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매일 되풀이되는 일상 생활에 단조로움과 따분함을 느낀다. 도처에 소일거리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널려 있어도 쉽게 마음이 내키지 않거나 정말로 시간이 없어서 또는 기타 여러 요인에 의해 거부를 하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 요즘은 오히려 그런 감정을 느낄 겨를이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을 행복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바쁜 것이 왜 행복한 것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고독으로 철저히 고통 받는 현 세태에서 오히려 바쁜 것이 행복의 조건으로 등장할 수도 있다. 행복의 조건은 모든 것이 굳이 완벽해야 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길을 걷다가도 도심에 피어난 한 송이 꽃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매일 우리는 행복할 수 만은 없다. 다만 누구든 행복하기를 꿈꾸며 열심히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아직까지 지구에는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더 많다는 현실이 반가울 따름이다. 어린 사람이건 나이든 사람이건 현실을 잠시 벗어나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면 되풀이되는 현실의 따분했던 감정에 새로운 활력을 줄 수 있다. 나 또한 한국어를 주말마다 가르치면서 일상의 따분함에서 탈피하고 싶었다. 마침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때인지라 저물어가는 한 해를 마무리하며 종강 파티 겸 요리 강습을 개최하는 것은 어떨까 싶었다.
오래전에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어렵게 획득하였는데 제대로 써먹을 기회가 찾아왔다.   무엇보다도 학생들과의 친목을 도모하는데 쓰인다 생각하니 더 없이 기분이 좋았다. 전문가로부터 한국 음식에 대해 배우고 필기시험을 보고 합격하기 어렵다는 실기시험을 손을 덜덜 떨어가며 몇 시간 동안 치러야 했던 당시의 스트레스가 모두 날아가는 듯 했다. 물론 학생들에게 한국 음식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굳이 자격증을 갖춰야 할 이유는 없었다. 전문 조리사가 아니어도 좋았고 맛없는 요리일지언정 새로운 음식과 문화를 즐기는 시간을 갖는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금상첨화로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학생들은 내게 더 없는 경외심을 나타내었다. 나의 실력을 맛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괜시리 흥에 겨워 미리부터 즐거워하였다. 한국요리 강습은 학생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얻으며 성황리에 기획되었다. 아이들은 한국어보다 한국 음식에 대한 질문을 더 많이 해댔다. 그들의 의견을 적극 받아들여 한국음식 중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얻은 김밥과 떡볶이를 만들기로 하였다. 떡볶이는 내가 만들기로 하고 학생들은 김밥을 직접 만드는 체험을 갖기로 했다.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 줄 안다면 적어도 그 사람은 앞으로 험난한 인생살이의 고비에서 직접 그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스스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또한 그 음식에 쓰이는 한국어는 절대 잊어버리는 일은 없을 듯싶었다. 학생들에게 한 가지씩의 재료를 가져오라 하였다. 환하게 웃으며 재료를 고르는 얼굴들이 마냥 천진난만했다.  드디어 종강파티 겸 한국요리 강습 날이었다. 간밤에 엄청난 눈이 쌓여 내가 사는 곳은 온통 눈으로 뒤덮인 겨울왕국이 되어 버렸다. 추운 날이기는 해도 햇빛이 쨍하고 빛나는 맑은 날이었다. 나는 이렇게 청명한 겨울날을 참으로 좋아한다. 내 안에 고인 좋지 않은 감정의 찌꺼기가 이 맑음에 모두 씻겨 나가는 것만 같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하얗고 눈부셨다. 너무나 맑고 푸른 하늘이 머리 위에 드리워져 있었다. 백 년 넘은 소나무의 아름드리 가지들이 켜켜이 쌓인 눈으로 인해 그 살아온 세월의 육중한 무게와 더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비장한 아름다움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사람이 정녕 자연이 될 수는 없을진대 그래도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잠시나마 인간의 모습을 버리고 풀 한 포기, 움직일 수 없는 바위라도 좋으니 자연의 한 귀퉁이 모습이 되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그 태생 자체로 순수한 감동을 안겨준다. 분명 지구라는 별의 아름다움은 자연으로 인해서 빛을 발하는 것인가 보았다. 만약 지구라는 별에 탐욕스런 인간으로만 바글거린다면 그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 심장이 멈춰버릴 정도로 아름다운 겨울 아침에 나의 학생들을 위하여 재료를 준비하고 요리 강습을 할 생각에 가슴이 벅차 오르고 희열이 느껴졌다. 이 같은 시간을 내 생애에 얼마나 더 가질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나 주어지는 시간만큼은 최선을 다하여 정열적으로 마무리를 하자는 것이 나의 지론이었다.
드디어 모든 전교생들이 갖가지 자신에게 할당된 재료들을 가지고 모였다. 나의 학생들은 모두가 캐나디언으로 대학생이 둘에 고교생이 하나, 초등생이 한 명이었다. 모두들 상기된 얼굴에 기대가 가득했다. 김밥을 만드는 방법을 차례대로 설명해주자 김발을 펼치고 김 위에 초밥을 평평하게 깔았다. 처음에는 모든 재료를 다 넣어 만들더니 시간이 지나자 자신이 싫어하는 재료들은 골라내 버리고 저마다 좋아하는 재료를 넣어 김밥을 만들었다. 믿음이는 밥을 너무 많이 넣어 엄청 뚱뚱한 김밥을 만들어 썰지 않은 채로 두 손으로 들고 먹었다. 나리는 신중하게 재료의 양을 조절하여 원하는 대로 조그만 크기로 만들었다. 지우는 만들다 실패하여 나의 도움으로 만든 김밥을 먹으며 맛있다고 감탄하고 두 번째 김밥을 만들어 성공하였다. 나는 아이들을 위하여 떡볶이를 만들었다. 당면 사리를 넣어 아이들에게 먹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알맞게 익은 배추김치도 내놓았다. 김치를 보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덩치가 크고 먹성 좋은 현우는 삼인 분의 김밥을 먹고 떡볶이를 두 그릇이나 비웠다.
어느 누군가는 말했다. 살기 위해 먹으면 안 되는 것이고 먹기 위해 살아야 한다고. 나의 학생들이 적어도 오늘만큼은 맛난 음식을 먹으며 세상살이에 지친 마음을 위로 받기를 바랬다, 어릴 적 아플 때 학교에 가지 않고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으며 누워서 하루 종일 뒹굴 거리던 때처럼.

문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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