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반에 서울에서 개봉된 ‘미드나잇 카우보이’라는 영화를 보게 된 것은 순전히 포스터에 나와 있는 영화배우 존 보이트의 카우보이 복장 때문이었다. 얼핏 그것만 보고 존 웨인이나 알란 랏드 풍의 서부활극 영화로 착각했었다. 물론 뉴욕 대도시의 풍경이 있었지만, 텍사스 출신의 존 보이트가 뉴욕에 와서 악당들을 소탕하는 내용인 줄 알았다. 그러나 웬걸. 내 기대는 빗나갔다. 덩치 하나만으로 자칭 섹시남으로 여기던 그는 시골 허름한 식당에서 접시닦이를 하고 살다가 ‘큰물에서 놀아야겠다’며 뉴욕행을 결심한다. 돈 많은 여자에게 섹스를 제공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소문만 듣고.
그러니까 미드나잇 카우보이는 ‘남창’이라는 영어 속어였다. 존(영화 속의 이름도 배우의 이름과 같다)은 넘치는 기운 하나로 뉴욕을 제패하겠다는 망상을 가진 텍사스 촌놈이였다. 그러나 세상일이 만만치 않은 법. 촌뜨기의 낚싯밥에 걸려든 것은 동종 업에 종사하는 창녀. 오히려 그녀에게 걸려들어 돈만 뜯긴다. 게다가 절름발이에 왜소한 랏소(더스틴 호프만 분)에게 사기를 당하고 머물던 숙소에서 쫓겨나자 철거 직전의 아파트에 사는 랏소를 찾는다.
랏소는 폐병 환자이지만 돈이 없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다. 따뜻한 플로리다 마이애미에 가서 사는 것이 소원인 랏소. 뚜쟁이가 되어 남자가 필요한 여자들에게 존을 소개해 주지만 돈벌이가 신통치 않다. 그러는 사이에 둘의 우정이 싹트고, 병세가 악화되어 죽음을 앞둔 랏소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초로의 동성애자에게서 돈을 강탈해 그 돈으로 함께 버스를 타고 마이애미로 향한다.
결론은?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랏소는 결국 마이애미에 들어서기도 전에 죽어버린다. 가난한 젊은이들의 좌절된 꿈은 당시 갓 스물에 지방에서 상경한 내 마음을 한없이 흐리게 했다. 괜히 보았네. 후회도 했지만, 마이애미를 꿈꾸던 더스틴 호프만의 슬픈 표정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마이애미가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그렇게 가고 싶어 했을까? 지상 낙원인가?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인가? 가기만 하면 삶의 모든 어려움이 눈 녹듯 사라질까? 열대과일 나무가 지천이어서 허기지는 일은 없겠지? 따뜻하니 러닝셔츠 하나만으로 사계절 보낼 수 있겠지? 아니 사계절이라는 개념도 없을 거야. 항상 봄이고 여름일 거야. 그러니 랏소가 갈망하던 곳이었지.
강한 소망은 언젠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마침내 갈 기회가 생겼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같은 북미주 서해안인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등은 마음만 먹으면 편히 갈 수 있다. 시애틀은 승용차로도 2시간여이지만 로스앤젤레스나 샌프란시스코는 항공편으로 3시간 반 정도. 그래서 자주 가게 된다. 그러나 마이애미는 남동부. 밴쿠버에서 직항조차 없다. 토론토에서 갈아타거나, 아니면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피닉스 같은 중간 경유지를 거쳐야 한다. 모 시니어 여행자 동호회에서 카리브해 유람선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우리 부부가 동참하게 되었다. 출항지가 마이애미라서 하루 종일 걸리는 이동시간을 견디기 힘들어 희망자가 적었다. 경유지에서 기다리는 시간을 합하면 편도 10시간이나 걸리기 때문이다. 서울 가는데 소요되는 시간과 맞먹는다. 고령층에는 약간 무리이기도 하다. 아직은 다리에 힘도 있고, 가슴도 약간은 설레는 나이라 여행을 감행하기로 했다.
