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병희 온천교회 은퇴장로, 전 성도고교 교장

 

오랜 옛날부터 우리나라는 이심전심으로 무궁화를 국화로 생각하고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아 왔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는 무궁화가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꽃이라 하여 탄압을 받아 멸종 위기에까지 이르렀다. 광복을 맞은지 76년이 지난 현재에도 국민들로부터도 크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음에 안타까운 심정으로 무궁화를 사랑하고 무궁화의 역사적인 내력과 수난시절 그리고 기독교와의 관계를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1. 무궁화의 역사적인 내력
무궁화는 우리나라에서 국화로 결의 하였거나 법령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오랜 옛날부터 국민들에 의하여 자연발생적으로 무궁화를 우리나라의 국화로 인식하게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약2500년전)에 저술된 산해경(山海經)에 의하면 군자국(君子國우리나라)에는 훈화초(薰華草 무궁화)가 있는데 아침에는 피고 저녁에 진다(朝生暮死) 라고 기록되어 되어 있다. 이것을 미루어 볼 때 무궁화는 2천여년 전 부터 우리나라 꽃으로 인식되어 온 것으로 알 수 있다. 조선 선조때 이수광은 그의 저서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 인용하고 있는 고금기(古今記)에도 우리나라에는 각 지방에 목근화 (木槿花무궁화)가 많다고 기록되어 있다. 옛날부터 동양에서는 우리나라를 근역(槿域) 또는 근화향(槿花鄕)이라 불리어 왔다.
신라때 최치원이 효공왕의 명으로 당에 보낸 국서를 보면 우리나라를 근화지향(槿花之鄕)이라 하였고 고려. 조선에 들어와서도 근역(槿域) 근화향(槿花鄕)이라 하였다. 우리 스스로도 우리나라를 근화향(槿花鄕)·근원(槿原)·근역(槿域)이라 함으로써 국민들의 마음에 무궁화가 나라를 상징하는 꽃이라고 생각했던 그 시기로 본다 하더라도 아주 오래된 옛날부터 무궁화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꽃임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신라 효공왕때로 보더라도 그 역사의 연대가 천년이 넘는다.
근세에 와서 신문화가 이땅에 밀려오자 당시 민족의 선각자들은 민족의 자존을 높이고 열강들과 대등한 위치를 유지하고자 국화의 필요성을 더욱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당시 선각자인 남궁억 윤치호 등은 무궁화의 역사적인 내력과 민중들의 공통된 의견을 집약하여 무궁화를 국화로 의견을 모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때 남궁억은 칠곡 부사시절이고 윤치호는 외무협판 시절(대한제국시대)이라 하니 대략 1900년 전후에 해당된다. 그 시기에 애국가가 만들어져 애국가 후렴에 “무궁화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라는 구절에 무궁화가 들어가게 되었고 애국가가 불리워지면서 명실 공히 무궁화가 국화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와서 일부 인사들중에는 무궁화를 국화로 정하면 안된다고 주장하고 오히려 토속적인 개나리나 진달래로 바꿔야한다고 주장하는 인사가 있으니 필자는 이해할 수 도 없고 지금 어린아이들도 무궁화는 우리나라꽃으로 알고 노래하고 있는데 그기에는 반론을 언급하고 싶지 않다. 또한 일제때 북한에는 무궁화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자도 있으나 그것도 이치에 맞지 않다. 우리나라가 광복이 되고 그 이듬해인 1946년3월12일에 북한에는 우표를 최초발행했는데 무궁화를 넣어 도안했고 그해 8.15일에는 광복 1주년기념으로 우표를 발행할때도 김일성뒤에 무궁화가 도안되어 있었음을 보더라도 북한에 무궁화가 없었다는 말은 언급할 필요가 없겠다.

