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한인교회와 한인회 창립에 기여한 심선식, 김풍환 박사 인터뷰 그 첫 번째”

 

 

 

구약성경에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창대 하리라’는 구절이 있다. 연합교회에서 소수의 인원으로 시작된 한인사회는 이제 이민 초기에 비해 크게 발전했다.
그 중심에서는 한인사회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 있다. 늘푸른 장년회는 그러한 한인 이민사의 선구자들을 발굴해 나갈 예정이다. 그 중에 연합교회의 창립과 한인사회 발전에 기여한 두 분이 있어 만나 보았다. 연합교회 창립부터 함께 해 온 김풍환 박사와 심선식 박사가 그들이다.
초창기 교회설립과 한인 이민사에 얽힌 이야기들을 대면 인터뷰를 통해 직접 들어 보았다.

김진아 홍보이사: 이번에 밴쿠버 한인 이민 70년사 영상자료를 수집하는 행사를 기획하면서 단체 로서의 첫 방문을 연합교회로 하였습니다. 두 분은 1960년대에 밴쿠버로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민은 어떻게 오셨나요?
김풍환 박사: 우리는 한국에서 캐나다로 이민 온 것이 아닙니다. 미국에 메디컬 트레이닝을 받기 위해 왔고, 4~5년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캐나다를 거쳐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캐나다로 이민을 오게 된 여정이 아닙니다.

김진아 홍보이사: 미국과 캐나다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지 않았습니까?
심선식 박사: 미국에서 4~5년 있다가 캐나다에 왔는데, 캐나다 사람들은 미국 사람들에 비해서 뭐랄까. 순진해요. 미국 사람들은 한국말로 말하면 좀 뻗대고(쉬이 따르지 아니하고 고집스럽게 버티다는 뜻), 캐나다 사람들은 온순하고 그렇더라구요. 제가 느낀 캐나다와 미국인에 대한 인상은 그래요.
김풍환 박사: 우리가 여기 올 때는 비자도 없이 국경을 넘어왔습니다.

김진아 홍보이사: 몇 년도에 오신 건가요?
김풍환 박사: 나는 1963년에 왔고, 심선식 박사님은 1961년에 왔습니다. 당시에 한국은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나 다소 불안한 정세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자꾸 외국으로 나가려는 풍조가 있었고, 아내로부터 한국으로 돌아오기 좋은 상황이 아직 아니다 라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미국에서는 계약 기간이 끝나고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고, 캐나다 각 대학에 편지를 썼는데, 그 결과 밴쿠버에서 나를 채용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3~4개월 만에 정식 비자가 나오는 것이 어렵다고 오타와 외무부에서 연락을 받았어요. 그러나 내가 넘는 국경을 알려주면 그곳으로 공문을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김진아 홍보이사: 당시 한국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오신 겁니까?
심선식 박사: 한국에서 의과대학 나오고 1~2년 의사 생활하다가 미국으로 훈련을 받기 위해 간 겁니다. 김풍환 장로님은 경북대 의과대학 나오셨고, 나는 연세대 의과대학 나왔어요. 그때는 세브란스 의과대학이라고 했지요.

김진아 홍보이사: 그 당시에 한국인들이 몇 분이나 계셨었나요?
심선식 박사: 그때 여기 왔을 때에는 한 사람 있었어요. 여기 UBC 대학 수학과에 ‘이임학’이라는 분이, 서울대 수학과 나오신 분이 계시더라고요. 나는 1961년 7월 21일에 여기를 왔는데 그때 한국 사람이 한 분 계셨고, 그분이 이임학 교수였어요.
김풍환 박사: 그분이 한국에서 미분학, 적분학을 연구하신 분으로 알고 있어요.

김진아 홍보이사: 세 분이 교류를 하셨겠네요?
김풍환 박사: 그렇죠. 내가 왔을 때에는 네다섯 가정이 있었어요.
김진아 홍보이사: 그때 생활 환경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캐나다에 적응하기 위해서도 노력하셨을 것 같고요. 한국사람 만나니까 반가워서 가족처럼 지내셨을 것 같습니다.
김풍환 박사: 경제적, 정치적 사정이 한국이 어려웠고,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계속 비보만 들려왔을 때입니다.
김진아 홍보이사: 한국에서 캐나다로 이민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두 분을 많이 찾아왔을 것 같습니다.
김풍환 박사: 그런 분위기는 몇 년 후에 만들어졌습니다. 우리가 들어올 때는 캐나다에 이민법이 그렇게 쉽지 않았어요. 아무나 들어올 수가 없었어요.

김진아 홍보이사: 혹시 자영업하시는 분들도 있었나요?
심선식 박사: 나는 1961년 7월 21일에 왔는데, 내 처하고 4살 난 딸하고 태어난 지 한 달 된 아들하고 왔어요. 그때는 한국사람이 없었어요. 수학자 이임학 교수 말고는 없었지. 내가 1961년에 와서 이 교회를 1966년 3월 6일날 첫 주일에 교회를 시작하고 그 해에 7개월 있다가 한인회, 밴쿠버에 한인회를 창설했어요. 이 교회가 처음 시작된 하나의 기관이고, 그 해(1966년) 8월 15일에 한인회가 창설되었지요.

