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참전유공자회 장석제 고문의 장례식이 12일 Valley view funeral home(써리)에서 거행되었다. 이 날 그레이스 교회 주관으로 6.25참전유공자회 회장으로 진행되었으며 유공자회 회원들과 명예회원들이 참석해 애도를 표했다. 고(故) 장석제 회원은 3일 향년 9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1931년 출생이며 1995년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와 유공자회 창립 이래 지난 14년간 재무, 총무, 부회장, 회장대행, 자문위원 및 고문으로 활동했다.

 

장석제 동지에게
삼가 고 장석제 동지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슬픔에 잠겨있는 유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장석제 동지, 오늘 이곳에 조객과 함께 평소에 장 동지께서 아끼고 사랑하든 전우들과 명예회원들이 자리를 같이 했습니다. 70여년 전 북괴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장동지와 함께 목슴 바쳐 싸웠던 전우들입니다. 장동지의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참전용사로써의 명예를 존중하며 우리들이할 수 있는 최고의 예우로 장동지의 천국행을 빛내 드리고자 합니다.

지난 2월3일 아침 저는 서정길 부회장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장석제 고문님이 돌아가셨답니다” 저는 할말을 잃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습니다. 아니, 어제 병원에 입원했다는 연락을 받고 오늘은 문병을 가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부음이라니. 저는 망연자실했습니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장형, 그렇게 서둘러야할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습니까?
주님을 빨리 보고 싶었나요? 뒤에 남은 우리들의 마음을 혜아려 보셨습니까?
지금 우리 모두가 허탈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하루만, 단 하루만 더 기다려 주었어도 만날수 있었는데 너무도 아쉽습니다. 그렇잖습니까? 우리들의 우정은 세상에 흔한 그런 친구 사이가 아니였잖아요. 우리는 6.25전쟁 때 북한 공산군과 피 흘려 싸운 전우입니다. 요행이 살아남아 지금까지 살아왔지만 우리들의 많은 전우들이 스무살 안팎의 나이에 적의 총탄으로 죽어갔습니다. 그래서 더욱 아쉽습니다.
그 뿐만이 안닙니다. 우리는 고국을 떠나 이역만리 캐나다 땅, 그것도 밴쿠버에서 다시 만나 20여년간 우정을 나누어 왔으니 특별한 인연이지요. 인연은 하늘이 만들고 관계는 사람이 민든다고 했습니다. 제가 장 동지를 처음 만난것은 20 여년 전 단풍회를 통해 버나비 골프장에서였습니다. 그때 저는 장석제씨를 보고 한눈에 반했습니다. 큰 키에 수려한 외모에다 매너도 좋고 중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에다 골프까지 잘 치니 그렇수 밖에요. 그뿐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명문 경기중학교를 거쳐 연세대까지 나오셨다니요, 저는 놀라울뿐이였습니다. 저는 그때 생각했습니다. “아하, 이사람이 바로 금수저구나” 라고요. 거기다 우리는 동갑이었고 6.25참전 전우였습니다. 그후 저는 단풍회에 가는 일이 더욱 즐거워졌습니다.
우리들의 특별한 관계는 그후에도 이어졌지요. 1998년 11월14일 밴쿠버에 대한민국 6.25참전유공자회 캐나다 서부지회가 창립됐습니다. 어찌하다 저는 초대회장을 맡았습니다. 부회장은 김일수 씨였고요. 임원구성으로 고심하던 차에 김일수 부회장의 추천으로 장석제씨를 재무담당 임원으로 영입을 했습니다. 저는 그때 마냥 신이 났습니다. 내가 좋아하던 분과 함께 일하게 됐으니까요. 총무는 배영수씨가 맡아 우리임원들은 약속했습니다. 우리 힘을 합쳐 좋은 단체 한번 만들어보자. 그리고 좋은 세상도 만들어가자. 우리는 절대 싸우지 말자 하고요.
우리들은 매주 월요일 회관에서 만났습니다. 친교도하고 행사도 하고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주중에 행사가 있으면 또 만나지요. 마지막 월요일은 합동 생일잔치를 엽니다. 이런 일을 우리 명예회원들이 도와 주었습니다.

장 석제 재무는 정말 일을 잘 했습니다. 그럴수 밖에요. 명문 경기중학에 연세대 상학과 출신에다 이름 있는 일류회사에서 중역으로 일한 경력자였으니까요. 2년 간 재정업무기반을 닦아 놓은 후 총무직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수년 후 부회장으로 승진했으며 김일수 회장의 돌연한 서거로 회장대행직을 맡기도 하고 자문위원과 고문직까지 맡게 됨으로써 우리 유공자회의 전체 직종을 두루 두루 거쳤습니다. 14년간 계속해서요. 그 결과 오늘 날 우리 유공자회는 자타가 인정하는 모범적인 단체로 성장했습니다. 이것이 다 장동지의 활약 덕분입니다.

그런데 장석제 동지의 그 역량은 어데서 나왔을까요. 다름 아니라 장동지의 인격과 인품이지요. 그는 참으로 온화한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절대로 음성을 높히거나 화를 내는 일이 없으며 남을 비난하거나 욕을 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랑도 안합니다. 김일수 제2대회장 때의 일입니다. 김회장은 성격도 급하고 말도 좀 험하게 하는 편인데 간혹 그 정도를 넘어서도 장석제씨는 절대로 맞서지 않았습니다. 그져 웃고 말지요. 저 같으면 이렇게 말했을겁니다. “나 안해, 썅”

장석재씨, 당신을 정말로 존경합니다. 당신은 진정한 신사이며 거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소신을 가지고 일하는 유능한 일꾼이였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러한 장동지를 이세상에서 다시 볼수 없으니 허전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매주 월요일마다 사무실에서 만나던 일도 추억으로 남습니다. 장동지가 항상 앉았던 그 자리가 너무도 허전해 보입니다. 이 공허한 마음을 어떻게 메꾸어야 할는지요. 그럴 때는 장동지가 잘 불렀던 노래를 부르렵니다. 노래를 참 좋아하고 가수 못지 않게 잘 불렀지요. 박일남의 갈대의 순정을 좋아했고요.
그런 와중에 우리들에게 위안이 되는 일이 있습니다. 모두들 말합니다. 호상이라고요. 그렇잖습니까. 90이 넘게 장수를 누리셨고 좋은 일 많이 하셨고 자녀들을 잘 두셨으니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다시 볼수 없어 아쉽지만 우리는 조만간 천국에서 다시 만나 그 멋진 우정을 나눌수 있을테니까요. 김일수 회장에게 안부 전해 주십시오. 그리고 한번 물어봐 주세요. 그 급한 성질 좀 고쳤느냐고요. 그리고 말해요. 나 여기서는 절대로 안 참는다 라고 말입니다.
장형, 제가 여기 장 고문님의 명함을 가지고 왔습니다. 천국 가시는 길에 선물로 드립니다. 가셔서 서용해 주십시요. 우리유공자회도 널리 알리시고요.
존경하는 장석제 동지, 이제 작별의 시간입니다. 잘 가세요. 그리고 우리 다시 만날때까지 주님과 함께 편히 계십시오. 당신을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2022.2. 12 이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