2. 무궁화의 수난시절
일제는 1910년 우리나라를 강점한 후 무궁화를 우리나라 꽃이라 하여 1거루도 남기지 않고 없애려고 각 가정과 공공기관에 심은 무궁화를 뿌리 채 뽑아 소각하였다. 학교에서는 무궁화를 뽑아오는 학생들에게 상을 주면서 멸종하려고 하였다.
무궁화를 뽑은 그 자리에는 벚꽃을 심고 심지어 도시근교 산에도 군데군데 벚꽃을 심어서 조선의 영토 전체를 일본영토화 하려고 노력하였음을 알 수 있다. 남궁억(南宮檍)은 일찍이 동문학(同文學)에서 영어를 배워 어전통역관(고종)이 되었고 뒷날 고급공무원이 되었으며 청념결백하기로 유명하였다. 그는 황성신문사 사장이 되어 있을 때 일본이 러시아와 함께 한반도 분활안을 제안할 때 그 내용을 미리 알고 만천하에 폭로하였는데 그는 그 일로 인하여 황성신문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그 후 그는 1898년에 미국남감리회가 설립한 서울 배화여학교에 교사가 되어 8년간 학생들에게 애국심과 민족의식을 심어주기 위하여 무궁화를 사랑하게 하였고 자수(刺繡)로 우리나라지도에 무궁화를 수놓게 하였는데 이것은 한반도는 우리의 고유영토임을 주지시키기 위함이었다.
이것은 배화여학교 뿐만 아니라 경향 각급사립학교에 알게 모르게 보급되었다. 이것을 알고 일제는 결국 그를 배화여학교에서도 물러나게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선조의 고향인 강원도 홍천군 서면 모곡리로 내려가 모곡감리교회를 세우고 전도사로 근무하면서 교회내 4년제 보통학교를 설립하여 학생들에게 신앙심을 갖게 하였고 나라가 어려울 때 애국심을 갖도록 가르쳤고 무궁화가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꽃이라고 가르쳤던 것이다. 그리고 학교실습지에는 무궁화 30십만주를 재배하여 전국각처에 보급하였다. 일제가 이것을 알고 이 학교 실습장에서 무궁화묘목7만주를 뽑아 불태웠다. 이 일로 인하여 남궁억을 구속하고 이 학교를 강제로 공립학교로 전환시켰다. 그는 일제의 탄압을 받으면서도 “삼천리반도금수강산” “무궁화동산” 등 애국노래 100여곡을 지어 교회와 각급 사립학교에 보급하였다. 그중에 “삼천리반도금수강산”은 찬송가 580장에 전해지고 있다.
광복이 되고 독립국가가 된 지금도 우리민족은 과거 일제의 간악한 압제로 우리나라의 꽃인 무궁화가 온갖 천대를 받고 멸종시키려고 하던 그때를 잊은 채 전국방방곡곡에 공원이 생겼다하면 벚꽃만 심고 무궁화는 찾아 볼 수 없으니 우리민족이 한심하고 남궁억 등 애국선열 들이 통곡 할 건만 같다.
그러므로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알고 우리 모두는 먼저 무궁화에 대하여 애정을 가지고 각 가정의 정원은 물론이고 학교나 공공기관이나 특히 교회에 무궁화를 심고 가꾸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남구억은 무궁화사건 이전에도 독립운도에 연류되어 1차 한성감옥에 구금당하였고 무궁화묘목보급에도 앞장서다 일경에 붙잡혀 결국 2차 구속당하여 3년간 복역중 병보석으로 나왔으나 중환으로 3년간 고생하다가 77세를 일기로 순국하였다.
남궁억은 유언으로는 “내가 죽거든 무덤을 만들지 말고 과목밑에 묻어 거름이 되게 하라” 하며 운명하였다. 강원도 홍천에 가면 남궁억기념관과, 무궁화동산, 폐쇄한 교회당도 원형대로 복원되어있어 가족들과 함께 여행하면 특히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크게 유익할 것이다.

