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녀의 인연으로 관계를 맺어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아무렇게 되는 대로 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비록 그 관계가 필요에 의해 살아간다고 해도 마음을 쏟고 공을 들임에는 분명하다.그런데 어쩌다 부모와 자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하고 안심이 되어야 하는 일인데도 소원함이 앞서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너무 가까운 사이라고 여기고 과한 기대를 하게 되어 고슴도치처럼 가까이 가면 찌르는 아픔을 경험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 기대라는 것이 상대에게 필요하고 소중한 사람이라고 확인 시키기를 바란다. 자신도 모르는 소중함을 상대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서로가 인정해주는 말, 즉 들어야 할 말을 듣지 못했고 해주어야 할 말을 하지 못했을때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기에 자신을 스스로 대접해 줄 수 없고 누군가가 대신 들먹여 주고 말해주기를 바라지만 외치고 불만하는 자의 목소리는 메아리 되어 사라질 뿐이다. 그렇게 기대가 채워지지 않을 때 비교가 갈등과 함께 다가온다. 그리고 관계가 소원해 지면서 바라고 서운한 일만 거듭된다. 또 비교는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을 그렇게 되어 있어 보이는 누군가의 삶을 부러워한 나머지 따라해서 그 사람과 같아지기를 바라는 일이다. 예를 들어 부모들이 다른 집 자녀와 비교하는 일도 있지만 둘 이상 자녀를 둔 가정이라면 어느 한 쪽을 편애 한다거나 우열을 가리고 싶어할 때 ‘형제의 난’이 일어난다. 본시 이 세상에 태어나 최초의 경쟁자가 형제라고 했지만 부모가 그런 일에 가담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자녀들은 별로 대단하게 여기지도 않고 존경하지도 않는 부모를 가운데 두고 서로 더 많이 사랑받고 인정 받는 사람이 되려고 접전을 벌이고 있는 희한한 풍경이 연출된다. 부모가 이런 일에 합세를 하면서 평정을 찾지 못하고 어설프게 관여를 할 때 자녀들은 우선 유리한 부모 쪽을 왔다 갔다 하면서 부부싸움으로 번지게 할 때도 있다.
부부가,부모가 화합해야 한다.
부모가 서로 화합하지 못하는 현실은 자녀들이 삶의 지침을 찾을 수 없고 우왕좌왕 할 뿐이다. 부부가 의견이 맞지 않고 서로의 주장이 달라도 자녀들 앞에서는 인신공격이나 무시하는 발언은 삼가해야 한다. 아이들이 없을 때 싸움을 하더라도 그 순간만은 ‘아빠 말이 옳다’ ‘엄마가 너희들을 위해서 수고 하고 애 많이 쓰고 있다’ 는 등의 말로 서로 편들어 주어야 한다. 하지만 부모가 이러지 못할 때는 서로 각자 자녀들에게 좋은 사람 되기 위해 이런 저런 방법들을 동원한다. 아무리 두꺼운 밧줄도 약한 줄 여럿을 합친 것보다는 약하다고 한다.
그러니 부부가 자기 혼자만 옳고 자녀사랑도 자신만이 더 많이 한다는 주장은 잠시 뒤로 미루고 둘이 합쳐진 밧줄처럼 하나가 되어 그 저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 서로의 주장만 팽배해 있는 부모를 볼 때 자녀들은 양쪽 부모 모두를 한꺼번에 무시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니 실컷 고생하여 열심히 살아놓고 대접받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 다음으로 소통하는데 좋은 방법 이라면, 이벤트를 만들어 주라!
생일이나 무슨 특별한 날 맛있는 음식 먹이고 용돈주는 일들은 그동안 많이 해 왔고 소통의 거리 좁히는 일에는 별로 큰 힘이 되질 않는다. 더군다나 대화문화가 서툰 시대에 살아왔기에 딱히 무슨 주제를 갖고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고 있다. 거기다 대화의 단절 요인인 IT문화의 최고조라고 할 수 있는 AI 와 스마트폰의 1인 1,개인방송 시대의 한 가운데 서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부모는 자기들이 살아온 방식데로 해법을 제시하여 따라오게 하는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이렇게 정보유통이 방안에 들어 앉아 있어도 원활하게 해결된다고 믿고 있는 세대의 사람들에게 연결 고리를 만들어서 거리를 좁히는 일은 돈으로 이벤트를 준비하는 일이다. 그것은 자녀가 어느 부위가 불통이고 불안해 하는지를 알아봐 주는 일이기도 하다.
자녀들이 재물에 관심사가 쏠릴 때가 있다.
흔히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네, 흙수저 이네, 하면서 처지를 구분하고 있지만 이 모두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불안해 하는 것은 똑 같다.이런 경우 부모가 어떤 영향력을 행사 하기를 바란다. 형편이 허락되는 집이라면 통장의 계좌를 개설해 주라. 많고 적음에 상관 없다. 부모의 형편에 맞춰서 금액을 정하면 된다. 부모가 그냥 돈을 주는 것이 아니고 투자의 의미를 먼저 설명해야 한다. 그동안 부모가 돈을 어떻게 벌었고 또 모으고 지킬 때 지출은 어떻게 해 나갔는지 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준다. 또는 얼마전 부터 저축을 하기 시작하여 지금은 어느정도 돈이 불어나고 있다는 얘기도 함께 곁들인다. 이런 경우 자녀들은 안심하게 되고 부모의 말이나 행동에 귀 기울이게 된다. 이것이 이론이 아닌 실전의 경제관념을 심어주고 돈 공부 시키는 일이다. 우리의 정서로는 조금은 낯선 풍경 이지만 또 한가지 방법 이라면, 부모가 도움이 필요 하여 자녀들에게 일을 시킬때가 있다. 또한 미리 말을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이 일을 해서 마무리까지 해 주면 얼마를 너에게 지불 하겠다’ 는 등의 소비자와 판매자의 역할이 분명하게 구분 지워지는 공정한 거래 형식이 취해진다. 받는 사람 주는 사람의 관계가 아닌 떳떳한 수평의 관계도 유지된다. 서로가 이런 관계로 이어진다면 돈공부의 이야기가 잔소리로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돈은 많이 버는 일도 중요 하지만 어떻게 쓰느냐와 지키는 일중에 절약하여 맞추어 살아가는 일보다 더 중요한 방법은 없음을 말해 줄 수 있어야 한다. 학교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는 일이니 부모가 이 일만은 꼭 가르쳐야 한다.
옛말에 채권자와 채무자가 부모와 자녀관계라고 했다. 그렇지 않다. 동시대에 살면서 비슷한 문화를 경험하는 동등한 친구의 관계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부모는 자녀들의 사회적인 입지와 활동(Society)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이가 어리고 많고에 상관 없이… 지금 소통의 어려움이나 또 다른 문제에 처해 있는 가정들도 있을 수 있다. 설령, 부모가 바라지 않는 어떤 일에 발을 들여 놓아 아주 먼 곳 까지 고공행진을 하여 돌아오는 시간 많이 걸릴 것 같은 경우의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의 실수가 밑거름이 되는 경험으로 멀리 간 거리만큼 큰 사람이 되고 폭 넓은 인생을 살거라는 믿음으로 기다려 줘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부모가 먼저 세상의 이목을 두려워 한 나머지 먼저 실망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철칙으로 삼아야 할 일이다. 그들도 살기 위해 택한 길이였으니까….
존경받아야 할 부모는 성공한 자녀를 둔 부모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픈 자녀를 돌보고 고통 중에 있는 자녀를 바라봐야 하는 부모가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소통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면 더욱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