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_글·사진 신양준(대한민국 재향군인회 서부지회 전 회장)
1950년에 북한군의 침입으로 일어난 한국전쟁(6.25)에 캐나다는 UN군의 일원으로 2만 6천 791명이 참전해 5백16명이 전사했고 5천 4백 3명의 부상자가 생겼다. 이렇듯이 캐나다는 한국과 세계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중의 하나가 되었고 한국역시 캐나다를 똑같이 여기고 있지만 아쉽게도 캐나다에는 한국전쟁을 기리는 참전 기념비가 거의 없었다. 연방 정부가 위치한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에 하나가 있는데 서부 캐나다와는 5천 킬로미터도 넘는 너무 멀리 있는 한국전 참전 기념비여서 방문하는데 쉽지 않아 안타까웠다.
2005년 나는 서부캐나다지역의 재향군인회장으로 재임하면서 늦기는 했지만 한국전쟁에 종군했던 캐나다군 참전용사들의 공훈과 희생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625 참전 기념비가 밴쿠버지역에도 반드시 세워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숭고한 평화수호의 정신을 길이 새겨주고 그들의 명예를 존중하는 계기를 마련해야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당시 밴쿠버를 비롯한 B.C주에는 한국전쟁을 기념할 기념비가 없었고 세계 제 1,2차 대전 때의 기념비와 조형물이 있었다.
나는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캐나다 서부지회 회원들과 캐나다의 한국전 참전용사회(Korea Veterans Association)의 회원들에게 기념비를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하자고 권유해 크나큰 기대감을 안고 기념비 사업에 착수했다. 당시 밴쿠버지역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숫자가 많이 늘어 비교적 쉽게 출발할 수 있었다. 기념비 건립은 한인들의 주최로 이루어질 사업이므로 한인이민사에 길이 기념될만한 사업이어서 참전비 건립위원회의 구성과 출발은 이 역사적인 사업은 밴쿠버사회에서도 큰 관심과 이목이 집중되었다.
기념비사업의 의의
1997년 10월에 창립된 재향군인회 서부지회는 그동안 한인들을 위해 여러 가지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왔다. 당시 밴쿠버지역의 한인규모가 1만 8천명 정도였고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민자로서 정착에 더 큰 비중을 두었기 때문에 재향군인회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재향군인회가 공익성을 가진 비영리 목적 단체이기 때문에 캐나다 사회의 소수민족인 한인단체로서 그 역할은 지대한 것이었고 사업의 막중함은 또 하나의 한국을 캐나다사회에 보여주는 바로메타였다.
2005년 6월에 기념비 준공식을 마치고 나는 어깨가 무거워졌음을 가슴으로 느꼈다. 나는 노심초사 사업전개와 진행에 심혈을 기울였고 밤잠을 이루지 못한 적도 많았다.
나는 참전비를 세우는 사업에 관해 ‘국민으로서 나라를 지키는 일은 곧 우리 자신을 지키는 일인데 젊은 시절 자신들의 나라도 아닌 먼 나라 한국전쟁에 참전해 남다른 열정으로 임무를 다했던 캐나다 참전용사의 그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것은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사업이며 또 한편으로 이곳에서 살아가는 한인들에게 정신적, 교육적인 측면 모두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라고 밴쿠버의 한인단체들에 홍보했고 한인 신문과 한인 방송에도 널리 알렸다.
참전 기념비 건립을 시작했을 때 밴쿠버의 주요단체와 한국전에 참전했던 캐나다 참전용사 모두가 환영의 뜻을 비치고 또 적극적으로 동참할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한국을 떠나 해외의 생소한 지역을 제2의 삶터로 삼으며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 공동의 뜻이 담겨진 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반드시 이루어져야할 사업이라면 누구라도 시작해야 마땅했다.
