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스웨덴에 유학 가서 상당히 오래 그곳에서 살았다.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그렇게 해외 생활을 시작했다. 어렵다는 스웨덴어도 살아가는데 지장 없을 정도로 구사했다. 친구들도 사귀고 그림처럼 아름다운 스칸디나비아의 풍경도 즐기면서 아쉬울 것 없이 행복했다. 스웨덴은 내 젊은 날의 로망이다.
스웨덴에 살 때 나이든 시댁 식구들을 만나면 <스페인 독감>이라는 말을 가끔 듣곤 했다. 당시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었지만. 그들의 말에 의하면 스페인 독감이 창궐하던 1918년대에 북유럽에서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런데 시댁 식구들 중에 사망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 그들 대화의 요지였다.
결국 가문을 자랑하기 위한 대화였다. 가족 중에는 군인, 교수도 있었고 성직자도 배출한 명문 가문이기 때문에 스페인 독감이 범접하지 못했다고 얘기했다.
지난 한 해는 온통 코로나바이러스로 힘들었다. 세계적으로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8천 500만 명이 넘고, 사망자는 180만이 넘는다. 청정국가 캐나다도 60만 명 감염에 사망자가 1만5천명에 육박하고 있다. 미국은 더욱 심각하다. 2천만 명 감염에 사망자 수는 35만 명을 이미 지났다.
어디를 가도 코로나바이러스 얘기이고, 신문이나 방송에서 연일 새로운 소식들을 내놓고 있다. 세계적인 팬데믹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어떤 지인이 스페인 독감을 언급했다. 젊을 때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들은 얘기가 생각났다. 스페인 독감이 아무리 심했어도 지금의 코로나바이러스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재 인류가 당면한 바이러스는 역사상 가장 무서운 팬데믹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록에 의하면 스페인 독감은 1918년부터 1920년까지 유럽을 중심으로 크게 확산되었다.
당시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전 유럽이 전쟁을 하고 있던 시대였다. 전시였기 때문에 유럽 국가들은 언론 통제를 받아서 독감의 발병이나 진행 상태를 보도하지 못했다.
스페인은 당시 중립국으로 전쟁에서 한 발 물러나 있었다. 주로 스페인 언론들이 상세하게 보도했다. 그래서 스페인 독감이라고 불렀다. 스페인 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A (HIN1)가 병원균이다.
당시 사망한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확실히 아는 사람은 없다. 적게 잡으면 1천700만 명이고 크게 잡으면 5천만 명이 될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당시 일본 지배아래 있던 한반도에서도 무오년 독감 또는 서반아 감기 등으로 불렀던 괴질이 창궐했다. 740만 명이 감염되어 14만 명이 사망했다. 스페인 독감은 시베리아 횡단기차를 타고 유럽에서 병균이 전파되었다.
또한 서양과 교류가 빈번했던 일본을 통해 유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기록은 당시 환자들을 치료했던 선교사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의 학술 보고에 나와 있다. 스코필드 박사는 토론토 대학 출신으로 평생 한국에서 헌신한 민족의 은인이다.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의 글에 “해 아래 새 것이 없나니”라고 적혀 있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우리가 새 것이라 하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세계가 고통을 받고 있지만 예전에 스페인 독감은 더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대유행은 인류가 당한 최초의 괴질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해 아래는 새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 당시 스페인 독감을 극복했듯이 현재의 코로나도 결국 사라질 것이다. 역사가 보여주는 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