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유성 캐나다재향군인회 서부지회 초대회장의 환송예배가 7일 오전 10시 30분 밴쿠버영광교회(목사 노은성)에서 열렸다. 노은성 목사는 “늘 대접하는 삶을 사셨던 고 이 장로님은 거동이 불편하셨던 지난 10여년 동안에도 여전히 기도하고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셨다”라며 그리움을 전했다. 이우석 6.25참전유공자회장은 “참전 동기로 봉사의 생을 살아온 고인이 자랑스럽고 천국에서 평온하길 바란다”라고 했다. 예배 후 오션 뷰 장지로 이동해 하관예배를 했다. 고(枯) 이유성 장로는 1925년 3월 평북 용천 출생으로 육군사관학교(육사 9기)를 졸업했다. 1967년 육군대령으로 예편하고 1971년 밴쿠버로 이민 왔다. 1998년 캐나다재향군인회 서부지회 초대회장, 밴쿠버한인신용조합 창립 이사 및 이사장, 고 반병섭 목사의 시비건립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활발한 봉사활동을 했다. 포상으로 금성화랑 무공훈장 및 방위 포장, 국민훈장 독백장, 국방부장관 표창장, 대한민국재향군회 향군대회장 수여 받았다.

 

이유성 장로님이 남기고 간 흔적들 (조사)

지금까지 저는 장로님과 이런 대화를 수 없이 나누었습니다. 30여년간을 함께 일했으니까요. 장로님은 매력 있는 중 저음 으로 이렇게 대답하셨지요 “아, 이회장” 그런데, 이제 아무리 불러도 대답을 들을 수 없으니 허전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얼마전 이관우 동지와 함께 찾아 뵈었을때는 건강해 보이셨는데 갑자기 작별인사도 없이 떠나셨습니다. 장로님, 천국이 그렇게 좋습니까? 저는 지금 좀 당혹스럽습니다.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해서요. 장로님을 이 땅에서는 다시 뵐 수 없어 마음이 아프면서도 장로님이 늘 사모하던 천국에 가셨으니 위로를 받습니다. 오랫동안 병석에서 고생하셨는데 이제 아름다운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계시니 알마나 좋습니까. 또 그곳에서 이순경권사님도 만나고 친하게 지내시던 반병섭 목사님과 조영택 목사님, 군 동기이신 전형묵 대령과도 다시 만나니 반가우실거구요. 그리고 장로님은 이땅에서 96년을 사시며 천수를 누리셨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호상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장로님이 무척 부럽습니다.
장로님, 옛날 생각이 납니다. 1986년 4월 밴쿠버로 이민 온 저는 바로 영광교회로 찾아 갔었지요. 서울에 있는 친구가 조영택 목사님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 때 이 장로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이 만남이 제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인연은 하늘이 만들고 관계는 사람이 만든다고 했습니다. 그후 저는 이장로님과 함께 신앙생활과 봉사활동과 사회생활을 하면서 장로님은 제 멘토가 되셨습니다. 신실한 믿음과 온화한 성품에 6.25전쟁에서 함께 사선을 넘은 참전 동지여서 더욱 정감이 갔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알게 된 것은 이장로님은 봉사의 달인이요 창설의 배테랑이라는 것이였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이 시간 이유성 장로님의 흔적을 회고해 보려고 합니다. 그 중에서 첫째는 영광교회를 창설하고 자체교회를 갖게된 일입니다. 장로님은 1984년 영광교회 창립위원회 회장을 맡으셨고 , 91년에는 영광교회 건축위원회 위원장을 역임 하면서 그 일을 해냈습니다. 그 당시 김철환 목사님을 중심으로 전교인이 하나가 되어 기도하고 헌금하고 보수하고 봉사를 했든 일은 지금도 큰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장로님은1996년도에 밴쿠버에서 최초로 재향군인회를 창설하셨고 초대 회장 으로 3년을 봉사하시는 동안 창립초기의 기반을 다져 놓으셨지요. 당시 저는 해병대 부회장으로, 육군에 정용우, 해군에 백린기, 공군에 김경환 부회장과 함께 봉사를 했던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때 김동빈 장군과 이강주 동지가 함께 수고해 주었지요. 오늘 날 향군은 동포사회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 여파는2007년7월에 완공한 센추럴 팍에 세워진 한국전 기념탑, 자유의 여신상 건립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때도 이장로님은 초대 건립위원장을 맡으셨지요. 당시 그 실무를 맡은 분이 바로 신양준 제3대 회장입니다. 저는 센추럴 팍에서 기념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두분의 업적을 기리며 감사한 마음을 갖습니다. 이 자유의 여신상은 앞으로 수백년 그곳에서 장로님이 그토록 사랑했던 조국 대한민국을 지켜 주리라 믿습니다. 장로님은 2008년 11월에 창립된6.25참전유공자회 창설에도 참여해 주셨습니다. 작고하신 김일수 제 2대 회장이 함께 했지요. 오늘 날 6.25참전유공자회는 동포사회에서 가장 모범적인 단체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젠 그들도 평균연령이 91세가 됐는데 그들은 아직도 그렇게 늙지 않았다고 생강합니다.
월목회는 1982년에 창설이 됐습니다. 김능순 회장과 황정은 장로와 함께 월목회를 창설하신 이 장로님은 그후 15년간 부킹을 맡아서 매주 두번 씩 7.8개 팀을 부킹을해 주셨지요. 이 일은 초인적인 작업이었습니다. 장로님은 참으로 부킹의 명수였습니다. 덕분에 월목회는지금 4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또한 평통회장과 신용조합 이사장을 역임하셨고 회계사로 또 가장으로도 모범을 보여주셨지요. 그리고 세 아들을 훌륭하게 키우셨습니다. 그 형제들은 오랫동안 아버지의 병환을 극진히 돌보며 효도를 했습니다. 그 유기족들 위에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시기를 빕니다.
이장로님, 장로님은 이 땅을 떠났지만 이 흔적들은 밴쿠버역사에 기록되어 이유성이라는 이름과 함께 오래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저는 한사람이 쌓은 업적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과 행복을 안겨 주는 것을 보며 놀랍니다. 그것은 장로님의 봉사정신과 신실한 신앙과 오랫동안 군에서 익힌 책임감과 리더쉽, 그리고 나보다 남을 위해 사셨던 장로님의 고귀한 품성에서 연유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또한 이장로님은 6.25전쟁 영웅이며 애국자십니다. 중공군과의 백병전에서 위기일발로 살아 남으셨지요. 장로님의 유니폼에는 금성화랑 무공훈장이 빛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장로님을 좋아했고 존경했으며 닮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따르지 못했지요. 장로님은 언재나 한발짝 앞에 게셨습니다. 그런데요, 한가지는 제가 앞선것이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회원명부에는 제가 장로님 앞에 있습니다. 이름 덕분이지요. 또 있습니다. 이장로님과 저는 장신은 아니지만 키가 비슷합니다. 그런데 사진에서 보면 제가 더 커보입니다. 그 비결은 사진을 찍을 때 뒤끔치를 살짝 들어 올리는 겁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장로님은 작은 거인이었습니다.

시편91편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히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