3. 무궁화(The rose of Sharon)와 기독교의 관계
한자로는 무궁화를 근화(槿花)라고 하는데 여기에 槿자는 무궁화(無窮花)근 자로 즉 다함이 없는 꽃, 끝이 없는 꽃이란 말이다. 아침이면 피고 저녁되면 시들지만 아침이되면 다시 새꽃이 핀다.( 연중 4개원간 ) 한자사전에 무궁화근(槿)자를 찾아보니 (샤론의 장미 rose of Sharon)라고 하였고 한영사전에도 무궁화를 역시 ( 샤론의 장미 The rose of Sharon )라고 표기되어있다.
여기에 나오는 샤론의 장미는 지금 이스라엘에 있는 가장 아름다운 꽃을 말한다. 여기에 샤론( Sharon )은 이스라엘에 있는 지명인데 욥바에서 가멜산까지의 가장 기름진 옥토이고 성지라고 말한다. 욥바지역은 구약시대부터 신약시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많이 다녔던 곳으로 예루살렘에서 서북쪽 약 56km에는 예루살렘의 관문의 역할을 했던 곳이요 솔로몬이 예루살렘성전과 궁궐을 건축할 때 이 욥바항구를 통해 뗏목으로 레바론의 백향목을 실어왔던 곳이고 특히 요나선지자는 니느웨로 가서 회개하고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을 거부하고 욥바항구에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던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또한 가멜산은 엘리야가 하나님께 기도의 응답을 받아 그곳의 이방신선지자 850명을 전멸시킨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 지역에 필자는 2005년 성자순례때 가 본 기억이 생생하다. 엘리야가 이방신(바알신, 아세라신)을 쳐 죽인 기념으로 엘리야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신약시대에도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많이 다니신 지역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러한 지역에 아름답게 피는 꽃을 샤론의 장미 ( The rose of Sharon )라고 하니 이 꽃이 분명히 그 숨은 의미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어 식물학이나 성경학자들의 연구가 요구된다.
신학자들 중에는 샤론은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에도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활동했던 곳으로 그곳에서 피는 샤론의 장미라 하는 꽃은 아가서2장에 나오는 사론의 수선화를 의미한다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도 자주 다니신 곳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바로 샤론의 장미라고 하니 우리나라 무궁화를 아주 많이 닮아서 연구의 대상이 된다.
필자가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갔을때 꽃을 파는 상인에게 붉은 꽃이 무궁화를 너무 많이 닮아서 꽃 이름을 물었더니 샤론의 장미라 하며 한국의 무궁화라 하지만 참고할 뿐이지 그들의 말을 그대로 다 신뢰할 수는 없으나 분명 연구의 과제는 될것으로 사료된다. 그리고 비록 우리나라에는 무궁화를 정원수로 심은 곳을 찾아보기 드물지만 전세계 50여 국가에서 무궁화를 정원수나 가로수, 울타리 등으로 많이 가꾸고 있음을 볼 수 있다고 한다. ( “무궁화” 송원섭 저서 P.136 2003년 ) 독일을 다녀온 분들의 기록을 읽어보면 독일은 정원 잔디밭에 약 50%가 무궁화를 정원수로 가꾸는 마을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필자가 우리나라 전국을 답사하며 무궁화를 재배관리하는 곳을 찾아 보지는 못했지만 우리나라에는 정원수로 가꾸는 가정은 보기가 더물고 천안에가면 독립기념관이나 부산유엔묘지 공원에 가면 집단적으로 무궁화를 정원수로 심어 가꾸고 있음을 볼수 있어 다소나마 위안이 되기도 하였다.
일제 기독교 교회가 탄압을 받을 때 무궁화도 한국을 상징하는 꽃이라 하여 함께 탄압을 받았으니 더욱 애정이 가는 꽃으로 생각되어 그때의 실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에게 무궁화에 대한 애정을 갖도록 알리고 잘 가꾸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