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답답한 의사당 관광 후 보상이라도 하듯 다음 행선지는 시원한 바닷가. 산 후안 옆 동네인 캐롤리나 시에 있는 작은 해변은 사실 인적이 드문 조용하고 평화로운 바닷가였지만 그래서 더욱 코발트빛 카리브의 정취가 짙게 베어나듯 했다. 상체는 가늘고 하체가 우람한 팜트리 군락은 관광객들을 환영하듯 도열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지상천국을 느낀다.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은 세상 걱정 없어 보일 듯 하다. 그러나 ‘지상’천국도 ‘세상’걱정을 피할 수 없는 가 보다.
‘훗날, 파도가 격렬하게 요동칠 때면/사람들이 말하지요. 파도는 그 소녀의 치명적 양심입니다./소녀는 항상 시(詩)의 세상 속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죄가 많았던 것입니다./사람이 한 세상 살아가려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법이지요.“ (푸에르토리코 국민시인 훌리아 디 부르고스의 시 “훗날” 중에서)
산다는 게 어디서나 만만치는 않는 법. 캐롤리나 태생의 여류시인 훌리아는 14세되던해인 1928년 사나운 폭풍 ‘산 펠리페’가 푸에르토리코를 덥쳐 300여명이 사망하고 건물은 물론 산등성이 나무뿌리도 날려버리는 재난광경을 보았다. 세상 모르고 시의 세계에 빠져있는 그녀가 자연재해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의 양심은 파도처럼 울부짖었고, 참담한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더욱 시의 필봉을 예리하게 갈아야 하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위해 나는 무엇을 대가로 지불해야 할 것인가를 청정해변에서 조용히 묵상해 보았다.
해변과 지척에 젊은이의 광장(Plaza de la Juventud)이 있다. 푸른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조형물이 젊은이의 기상을 대변한다. 비록 작은 섬나라에 살지만 기개만은 하늘을 찌르듯 높게 가지라는 뜻으로 1998년 호세 아폰떼 캐롤리나 시장이 조형했다.
그는 한국전에서 전사한 미 참전용사의 아들이다. 부친의 사망으로 가세가 기울자 그의 어머니는 남은 가족들과 함께 여러 도시를 전전하다 마침내 캐롤리나에 정착한다. 호세는 푸에르토리코 국립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는데 부전공으로 산업예술을 택한다.
뉴욕대학에서 행정관리 학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캐롤리나 직업학교 교사생활을 하면서 정치에 관심을 가진다. 일년에 몇 차례 강력한 태풍이 몰려오는 조국.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을 위하여 그는 무엇을 대가로 바쳐야 할 지 생각한다. 그리고는 1984년 캐롤리나의 시장선거에 출마, 당선된다. 그리고는 시의 개혁에 착수한다. 태풍에도 견디는 건물을 세우고, 적자투성이의 시 살림을 일으킨다. 이름도 모르던 나라인 한국에서 알지도 못하던 사람들을 위해 생명을 바친 아버지처럼, 그는 자신보다도 시민들의 복지와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위해 헌신한다. 특히 차세대인 젊은이들이 기죽지 않고 자신감 있게 성장하도록 ‘젊은이의 광장’을 조성하였는데, 주말이면 젊은이들이 모여 음악을 즐기고, 연극을 관람하며 건강한 젊음을 분출한다.
호세 아폰떼는 2001년부터 2006년까지 푸에르토리코 전 도시의 시장협의회 회장을 지냈는데, 호흡기 합병증으로 2007년 사망한다. 40년동안 즐겨온 흡연이 원인이었다. 병원 입원 후 금연을 했지만 이미 병이 악화된 상태였다. 광장을 가리는 바람벽에는 젊은이의 광장을 세운 호세시장의 공적 비가 부탁되어 있다.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그는 건강을 이 세상에서 대가로 지불했다.
두 시간여의 승합버스 투어가 순식간에 끝났다. 짧은 체류의 관광은 항상 주마간산이지만 모르는 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어 시내관광의 묘미가 더해진다. 마지막 행선지는 공주의 산책길(Paseo de la Princesa). 산후안 구 도시를 방어하는 성벽을 따라 난 해변길이다. 관광가이드 페르난도와 작별을 고하면서 ‘다시 만나자(See you again)’는 공허한 인사만 남긴다. 그는 또 다음 고객들을 만나기 위해 바삐 자리를 뜬다. 그와의 만남도 이별도 한줄기 바람이듯 휙 스쳐간다.