김진아 홍보이사: 그 때 한인회에 몇 명이나 왔나요?
심선식 박사: 교회는 한 30명 모였어요. 그날은 3월 6일이었고. 8월 15일날 한인회가 시작되었는데 교회에 나오지 않는,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도 와 가지고, 한 30명 모였나? 그렇게 기억됩니다.

김진아 홍보이사: 어느 장소에서 모였나요?
심선식 박사: UBC안에 신학대학에서 모였어요. 이 교회가 시작되고 한인회가 창설되었어요. 그리니 교회가 한인회의 산파역할을 한 것입니다. 당시 연합교회 당회장이신 이상철 목사님을 모시고 한인회가 시작되었는데, 이목사님이 한인회장을 하시고, 내가 서기 노릇하고, 그랬지요. 그런데 이상철 목사님이 교회 일이 많아 한 달인가, 한 달도 못되어 한인회장 사표를 내셨고. 내가 사표를 가지고 그냥 있다가, 1년 후에 내가 2대 회장을 맡았지요.

김진아 홍보이사: 심박사님은 캐나다에서 몇 년을 일하신 건가요?
심선식 박사: 1961년에 와서 UBC 의과대학에 교직원으로 일했고, 밴쿠버 제너럴 병원에서 은퇴할 때까지 근무했지요.

김진아 홍보이사: 일하시면서 보람 있었던 일이 있으셨다면 나눠주세요.
심선식 박사: 한국에서는 의사로 왔지만, 처음에는 UBC 강사였지요. 그러다가 조교수 되고, 부교수, 교수로 임용되었습니다. 나는 정형외과 의사였으니까 아픈 사람들 수술도 하고. 김풍환 장로님은 소아과 의사로 일하셨으니 아이들 돌보셨고. 의사 로서의 보람이 아픈 사람 고쳐줄 때라고 생각됩니다.

김진아 홍보이사: 자녀분들은 다 성장해서 성공하셨어요?
심선식 박사: 그 성공이라는 말은 좀 이상한 말이지만(웃음), 나는 딸이 간호사, 간호원이라고 말하면 실례지 지금은. 간호사라고 해야지. 딸은 간호사고. 첫 아들은 고등학교 선생이고, 둘째 아들은 의사이고. 이만하면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김진아 홍보이사: 김박사님. 소아과 의사로 일하시면서 특별히 생각나는 일화가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김풍환 박사: 내가 소아과에서 임상적으로 일했을 때는 여기 한국사람 별로 없었어요. 환자들도 모두 캐나다 사람들이었죠. 한 가지 기억나는 일은 세 살인가 네 살 먹은 한 아이가 백혈병이라는 암에 걸렸어요. 고생들 많이 하고 한 2년인가 투병하다가 결국은 세상을 떠났는데, 아이의 부모가 장례식에 나를 초대를 했어요. 그 장례식에서 나와서 얘기를 해달라고 부탁을 해서 써 놓은 조문도 없이 생각나는 대로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나네요.

김진아 홍보이사: 힘들었던 일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당시에 아시아인들이 많이 없었을 때인데 인종차별이다든가, 어려운 적이 있었나요?
심선식 박사: 인종차별을 느껴본 적은 없어요. 인종차별이라는 말을 쓰기는 하지만, 느껴본 적은 없고, 인종차별을 한 사람이 있었는지는 모르지. 다만 나는 한국사람이니까, 나는 한국사람이다. 코리안이다. 나는 의사다. 나는 대학의 교직원으로 왔으니까 떳떳하잖아요. 한국사람이고, 교직원이고, 기독교인이고, 이 교회를 창설한 창설 교인이고. 나는 1961년에 왔는데, 5년 있다가 1966년 3월 6일에 교회를 창설했고, 그 해 8월 15일에 한인회를 창설했고.

김진아 홍보이사:두 분은 학력도 높고 존경할 만한 직업도 가지셔서 현지인들이 차별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겠다 는 생각이 듭니다. 한인회를 만드실 때 재밌었던 일화는 없으신지요?
심선식 박사: 교회를 창설하고 나니까 기독교인 아닌 사람들이, “예수쟁이들이 한인들 모아서 교회를 만들었는데 이제 기독교인 아닌 한인들이 함께 할 수 있는 한인회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나왔어요. 그래서 한인회를 창설했지. 한국사람들끼리 모여서 같이 예배를 보는 첫 한인교회를 만들고, 그 다음에는 기독교인 아닌 교포들이 서로 정보도 나누고 정도 나눌 수 있는, 함께 하는 한인회를 만든 겁니다.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글쓴이 | 김진아  캐나다 한인 늘푸른 장년회 홍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