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 니…우리 모두는 과연 어떤 모습의 부모들일까?
얼마전,
한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던 중에 두 가정의 모습을 접한 적이있다.
아이 세명을 데리고 자장면을 먹던 엄마는 식사내내 잔뜩 찌푸린 표정의 얼굴로 아이들을 대하였고 식사가 끝난 후떠난 자리는쏟긴 물과 음식들로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또 따른 가정의 아이는 음식을 먹던 중 물을 쏟았는데 겁에 잔뜩 질려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잘 못 했다고 울먹이는모습도 볼 수 있었다. 두 가정 모두 무언가에 잔뜩 화가 난 듯한 표정의 부모님이었다는점…그리고, 아이들이 주눅들어 있었다는 점…
잠깐이지만, 이 모습을 지켜보며 요즘 아이들이사회나 어른과의소통의 부재는 어쩜 당연한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늘 안식처가 되어야 할 부모님의 미소가 아이들에게 불안함으로 다가갔다면 말이다.
 
우리 집 아이들은 외부의 음식점을 가도 나올때는 자리를 정돈 한다던지 다른 공공 장소에서도 타인에 대한 배려를 하는 기특한 아이들이다.
이런 행동은 우리가 생활하며 가르쳤다기보다는어린 시절 함께 하였던 부모님들께서 몸소 행동과마음으로보였기 때문일것이다. 
가정 교육의 기본은 남을 겉으로 인식하게끔 하는게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배려를 가르치는게아닐까 싶다. 대학생이 된 아이들이 지금의 어린 동생들이 그릇을 깨트리거나 잘못을 했을 때  어디다친데는 없어? 괜찮아?라고 먼저 묻는건 참으로 예쁜 예비 엄마 아빠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이야기를 풀어 놓은건…
요근래홀로 유학을 온 어린 학생들을 만나보면 학습의 성취가 최우선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면서도 사람을 가린다던지 배려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니…참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에 한번쯤은 함께 생각해 보았음 하는 마음에서다.
 
내 생각은 이렇다.
공부 잘 하는 사람이 인성의 됨됨이까지 되면 얼마나 빛이 날까?  아름다운 성품을 가진 사람 주변엔 늘 좋은 사람이 있고, 그럼으로 평온함을 가진 어린 아이들은 공부도 생활도 잘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 해 본다.
유학 오기 전,
내가 식사한 그릇을 싱크대 안에 넣고 물을 부어 놓는 센스, 부모님의 노고에 늘 감사하는 기특함, 길거리에 노숙자를 보며 한심하다고 말 하기 전에 작은 마음이라도 나눌 수 있는 따뜻함 등을 가진 마음이 부유한 자녀로설 수 있게 도와 준다면, 유학 생활도성공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명문대 입학, 완벽한 A학점만을 고집하는 옛 부모가 아니라, 무엇이 하고싶은지 무엇을 잘 하는지 그러면서 미래에 대한 꿈을 일찍 갖고 출발하는 아이들이라면…
지금의 우리 집 아이들처럼 참으로 열심히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착하고, 바른 인성을 갖게 한 지금 우리 아이들의 부모님들에게도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2010년 9월 학기가 시작되며 집안 곳곳에선 노래 한 곡을 흥얼거리는 아이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O Canada!
Our home and native land!
True patriot love in all thy sons command.
With glowing hearts we see thee rise,
The true north strong and free!
From far and wide, O Canada, We stand on guard for thee.
God keep our land glorious and free!
O Canada, we stand on guard for thee.
O Canada, we stand on guard for thee.
 
