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Rome)

서기 80년에 완공된 콜로시움 (Colosseum)은 새로 지정된 세계의 일곱가지
경이(New 7 Wonders of the World) 중에 하나다. 콜로시움의 규모는 어마 어마햐게 커서 무려 5만 명에서 8만명의 관객들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가 있었다고한다. 경이한 일은 2천년전에 지은 콜로시움이 오늘날 까지도 건재하여 관광객들이 그곳에서 예전에 일어났던 일들을 상상할 수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곳에서는 갑옷을 입은 병정 (gladiator)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관객들을 위한 오락으로 칼싸움을 했었고, 사나운 사자나 호랑이 같은 짐승들과 사람이 싸워 동물들을 죽이기도 했다는것이다. 콜로시움의 벽이 무너진 곳이 여러군데 있었으나 이것은 세월의 흐름이나 전쟁에 인한것 뿐만 아니라 몇차레의 지진과 돌맹이 도둑놈들이 그 벽을 떼어서 다른 장소로 옮겨가 딴 용도로 썻기 때문이라고한다. 또한 매해 고난의 주 금요일 (Good Friday) 에는 예수님이 무거운 십자가를 어깨에 지고 골고다의 언덕으로 힘들게 걸어가시는 (The Way of the Cross) 것을 재연하는 행사에서 교황이 횃불을 들고 따라가는 성도들과 함께 이곳에서 첫 걸음을 걷기 시작하는 곳이다.

성 베드로 광장 (Piazza San Pietro)
성 베드로 광장에서 보이는 3층 건물은 교황청이며 그곳은 교황이 기거하는곳이다. 그곳에서 창문을 활짝열고 프란시스코 교황을 포함한 그전 교황들이 해마다 성탄절이나 부활절을 맞이한 축복을 세계 만백성에게 내려주시는 곳 이기도 하다. 교황청을 지키는 두명의 스위스 병정들이 뒤에 보인다. (Swiss Guards)
이들 스위스 호위병들은 1667년 부터 현재까지 계속 유지되어온 교황과 교황청을 수호하는 호위병 부대 소속이라고한다. 1981년에 있었던 교황 존 폴 2세 (Pope John Paul II) 의 저격 미수 사건 이후에는 그들이 총기를 사용할 수 도 있다고한다.
성 베드로 대 성당은 그 크기가 너무도 커서 장엄한 느낌을 주었으며, 성 마가 대성당과는 달리 사진을 마음대로 찍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대성당 (Basilica)과 성당 (Cathedral)의 차이점은 어느 성당이나 어느 성인의 유해가 보전된 곳은 대성당 이라고 칭하며 다른 성당은 그냥 성당이라고 부른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커다란 십자가 아래에 자리잡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Michelangelo Buonarroti)가1499년에 대리석으로 조각한 “자비” 피에타 (The Pieta) 는 이번 여행에서 필자에게 가장 큰 감명을 안겨주었다. 어떻게 24세의 젊은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으로 동정녀 성모 마리아의 순결하고 자비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못밖혀 죽임을 당한 아들 예수님을 무릅에 끌어 안고있는 순간을 천재적인 창의력을 불러이르켜 특출한 작품으로 만들어 50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의 천재적이고도 불후의 예술적 표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것이다. 1972년에는 한 정신병자가 성 베드로 대성당에 몰래들어와 성모 마리아의 코와 한쪽 눈을 망치로 망가트려 놓았으나 대리석 전문 수선가들이 온 정성을 다하여 완벽하게 옛모습 그대로 복원 시켰다고 한다.

씨스틴 체플 (The Sistine Chapel)과 최후의 심판 (The Last Judgment)
씨스틴 예배당 안을 들어가면 바로 맞은편 벽에는 미켈란젤로가 심혈을 기우려 그린 벽화 최후의 심판(The Last Judgment)이 한벽 전체를 차지하고있다. 참고로 최후의 심판 벽화는 미켈란젤로가 60세가 넘어서 끝낸 작품인데 반하여 씨스틴 체플 천정에 그가 그린 벽화는 그가30대 중반의 청년때에 그린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씨스틴 채플 안에서는 사진도 찍지 못하게하고 조용히 예배당 천장의 벽화를 서서 보아야 했고 한참을 천정의 그림들을 보고 있으려면 목이 아프기도하고 현기증도 일어나는듯했다. 완성된 벽화를 감상하기도 그렇게 힘이드는데 4년 가까이 그 벽화를 그리던 미켈란젤로의 고충은 얼마나 컸을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에는 그가 자기는 조각가인데 왜 벽화를 그려야 하는가하고 투덜대기는 했으나 곧 벽화 그리는 기교를 섭득하고 이를 발전시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감탄하는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낸것이다. 예술 전문가들에 의하면 그가 유럽에서 최초로 남녀의 나체와 생식기를 작품에 노출시켜 이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다고 한다.
바티칸 미술관에는 라파엘의 전시관을 비롯하여 헤아릴수 없이 많은 뛰어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기는하나 아쉽게도 시간이 없어서 다 제대로 감상할 수는 없었다.

로마의 휴일과 스페인 계단 (Roman Holiday & the Spanish Steps)
로마시의 중심부에 자리잡은 스페인 계단은 너무나도 유명하여 수 많은 영화의 뒷 배경으로 나온다. 특히 1953년에 오드리 햅번 (Audrey Hepburn) 과 그레고리 팩 (Gregory Peck) 이 출연하는 흑백 영화 로마의 휴일에 영국 공주로 출연했던 오드리 햅번은 그해 아카데미에서 최우수 여우 상을 받았으며, 윌리암 와이러(William Wyler) 가 그 영화의 감독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영화는 지금 다시 보아도 아주 흥미있는 영화이다. 그런데 근자에는 그 계단에 앉아서 관광을 하느라 아픈 다리를 쉬고있는 관광객들에게도 벌금을 부과하는 시 조례(city by-law)를 발효하였다. 그런데 그 시조례를 실시한지 불과 2개월 후에 바이러스 (COVID-19) 가 창궐하여 그 계단에 앉아서 쉴 사람들이 다 사라진것이다. 아내는 다리가 아파서 트레비 분수에 찾아가기를 꺼려했으나, 다음날 아침에 비행기를 타고 밴쿠버로 돌아가야하니 지금 않보면 다시보기가 힘들다고 설득하여 약 10 불럭가량 떨어진 트레비 분수에 걸어서 도착했는데 그곳에 가보니 어떻게 알고 찾아 왔는지 헤아릴수없이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스페인 계단의 제일 꼭대기에는 트리니타 데이 몬티(Trinita dei Monti) 성당이 자리잡고있다.

맺는 말

우리는 이번 여행을 아무런 준비도 없이 자녀들의 잦은 권유를 이기지 못하여 급하게 다녀왔다. 혹시 독자들 중에 유럽여행을 하시고 싶으신분은 그곳에 대한 최소한의 예습을하고 떠나시라고 조언하고싶다. 그래야만 그곳에서 보고 듣는것이 더욱 실감이 느껴지기 때문인 것이다. 세상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All roads lead to Rome.) 옛말 처럼 우리의 3주간의 유럽 여행은 로마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 (Leonardo da Vinci) 에서 시작하여 로마에서 끝마첬다. 끝으로 본인의 글을 읽어주신 모든 독자들에게 감사드리며 지면을 허락해주신 교육신문사 신윤진 사장과 이지은 기자에게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