물론 사업이 시작되면 누구나 찬성하는 것이 아니고 협조보다는 무관심이, 호응보다는 질타가 있게 마련이다. 나는 이 사업의 의의가 캐나다 속에 한국인들이 꿋꿋하고 바람직하게 정착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으며 앞으로 일어날 군더더기는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캐나다로 이주한 나의 생활 이야기
나는 1969년 4월, 캐나다 밴쿠버로 이주했다. 부산에 있는 해양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해군 기술 장교로 복무했고, 제대 후 한국 전력에 입사했다. 그 당시 화력 발전소에서 근무했는데 캐나다인 기술자를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눈 것이 이주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나는 처음에 오자마자 특정된 기술 인력으로 이민을 왔기 때문에 캐나다의 유사직종에 이력서를 보내고 구직을 원했지만 대부분의 사업체에서는 캐나다의 현지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취업할 수 없었다.
어떤 직장에서는 타국에서 새로 정착하려고 왔다면 경험이 필요하니까 일단 궂은일을 해 보거나 밴쿠버를 떠나 소도시로 가서 직장을 구해보라는 충고를 하기도 했다. 그 당시 한국에서 재산을 가져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으면 생존에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좋은 기회가 왔다. 운이 좋았다고나 할까. 이력서를 보낸 회사에서 채용 인터뷰를 했는데 결정권을 가진 매니저가 한국전쟁에 참전한 참전군인이었다. 그는 한국인에게 많은 호감을 갖고 있었고 또 젊은 시절에 한국전에 종군했던 참전용사였기 때문에 한국을 잊지 못하는 친절한 기술자였다. 그가 나에게 호감을 갖고 채용하였다. 기술자로 입사해서 십여 년 이상 근무를 했다. 주위에 한국 교민이 없어서 매우 외로웠던 시절이었다. 1960년대 말에 한인들은 겨우 몇 십 명 되지 않았고 그 안에는 유학생들이 포함되어 있으니 이주가족은 불과 삼십여 가정 미만이었다.
십여 년이 지나고 1980년대가 오면서 한국과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무역은 주로 화물선을 이용하게 된다. 내가 해양대학 출신이었기 때문에 밴쿠버에 온 화물선에 근무하는 한국인들은 거의 동문 선후배여서 만나면 무척 반가웠다. 밴쿠버에 체재하는 동안 그들과 어울려 안내도 했고 고국 소식도 들었다. 처음에는 접대하고 어울려 다니는 것으로 끝났지만 잘 대해주고 교류가 빈번해지자 그들은 나에게 무역과 관련된 사업체를 만들라고 권유했다.
그들이 운행하는 화물선들은 주로 일본인이 소유주였다. 그래서 그 화물선박에 필요한 물품들을 납품하는 업체들은 대부분 밴쿠버에 사는 일본인들이 담당하고 있었다. 그 선박이 필요로 하는 물품들을 납품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동문 선후배들이 적극적으로 밀어주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일본인들이 신용과 서비스 정신에 뛰어났기 때문에 그들보다 더 잘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곧 사업체를 만들어 아내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전념하게 했고 나는 직장을 다니면서 퇴근 후에 열심히 후원을 했다.
1-2년 정도 지나자 우리 부부의 열과 성의가 결실을 보았는지 업무가 점점 많아져 아내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20여년 다니던 직장에 사직원을 내고 본격적으로 무역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20여년 넘도록 회사를 운영했다. 항상 믿음으로 신용을 지켰고 서비스를 철저히 했기 때문에 활발하게 유지되었다.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자 또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초창기 캐나다에 정착한 한국인의 대열에 들어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나는 한국 교민을 위한 봉사에 전심을 쏟았다. 밴쿠버에 한국어학교를 만드는데 참여했고, 80년대에는 한인 무역인 협회를 만들었으며 한인 로타리 클럽을 결성했다. 90년대에는 청소년봉사센터에도 관여했으며 그 외에 한인을 위한 정착과 후원 사업에 적극적으로 봉사를 하였다.
