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김현옥

아침 단잠에서 막 깨어 일어나려고 하는데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며느리가 다급한 음성으로 손주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한 손녀가 아프니 우리 집으로 데리고 오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쌍둥이 중 언니로 9살인 손녀가 학교로 가는 차 안에서 두 번이나 토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서 데리고 오라고 말하였지만 내심 만약에 Stomach Flu이면 우리도 감염될 수도 있다는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손주들이 자라는 동안에 감기, 독감, 폐렴에 걸려서 유치원이나 학교에 못 가게 되면 우리 부부가 아들네로 불려 갔다. 우리도 감염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손주들이 아프다는데 마다할 수 없어 달려가 돌보아 주었다. 아픈 손주들과 지내고 나서 남편은 폐렴에 두 번이나 걸리고 나도 한번 걸렸다. 그 후에 우리 부부는 빠지지 않고 매년 독감 예방 주사를 맞고 있으며, 폐렴 예방주사도 두 가지나 맞았다. 우리가 손주들에게서 감염되는 것을 피할 뿐만 아니라, 반대로 우리가 아프게 되면 보고 싶은 손주들을 만나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부부는 손주들을 돌보다가 감염으로 아프게 된 것 이외에도 부상도 하였다. 남편은 어린 손자와 높은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내려오려다가 손자가 갑자기 무섭다고 뒤로 물러서는 바람에 에스컬레이터 쇠 층 계단에 무릎 밑을 찍혀서 살이 베이고 피가 나는 사고가 있었다. 손자가 다치지 않도록 손자를 안전한 곳으로 밀어내고 할아버지는 주저앉으며 다치게 된 것이었다. 손자는 다행히 잘 보호되어 다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우리 부부는 정규적으로 수영장에 다니던 것도 중단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어린이 놀이터에서 어린 손녀들을 따라다니며 돌보다가 머리를 쇠봉에 부딪히기도 하는 일이 있었다. 머리에 혹이 나게 되었지만, 그저 손녀들이 다치지 않고 무사한 것에 감사하였다. 어린 손녀가 무심결에 떨어뜨린 무거운 장난감에 맞게도 되어 아팠지만, 어린아이가 모르고 한 일에 아프다고 표현도 못 하고 참았던 적도 있었다.
집으로 들어선 아프다는 손녀는 약간 수줍은 듯이 앉더니, “할머니, 아픈 내가 이렇게 와서 같이 있어도 괜찮아요?”라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나는 물론 괜찮다고 대답하면서 어느새 손녀가 자라서 우리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었다는 사실에 감동하였다. 그동안 손주들이 아파서 우리가 많이 돌보아 주며 같이 지냈지만, 이렇게 우리의 형편을 생각하며 우리의 허락과 동의를 구한 적이 없었다. 키가 자라며 생각과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성장하고 있음에 기쁘고 대견함을 느꼈다. 우리 집에는 손주들이 태어난 이후로 손주들이 와서 놀게 될 것을 대비하여 색연필, 크레용, 리본, 스티커, 색종이 등을 준비하여 두고 있다. 손주들이 가지고 놀다가 후에 와서 사용하도록 남은 재료들은 두고 가곤 한다. 손녀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쌍둥이 여동생을 위하여 예쁜 리본과 스티커들을 사용하여 아름다운 발렌타인 카드를 만들었다. 이번에는 사용하고 남은 예쁜 리본과 스티커들을 예쁜 상자 속에 넣어 함께 가져가도록 하였다. 전에는 준비하여 두었던 새 장난감이나 예쁜 노트들을 주어 보내도 그저 “감사합니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손녀는 “할머니, 이것들을 가져갈 수 있게 해 주어서 고마워요”라고 말하여 다시 나를 감동하게 했다. 점점 더 성숙하여 가는 손녀가 대견스러웠다.

손녀는 카드를 만들며 생기가 돌아와서 TV에서 만화 영화도 같이 보았다.
점심때 데리고 나가 식당에서 손녀가 좋아하는 일본식 우동도 같이 먹고, 책방에 가서 원하는 책도 사 주었다. 마음 같아선 더 다른 것도 사 주고 싶었지만 함께 못하고 있는 다른 손주들을 생각하며 참았다. 또한 아들네가 부탁하듯이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사주는 것을 절제하여야 아이들 교육에 유익하기 때문이다. 귀여운 손녀 손을 잡고 쇼핑몰 안을 걸으며 핏줄이 뭐길래 이렇게 손주들은 무조건 예쁘고 늘 잘 해 주고 싶은 것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핏줄을 이어받은 손주들이기에 아프게 되고 다치게 되어도 기꺼이 돌보며, 원하는 것들을 사 주고 싶고, 언제나 보아도 사랑스럽고, 마음이 행복해진다. 원하기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손주들이 건강하고 지혜롭게 잘 자라서 귀히 쓰임 받는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