다 다시 또 다른 오름이 있음을 본다. 지그재그 산길인 데다 폭이 좁아서 스노 슈즈로 걷기는 어렵겠다. 그래서인지 스노 슈즈를 벗어서 배낭에 맨 사람들이 많다. 미끄러울 텐데. 좁은 길 가파른 비탈. 아차 하면 미끄러지기 싶상이다. 그렇게 오르다 보니 마치 금줄 쳐진 것처럼 줄로 쳐서 못 가게 한 곳도 있다.

지난번 토론토에서 와서 사망한 등산객의 생각이 났다. 세인트 마크에서 왜 길을 잃고 사망할까 했는데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든다. 힘든 고비를 스낵과 물을 먹으면서 버티며 올라 드디어 정상 언저리에 오니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들은 하나같이 힘내라고 다와 간다고 위로를 한다. 땀으로 흠뻑 젖은 모자를 벗어 버리니 나이가 들어 보여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숨은 차고, 다리는 후들거리고 결국 정상에 도착하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사람들이 그곳에 있다. 안면이 있던 사진사에게 사진을 부탁하고 사진을 찍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기록에 남는 사진이다. 난 사진 포인트로 유명한 절벽으로 가는 길 입구에서 아침에 급하게 싸운 잼 샌드위치와 사과, 바나나 그리고 물로 점심을 했다. 비닐로 깔고 폴을 놓고 앉았는데도 엉덩이가 축축하게 젖어오는 느낌이다. 그러다 하비 마운틴에서 산행사고로 사망한 지인과 함께 점심을 먹던 것이 떠오른다. 저위로 올라 가보라고 해서 올라갔다가 산행대장한테 개인행동했다고 핀잔을 들었던 것도 생각이 난다. 그 지인이 내게 산행하다 죽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 하는 말에 에이 그런 일이 있겠어요. 그렇게 젊은 사람들보다 산을 잘 타시는데 하고 대화하던 말도 떠오른다. 사람일은 정말 모른다.

점심을 먹고 1시에 도착한 세인트 마크 정상을 15분만에 떠나면서 길을 재촉했다. 지그재그 산길 어차피 위험한데 하는 생각을 하다가 앞서 가는 젊은 친구들처럼 지그재그가 아닌 바로 내려가는 길을 택했다. 가파는 곳은 엉덩이 썰매를 타면서 내려왔다. 물론 위험하다. 혹여 날카로운 바위나 나뭇가지에 엉덩이가 찔릴 수도 있다. 하지만 눈의 적설량이 1미터에서 3미터가량 되니 그런 걱정은 일단 접어 두기로 한다. 그렇게 해서 빨리 내려왔다.
올라갈 땐 두려움에 떨게 한 일부 구간도 그리 위험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롯지에 도착하니 3시 10이다. 10.5킬로의 Saint Marks Summit을 완주했다는 작은 행복이 가슴 가득하다. 돌아오는 길에 밴쿠버 다운타운 통과에 오랜 시간이 걸려 리치먼드 집에 도착한 시간은 5시가 넘은 시각 그래도 이만한 행복을 어떻게 얻을까? 아내는 다리 아프고 힘들다는 내게 누가 그래 힘들걸 하래 한다. 그러면서 잼 샌드위치를 싸간 것이 안타까웠는지 전날 산에 간다고 말하면 밥을 싸줬잖아 한다. 그 말만으로 도 날 생각하는 것 같아 행복감을 느낀다. 에너지바와 초코바 등을 4개나 먹었다. 그 에너지로 버티면서 올라간 느낌이다.

혼자 산행하는 것을 절대 권하지 않는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을땐 꼭 주말에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산행길을 택해서 산행하기 바란다. 혹시 길을 잃었다 싶으면 트레일을 벗어나지 말고 기다려라. 다른 산행팀을 만날 때까지 여유롭게 간식도 즐기면서. 그리고 도움을 청하면 대부분은 아주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 준다. 내가 아는 것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도 행복한 일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