1980년대 말 한국에서 이주하는 교민이 늘어갔지만 정착을 위한 봉사단체는 한인회화 노인회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내가 속한 한인 로타리 클럽이 그 역할을 일부 담당할 수 있었다. 밴쿠버지역에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해나가는 회원들이 60여명이나 되었는데 회원들의 대부분은 소규모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4-50대 남자들이며 이들은 친교활동에 적극적이었고 한인들이 주도했던 문화행사나 사업에 경제적으로 지원해주었으며 나아가 타민족이 하는 행사나 봉사단체에도 후원을 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클럽의 자금력이었다. 경제적으로 후원을 하려면 기금이 있어야 하는데 회원들에게 찬조금을 할당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클럽 모임에 참석해주고 뜻만 합친다는 것만으로도 그 모임이 성공한 것인데 여유자금이 별로 없는 이민생활에 물질적인 봉사를 수시로 요구한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었다.
자금조달을 위해 펀드레이징(Fundraising)을 시작했다. 이를 위한 여러 종류의 행사와 사업을 구상했다. 초기에 기념비 건립기금 역시 이렇게 시작되었다. 참전 기념비를 세울 장소는 버나비시의 센트럴 파크로 정해졌다. 교통이 좋고 많은 사람의 왕래가 있는 곳에 참전비를 세울 수 있다는 것이 큰 행운이었다. 자금조달을 위해서 연방정부와 한국정부의 보훈처 그리고 BC 주정부에 건립기금을 요청했다.
이제 남아 있는 과제는 조형물 제작과 이에 필요한 설비비용이었다. 그리고 첫 출발부터 이 사업을 위해 적극적으로 시의회를 주도하며 건립비 사용 부지를 제공한 데렉 코리건 버나비시장(Derrek Corrigan Burnaby Mayor)과 시의원들에게 이 지면을 통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준공당시의 사업과정을 살펴보면 일차적으로 설비비용의 예산 금액이 US $31만 불 -34만 불로 책정되었다. 이 예산에 조형물 설계와 한국에서 제작해야할 작품, 기초공사 및 Landscape, 기타비용과 홍보비가 포함되었다. 수차적인 진행에 따라 한인 신문에 조각가와 설비회사 선발 광고를 실어 조각가는 공모자중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작가를 선발해 작품의 의도를 위해했고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쳤고, 설비사에는 Maranatha Architecture회사를 선발 하여 부지의 정지작업을 위하여 Ground breaking Ceremony를 하고 기초 작업과 공원조성에 박차를 가했다. 따라서 조형물제작은 한국의 조각가 조현극(서울 산업대학 조각과)교수가 담당하였는데 수시로 진행과정을 점검하며 제작에 차질 없도록 서울에 가서 직접 방문해 검수하고 보관을 의뢰하였다. 그리고 버나비 시의회와 재향군인회 임원회에서 건립비 조형물의 이름을 ‘평화의 사도’로 명명하게 되었다. 나는 준비과정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한국과 캐나다의 보훈처와 여러 기관 단체들에 후원을 요청하며 캐나다 참전용사회와 함께 범 교민적인 모금운동을 전개하였다.
모금운동은 많은 교민들, 교민 기업들, 캐나다 주, 연방정부, 대한민국보훈처와 참전용사회 등 여러 곳에서 모금에 참여해 주었으며 또한 이 목적을 위해서 모든 임원들이 최선의 노력을 다 하여 조형물인 평화의 사도를 세우는데 전력했다.
시작의 기초를 세워 놓은 후에 나의 재향군인 회장 임기는 만료되었으며 차기 건립위원장으로 밴쿠버 한인장학회 회장을 지낸 채승기 씨가 추대되어 건립비를 담당해 이 사업은 차질 없이 2008년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되었고 기념비 ‘평화의 사도’는 성공적으로 완공되었다. 이에 참여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이 평화의 사도 기념비가 한카 교역의 징검다리이며 캐나다의 관문인 밴쿠버에 영원히 새겨진 이정표로 한인사회와 캐나다인들에게 영원한 기념장소로 남겨졌음을 확신하고 있다. 이 참전비 앞에서 캐나다에 사는 시민들이 현충일(리멤버런스 데이)에 또는 기념일에 모여 가슴에 양귀비꽃(Poppy)을 달고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숨져간 모든 영혼들에게 감사묵념을 드리는 고귀한 장소가 되었음을 한인의 한명으로서 감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