어렵게 가는데, 나로서는 초행길인데,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나는 아내와 상의하여 이틀을 마이애미 관광에 쓰기로 했다. 랏소가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곳. 나도 가고 싶었다. 더구나 밴쿠버의 1월은 레인쿠버(raincouver)라고 할 정도로 비가 자주 온다. 한국의 장맛비처럼 홍수가 날 정도로 쏟아 내리는 비가 아니라 찔끔찔끔, 추적추적, 성질 돋게 내린다. 하늘은 항상 흐려있고, 대기는 우울하다. 영원히 햇살을 볼 수 없을 것 같은 상실감이 든다면 잠시라도 밴쿠버를 탈출해야 한다. 그래서 밴쿠버 사람들은 1월이면 햇살을 찾아 여행길에 오른다. 하와이나 멕시코의 칸쿤이 인기 있지만 역시 은퇴자들에게는 남미 카리브해를 크루즈로 한 바퀴 도는 것이 제일 좋다.
크루즈가 아니더라도 마이애미는 겨울을 나기 좋은 관광지다. 겨울에도 평균기온이 섭씨 23도에 머무르는 온화한 날씨 때문이다. 캐나다와 같은 영어권이기 때문에 낯설지 않고 부담이 없다는 점도 추운 지방의 여행객을 끌어들이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러나 항상 예외는 있는 법. 축축하고 쌀쌀하고 음울한 분위기를 피해 날아 온 마이애미는 섭씨 13도에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체감온도는 3도. 더울 것이라 예상하고 얇은 옷가지만 준비해 온 우리에게는 밴쿠버로 되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추웠다. 이런 날씨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마이애미 사람들은 아예 두꺼운 방한복을 입고 다닐 정도였다.
크루즈 터미널과 가까운 다운타운 호텔에서 나와 대여섯 블록 되는 관광버스 탑승장까지 가는 길이 천리만리 되는 듯했다. 사기를 당한 기분인데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 없는 느낌. 그러나 몇 개월 전 인터넷으로 예약한 시내 관광버스 요금이 현장에서는 두 배를 지급해야 한다는 사실에 슬며시 기분이 좋아진다. 마침 예약 시점이 판촉 때라 가능했단다. 보통은 온라인 예약이 한 10% 정도 저렴한 수준. 추웠던 마음이 약간 녹는 듯하다.
마이애미서는 아내와 나의 여행 스타일을 바꾸기로 한다. 유명 관광지로 소문난 곳 찾아서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한 5분 정도 증명사진(?) 촬영하고 다른 장소로 이동해야 하는 그룹 관광은 그만둔 지 오래다. 숙박 편과 교통편만 예약하고 내 편한 대로 다니는 여행에 맛 들였지만 이틀 시간 안에 느긋한 여행 스타일은 사치. 해서 하루는 도심을, 하루는 해변을 도는 자유 승하차 관광버스(hop-on, hop off)를 이용하기로 했다.
첫날은 도심을 돌기로 했다. 크루즈 선착장이 멀리 보이는 베이사이드 시장과 베이프런트 공원 사이에 버스출발지가 있다. 센트럴 역이란다. 모든 방향의 자유 승하차 버스가 거기서 출발한다. 오전 9시 15분부터 30분마다 출발하는 도심 방향 경로는 한 바퀴 완주하는데 한 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베이사이드 시장 입구에 후안 폰세 데 레온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카리브 연안 지역 곳곳에 그의 흔적이 있다. 중세 스페인에서는 훌륭한 군인이자 탐험가였지만 카리브 연안 원주민들에게는 침략자, 약탈자, 악랄한 정복자로 불리는 사내.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 오늘날 그를 기리는 동상들이 아이티, 도미니카, 푸에르토리코, 쿠바, 미국의 플로리다 주까지 그가 지나간 곳마다 나 보란 듯 서 있다.
1493년 콜럼버스의 2차 항해에 따라나서 신대륙을 접한 그는 1508년 스페인 국왕의 명령으로 푸에르토리코를 정복한다.
초대 총독이 되어 3년간 원주민들의 농산물과 금을 빼앗고, 말을 듣지 않으면 가차 없이 죽여버리는 학정을 단행한다. 스페인에는 부와 영토를 가져다 준 애국자이지만 카리브해 원주민들에게는 이등박문 같은 인물이었겠다. 마지막 생애도 비슷하다. 자신이 발견하여 스페인의 부활절 축제 이름인 파스쿠아 플로리다(꽃 축제)로 이름 지은 현재의 플로리다 마이애미에서 1521년 7월 원주민이 쏜 화살에 맞아 치명적인 목 부상을 입고 사망한다. 플로리다의 안중근은 승자들의 역사에서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고, 정복자의 이름만 영원히 기억되어 가고 있다. 나라를 잃으면 역사를 잃고, 역사를 잃으면 미래를 잃는다는 교훈이 가슴에 남는다.
<다음호에 계속>

문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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