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이 짧은 시절이 아니듯 기억속에 모든 것들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기억에만 존재하는 많은 것들. 내 유년 시절에 부엌은 전기불도 없는 컴컴한 부엌이었다.
나무 대문을 삐거덕하고 열면 컴컴한 부엌에 그을린 벽들은 검은 페인트칠을 한듯이 더욱 세월을 덫입고 있었다.
고춧대와 들깨대까지 테워 밥을 하던 시절 땔감은 늘 부족했고 산으로 땔감을 하러 다니며 산감이라 부르는 산을 감독하는 사람에게 걸리지 않으려 소나무가지와 솔잎 그리고 죽어 버린 나무까지 톱으로 잘라서 지게에 지고 집으로 향하던 어린 시절은 가마솥에 불을 때서 밥을 하고 화로에 불을 담아 된장찌개, 김치찌개를 끓여 먹던 시절이었다.
냉장고가 무었인지도 모르던 시절. 뒤뜰에 있는 장독에 햇빛에 두꺼비 등처럼 말라 갈라진 된장처럼, 시커멓게 변한 고추장처럼, 그렇게 하루 하루를 살아 가던 사람들.
두드러기가 나면 짚을 태워 재로 쓸어 주고, 여름에 배탈이 나면 익모초 짖이겨 즙을 내서 먹이던 어머니, 그래도 아프면 엄마 손이 약손이라며 배를 쓰다 듬어 주면 거짓말처럼 아프배가 낮기도 했다.
냉장고가 없으니 당연히 군것질거리도 없고 들에 산에 달린 과일이 우리의 군것질 거리일 수 밖에 없던 시절. 과수원하던 친구네가 부러웠던 것은 과수원을 지나면 사과향이 코끝을 찔러 침샘을 자극하고 그 향기가 머릿속에 계속 남아 어슴프레 해가 기울면 친구들과 무등을 타고 사과 서리도 했었다.
원두막 아래서 달밤에 깨먹는 수박맛의 달콤함이 아직도 입가에 맴도는 것은 언제든 마켓에 가면 먹을 수 있는 그 수박이 아니고 추억으로 가서 여름에만 맛볼수 있던 그 여름날의 수박밭이며 참외밭의 여름 향기가 아닐까한다.
마당 멍석에 누워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서 개구리 우는 논에서 들리는 개구리의 함창과 나무에 매달려 구슬피 울어 대던 매미의 울음조차 먼추억으로 사라진 외국에서 날마다 격리아닌 격리로 살아 가는 또 다른 세상때문에 지나 온 날들의 추억을 들추어 보듯 가슴에 담겨진 것들을 하나씩 꺼내 본다.
조리도구라고 해봐야 검은 가마솥 몇 개와 사기 밥그릇과 국그릇 제사에 쓰던 단순하기 그지 없는 하얀 접시들.
그 시절을 살다간 고봉밥을 먹던 배만 불뚝 나온 아이들과 강남땅조차 배추밭이고 참외밭이던 시절. 개울에 수영팬티조차 모르던 시골 아이들은 창피한 줄도 모르고 홀딱 벗고 물놀이를 즐겼었다. 친구들과 잎담배를 공책에 말아 피던 지게지고 산에 가던 아이들은 이제 환갑을 앞두고 있다.
다시는 돌아 갈 수 없는 시간. 박물관에 진열된 물건들처럼 기억에만 존재하던 다식판, 숯불 다리미, 인두, 한복저고리에 달던 동정들… 초등학교 입학식에 가슴에 달고 가던 콧수건, 누런 코를 훌쩍대면 입술까지 내려 오던 코가 다시 들어가 머리가 찡하고 아프던 그 박제된 우리의 시간은 기억이라는 메모리칩에서 깜빡깜빡 사라져 간다.
가까운 시간에 많는 것들은 잊어 버리면서 아주 수십년된 기억을 되새김질하던 소처럼 되새기는 것은 돌아 가지 못하는 그 시간이 부족한 것 투성이었고 부족한 것 투성이었던 그시간에 호롱불아래 누워 오늘 동네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는 아버지의 말과 이집 저집 이야기들이 소식의 전부였던 시절.
시간이 멈추어 진 것 같던 그 시간이 진정한 행복한 시절이었음을, 모든 것이 상대적으로 풍부하고 호롱불 대신 전기가, 나무때던 아궁이 대신 보일러가 돌고, 더운 여름엔 에어컨이 있는 곳이 더 많은 세상,겨울에도 여름 과일을 마음대로 먹고, 걸어서 가지 않아도 차를 타고 먼 곳까지 가는 세상, 평생 하늘을 나는 비행길를 타지 못할 것 같았는데 그것도 타보고, 어린 시절 궁전으로 생각되던 것들도 느껴봤지만 물질적인 것은 계속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한다.
컴퓨터로 멀리 있는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날이 올줄은 정말 몰랐던 그 시절, 늘 아프고 ,병원은 멀고 웬만해선 빨간약을 바르면 나아 버리는 그시절에 엄마 손은 약손이라고 배를 문지르던 엄마 손이 사랑이란걸 이제와서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