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문 그리고 아내
1975년 6월 21일 나는 한국 영사관에 입국 신고를 하고 고용된 회사에서 앞만 보고 달려오며 일을 시작했다. 나의 노력에 하나님이 감동하셨는지 내 집도 마련할 수 있었고 또 이곳에서 두 딸을 더 주셔서 우리 가족은 6식구가 되었다. 내가 생활하는 환경에 감사한 마음으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국제 로타리 컨퍼런스(Conference) 에도 여러 번 참석하며 밴쿠버에서 시야도 넓혀갔다.
2017년에는 한국 서울 일산 킨텍스에서 국제대회가 열렸는데 이때 밴쿠버 5040 지구 회장과 지구 회원 28명이 우리 한인 캠비 클럽 회장 및 동료 회우들과 함께 대회에 참석했다. 물론 모든 일정은 성황리에 마쳤고 서울 명소도 관광하며 저녁에는 그 유명한 종로구 인사동의 ‘처마 끝 하늘 풍경’이라는 한정식 식당 에서 한국 음식을 대접하고 친교도 하면서 작은 보람을 느끼며 즐거운 저녁 시간을 가졌다. 다음날은 여러 명이 어울려 명동거리를 다니며 몰라보게 변한 서울에 감탄하고 길거리 음식을 맛보다가 그만 군것질로 점심을 대신했다. 마치 타임머신 을 타고 5,60년 후의 세계 속의 한국에 와 있는 시간들로 착각하며 각국 다른나라 여러 관광객 들과 함께 즐겁고 재미있는 시간 을 보내면서,나의 힘들었던 이국생활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겹쳐가며 나의 뇌리에 스쳐갔다. 지난 20여 년 전인 1997년 2월경에는 나의 아내가 뇌출혈로 의식 불명 속에서 11시간동안의 대 수술을 하고 기적적으로 수개월 후에 건강을 회복하여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기념사업을 추진했다. 내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에서 인근 중, 고등학교에 장학금을 보내다가 중단해야 했는데 그 사업 을 나의 가정이 개인적으로 맡아서 해야 되겠다고 기도하고 그때로 부터 지금까지 실천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기도를 드리고 있다. ‘이를 지금까지 허락해주시는 교회와 하나님께 감사드리며(Vancouver Han-in Church Aard) Gladstone과 David Thompson Secondary School) 또 계속 하고 있으며 저희 부부의 건강이 다할 때까지 실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라고
뇌출혈 수술 후 지금까지 옆에서 자고 있는 아내의 숨 쉬는 소리가 안 들리면 불안 해 하는 내 마음 을 아는지 조심스럽게 드르렁 하고 쉬는 숨소리에 나도 안심하고 마음 편히 잠을 잘 수 있다.
28세의 젊은 나이에 언어나 풍습이 다른 나라로 이민 가서 살기 싫다고 말했던 아내가 40여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서 몰라보게 발전된 나라를 만났고 또 한국을 방문한 여러 관광객들이 활보하는 그 대열에서 거기에 한국에온 캐네디안 로타리클럽 친구들과 어울려 즐거워하고 있는 아내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순진하고 소박한 저 여인의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며 지나온 모든 일들에 감사하며 다시 캐나다에 돌아가서도 오래오래 건강을 유지 하며 살아가기를 기도했다. 더욱 반가운 일은 한국으로 출가했던 큰 딸이 다시 캐나다로 돌아와 우리와 함께 한 집에 같이 살게 되었고 가까 운 근처에 두 딸 들과 외손자들이 가정을 이루며 생활하면서 이웃과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며 우리 가족을 지켜 주신 하나님께 무한 감사를 드린다.
요즈음도 한국을 방문해 함께 여행 했던 코캐시안 로타리언 들을 만나면 서울의 명소와 명동거리를 화제로 삼으며 좋은 추억으로 간직되어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지내오고 있음에 또한 감사를 드린다.
강진 로타리클럽과의 인연
나는 제주 양씨 27대 손이다. 특히 변절공파 손으로11대 되시는 학포당 양팽손 할아버지는 1545년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한학자이며 화가이신 분인데 지금 국립중앙 박물관에 산수화 두 점이 소장되어 있어 현세대에도 예술적 가치가 높은 경이로운 그림으로 평가되고 있어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지난 2010년 봄에는 전남 화순에 모셔있는 학포당 할아버지 사원을 나의 집안 문중의 장손이신 금년 91세 되시는월사형님과 함께 군청문화재 관리과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참배를 드렸다. 그리고 선산이 있는 사초리로 성묘를 가다가 강진읍으로 들어가는 입구 우측에 우뚝 세워져 있는 ‘강진 로타리 클럽 표지석’이 시야에 들어와 마치 내가 로타리안이 되어서 고향에 찾아온 나를 부동자세로 서서 이날 까지 기다리 고 있었구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위로를 받고는, 다음날 시간을 내어 설레는 마음으로 강진 클럽 을 방문했다. 그 자리에서 남정 회장님을 만나 클럽을 소개 받았다. 나는 이 고장 에서 태어나서 고장의 발전을 위해 수고하고 봉사하는 회우들이 장하고 존경스럽다고 말했으며 회장께 강진클럽을 위해 무엇인가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사 하고 청을 했다.
밴쿠버에 돌아와서 답변을 받았는데 그 해부터 지금까지 매년 회장단 이취임 식에 맞추어 그 지역 고등학교 에 진학하는 학생들에게 작은 금액 이나마 장학금을 보내고 있다. 가끔 그 지역신문에 의송(본인의 호)장학금이 수여되고 있는 기사를 보고, 나의 작은 금액을 그토록 훌륭한 곳에 사용해 주시는 강진 로타리 클럽과 회우들을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지난 2017년 가을 강진 클럽을 방문 하였을 때에는(캐나다 밴쿠버 캠비 로타리 클럽 의송 양영승 회장 방문 환영)이라는 현수막을 크게 붙여놓고 환영하며 만찬도 마련해 주어서 우정에 겨운 밤을 가졌다.
나는 건강이 다하는 날까지 내나라 나의 고향이 있는 강진 로타리 클럽에 장학금을 보내는 사업을 계속 하겠다고 다짐하고 이날 까지 실천할 수 있도록 허락 해주신 하나님과 모든 관계 되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또한 지난 2019년 6월 30일자로 발행된 강진 로타리 클럽 창립 50 년 사 책자에 저와 강진 로타리 클럽 ( R I.D.3610) 과 맺어진 인연 이라는 이야기를 적어 보내 주시면 50년사에 게재하여 주시겠다고하여 기억나는 대로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내용을 몇 자 송고하였더니 편집 위원님께서 전문을 실어 주셨다, 졸고를 게재해주신 벽파 위원장님과 위원들에게 지면을 빌어 무한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