우리 나라의 아이들이 애국가를 외우듯 처음 접하는 나라의 국가를 외우는 건 아주 쉬운 일은 아니었을법도한데…그래도 아름다운 선율을 가진 캐나다 국가는 어느 새, 영어 버전과 프렌치 버전으로 아이들 입에 익숙해져 있었다.
학기 초반에는여러가지  서류들을 많이 접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대부분은 개인의 정보들을 기록하고 학교 생활의 안내등이었지만, 가장 인상에 남았던 서류는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와 공개의 여부를 묻는 서류였다.
한국 학교에선 이런 서류를 본 적이 없다보니 외국 사회는 진정 사생활을 중요시 함을 또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과 7학년으로 배정 받은 아이들은 두 학교로 나뉘어 다니게 되었는데,
각자 담임 선생님들의 수업 방식이 다르다보니 학년이 같아도 아이들이 해야 하는 과제는 다 제각각이었던것 같다.여자 아이들의 학교는 규모가 작다보니 굉장히 가족적인 분위기였다. 미술과 음악에 많은 시간을 보내며수학 가르침에 치중하셨던 분도 계셨고 영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셨던 분도 계셨다. 
7년이 지나고 보니, 처음 유학생활을 하며 어떤 선생님을 만났는가에 따라 각자의 관심사나 영어 능력의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기도 하였다. 
아이들이 다녔던 델타 교육청의 SunshineHills Elementary 와 Pinewood Elementary에는 따뜻하고 능력있는 선생님들이 꽤 많았던 기억이 난다.
Mr. Genuist 선생님과 Mr.Nielson 선생님은 우리가 경험했던 선생님들 중에 가장 베스트한 선생님이었다.
어쩜, 낯선 타국 생활의 시작에 아이들이 일탈 없이 학교 생활을 잘 할 수 있었던 조력자 중에 한 분들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 아이들 중 두 명(지유, 가희)이 선생님이라는직업이 꿈과 목표가 되어 교육학을 전공하고 있는 영향도 어찌보면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한게 아닐까 싶다.
 
이 시절, 세 명의 동생들(혜란,건형,은영)은 학교에서 하는 대부분의 스포츠는 거의 참여 하였던 것 같다. 배구, 농구, 트랙의 순서로 이루어지는 시즌에는 방과 후엔 다른 학교로 옮겨가며 대회도 하고 그런 아이들을 나와 아빠는 운전 봉사도 서슴없이 했던 기억도 있다. 하루는 건형이의 경기를 보던 중 시합임에도 잠시 공과 멀어지니…손톱을 얼마나 맛있게 물어 뜯던지…그 땐 저 녀석이 왜 저러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아이들도 긴장을 많이 했던것 같다. 이제 겨우 학교 생활이 한 달 남짓 지났는데 말도 안 통하고 단체 스포츠에 적응도 덜 되어 있었으니 그럴법도 하다. 또, 경기내내 곁에서 지켜보는 우리를 계속 힐끔힐끔 쳐다보는 혜란이의 눈빛도잊을 수가 없다. 이렇게 아이들과 우리는 이 곳의 서툰 생활에 적응 해 가고 있었다.
 
각자의 가정에서 귀하게 자란 아이들이 한 가족이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익숙해져 갈 때는 분명히 그들만의 세상이 있었을 것 이다. 함께했을 때가 더 많았지만, 학교에서나 아이들끼리 놀이를 하는 건 어른인 우리가 다 보지 못 했던 시간이었을 것 이다. 많이 싸웠을 것이고, 참아야 했을 것이며 어쩜 눈물도 웃음도 수 백 수 천 번 이었을 것이다.
며칠 전, 처음 이 곳에 올 때에준비해 온 아들의 낡은 전자 사전 속에는 여러건의 오디오 녹음들이 저장 되어 있었다. 늘 혼자였던 아이가 누나,형, 친구들과 가족이 되며 들떠 있었고, 재미나게 놀이들을 했던 흔적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하나가 아닌, 여섯은 분주함이 아닌 힘이였던 것이다.
내 것을 나눠야하는 불편함도 있었겠지만, 단체 생활에 익숙한 아이들은 현재 대학과 일터라는 그들만의사회 생활에 잘 적응해 가는 모습으로 길들여져 있기에후회 되지 않은 멋진 선택이었다는 자부심으로 기억 해 보려 한다.
함께여서 두 배로 행복한 세상의 모습을 우린 알기에~~
여전히 처음 아이들이 우리와 어린 새내기 어린 동생들과 함께 생활하는이유일 것이다.
 
 
TIP 우리 아이들의 한마디
많은 한국 학생들은 학교 규칙에 참으로 관대하다. 뛰어다니고 거친 말도 하고…
우리 아이들은 이런 모습을 보는게 부끄러웠다고 말한다.
혹시,한국 친구들이 있다고해도 다 함께 생활할 때는 영어로 대화 하려는 노력도 필요한 것 같다고…ESL 선생님께서 너희 같은 한국 아이들은 처음 봤다며 함께 사는데도 영어로 대화하고,예의 바르고~~
이 말을 들은 뒤로는 대한민국의 얼굴이라는 책임감까지 들었다며 그 때를 회상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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