산책길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정면에 뿌리 분수대(Fuente Races)가 있다. 푸에르토리코의 다양한 문화적, 민족적 배경의 뿌리를 형상화 하였다. 그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다 오른편의 회색건물을 발견한다. 얼핏 보기에 박물관처럼 보여 들어갔더니 입구에 제복을 입은 수위가 의아하게 바라본다. 보긴 뭘 봐. 입장료 내고 구경할 거야. 치뜬 눈 좀 하강하지. 속으로 중얼거려본다. 그런데 매표소가 없다. 알고 보니 푸에르토리코 관광공사 건물이란다. 멋쩍어 시내지도 있느냐 묻고 한 장 받아서 그냥 나온다. 예전에 스페인 점령 시 감옥으로 사용되던 건물이어서인지 괜히 주눅들었던가 보다.
뿌리 분수대. 똑바로 보기 민망한 청동 나상(裸像)의 여신들이 말이나 돌고래를 타거나, 혹은 기타를 연주하거나, 혹은 아이와 놀거나, 혹은 두 팔을 하늘로 뻗고 있다. 이 땅의 원주민, 노예로 끌려온 아프리카인, 정복자인 스페인 인 모두가 오늘의 푸에르토리코를 만들어 왔음을 상기시킨다. 그러하여 평화를 위한 염원이 대대로 계승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산책길을 에워싼 성벽 가운데 붉은 문이 보인다. 무당 굿하는 집 대문처럼 보인다. 1635년에 세워진 산후안 게이트다(La Puerata de San Juan). 예전에 바다로 들어오는 적의 침략을 막기 위해 지은 성벽에 난 여섯 개의 문 중 유일하게 남은 것이다. 이 문을 통해 항구에 정박한 배에서 내린 많은 사람들이 산후안 시내로 각종 생필품, 상품 등을 반입하기도 했다.
밤에는 안전을 위해 대문을 닫는다. 사시사철 열어놓으면 문이 아니다. 위험요소가 있을 법 하지 않은 현대에도 관리인이 대문의 개폐를 책임진단다. 항구에서 도심으로 들어오는 지름길인 대문의 개방시간을 놓치면 깜깜한 밤중에 성벽을 한참 돌아 시내로 들어가야 한다.
성문 위에 새겨진 라틴어에는 ‘주님의 이름으로 오는 자는 복되도다(Benedictus qui venit in nomine Domini)’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스페인점령의 영향으로 카톨릭 신자가 많은 산후안의 출입문다운 글귀다.
하긴 산 후안이라는 도시이름 자체도 세례요한(San Juan-John the Baptist)에서 인용되었다. 기원전 1세기 말 팔레스타인 광야에서 예수의 출현을 예고하던 예언자이다. 인류를 죄악에서 구원하기 위해 오는 예수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그는 목숨을 대가로 바쳤다. 성경에 의하면 헤롯대왕의 불륜을 꾸짖다가 의붓딸 살로메의 청으로 쟁반에 잘린 목이 담기는 최후를 맞았다. 그러나 그의 숭고한 희생은 세상 끝날까지 전해질 것이다.
세상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나는 무엇을 지불해야 하나. 시인 훌리아처럼 인간 삶의 고통을 위로하는 문학작품을 창작하기 위해 늙어가는 날들을 희생해야 하나. 활력 있는 교민사회의 젊은이들을 위해 호세 아폰떼 시장처럼 ‘마음의 광장’을 만들어야 하나. 새로운 세상을 향해 오는 이들을 위해 남은 길을 봉사와 헌신으로 꾸려가야 하나. 모두 너무 내겐 벅차다. 다만 아내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내 일을 사랑하고, 신을 사랑하는 작은 일로 대가를 지불하는 수 밖에.
크루즈 정박 지를 향해 공주의 산책길을 내려온다. 카리브의 해풍이 얼굴을 간질인다. 그리고 속삭인다. 얼마 남지 않은 여정. 욕심을 버리고, 증오와 미움도 내려놓고, 그저 카리브의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 가라 한다. 끄덕끄덕. 오늘 밤은 잠 푹 자기를 기대한다. 내일의 여정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