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덕환 (샌프란시스코 거주. 성균관대학교 78학번)  

. 아니야, 이럴 수는 없어…. 

생애 처음 타는 밴쿠버 비행기를 타러 2시간 도착하겠다며 넉넉한 시간을 두고 사무실을 떠나기 직전 캘리포니아 주정부 부동산국으로 보내는 중요한 서류에 사인을 해줘야할 일이 돌발했다. UPS 들러 처리해 보내고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하니 이게 웬일, 공항 외곽에 있는 롱텀 파킹에서 전용트레인을 타고 20분을 가야 국제선 1터미널이라는거 아닌가. 허겁지겁 당도하고 보니 이륙시간이 불과 30분밖에 남았는데 체크인을 하려고 트렁크를 끌면서 아무리 허둥거리며 둘러봐도 항공사 데스크를 찾을 길이 없었다. 간신히 구석의 꺼진 데스크를 찾아 직원을 만나 하소연 했더니 이미 체크인을 마감하고 접수창구는 철수했다는 것이다. 헉… 지난 5 멕시코 크루즈에서 만나 좋은 시간을 함께 했던 동문들과, 뱅쿠버 지역 동문들을 있다며 달을 설렘 속에 기다려왔던 나는 마치 연극의 마지막 장이 끝나고 불이 꺼진 객석에 덩그러니 앉은 , 온몸에 힘이 빠지며 낭패감에 블랙아웃에 빠지고 말았다. , 이게 뭐냐… 마침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 젊은 인도인 친구가 친절하게도 3시간 후에 출발하는 에어캐나다의 비행기 표를 구입하는 일을 낙심중인 대신해 자기 일처럼 도와주어 우리는 간신히 자정 무렵에 밴쿠버에 도착할 있었다. 얼마 전까지 밴쿠버 지역 동문회장을 4년간 역임하고 물러났다는 홍선배가 늦은 시간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홍선배는 나와 대학, 전공, 공군장교, 한국외환은행 본점 근무까지, 게다가 나중에 알게 됐지만 20년전 내가 샌프란으로 이민 직후, 뱅쿠버에 먼저 정착해 사시던 형수님을 따라 이민 오기 직전 미주행 비자를 기다리며 남산 시립도서관에서 세계명작 전집을 읽으면서 구내매점에서 싸구려 우동이나 카레라이스로 점심을 때우며 소일했던 경험까지 무려 5가지가 겹치는 막역한 선배다. 

나는 밴쿠버를 마치 미국의 도시인 것처럼 친근하게 생각했었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엄연히 국제선을 타야 있는 이웃나라였던 것이다. 비록 새벽에 도착한 23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나는 밴쿠버의 아름다운 사람들, 멋진 풍광에 한마디로 깊이 매료되었다. 한국처럼 총기휴대가 금지돼 사회는 매우 평화로웠고 의료비와 고교까지의 교육비가 무료인 복지국가 캐나다인데, 뱅쿠버는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미운정 고운정을 함께 나누며 사람없이 이역만리 미국 땅에 살면서 나를 진정 만나고 싶어하고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여행하는 설렘이라니… 5월의 크루즈 동행이후 삼개월 만에 다시 만난 달라스의 CC 후배님들은 뱅쿠버의 이웃 국경 도시인 시애틀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프린스턴대 미식축구 선수(오펜시브 센터) 출신의 아들 하늘이를 데리고 왔는데, 내가 도착한 당일 저녁 시애틀의 미국 이웃들에게 김치 담그는 법을 시연하기로 코퀴틀람 라이온스 팍에 있은 야유회 한나절만 함께 하고는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떠나야 했다. 

사랑하는 동문들과 헤어지는 아쉬움에 그들의 눈가는 이내 촉촉해졌다. 미국 각지에서 우리를 위해 기꺼이 무거운 나르기를 마다 않으며 파티 준비를 하고 바비큐와 파전을 굽고 기쁨 속에 관광지로 안내해 보여주는 일을 마다 않는 뱅쿠버 선후배님들의 따스한 환대를 보면서 나는 세상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가장 멋진 곳은 바로 밴쿠버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꺼이 소매를 걷고 함께 일하며 정다운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밴쿠버. 도대체 얼마나 천국이냐면…. 지금 당장 가서 살고 싶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