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캐나다로 공부하러 오겠다는 계획을 짤 당시 내가 캐나다에 대해 아는 정보는 전무했다. 1월에 갈 예정이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출국 시기가 미뤄지고, 한국 친구들이 고등학교 진학을 하여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초조했다. 나의 선택으로 결정된 캐나다행은 시작부터 예정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그 당시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앞으로의 일은 또 어떻게 될 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렇게 자칫하면 캐나다에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안고 영어 공부를 한지 7개월이 지나서야 캐나다 당국의 코로나 규제가 조금 완화되어 마침내 나는 캐나다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처음으로 가족들 없이 홀로 비행기를 타야 했다. 모든 것을 홀로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과 언어가 통하지 않는 막막함, 아는 이 하나 없는 이 곳에서 느낀 첫 감정은 새로운 곳이라는 두근거림과 막연한 두려움이었다. 이제는 나를 책임져 줄 사람이 아무도 없고 모든 것을 내가 홀로 감당하고 혼자서 해내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17년 동안 비바람을 막아주던 튼튼한 지붕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나를 두렵게 만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을 굳게 먹을 수 있게 해주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돌아갈 곳이 있었고 힘들면 기댈 가족들이 늘 곁에 있었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오로지 나 혼자였다. 2년 동안 살며 힘든 순간도 많았다. 대부분의 유학생들이 그렇듯 인종차별을 겪었고 언어가 유창하지 않아 어려움도 있었으며 외로웠다. 하지만 힘든 일이 있어도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힘들다는 이유로 한국에 돌아간다는 것은 마치 내가 실패해서 돌아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족들의 기대와 내 자존심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버티자는 생각이었고 그렇게 점차 시간이 흘렀다. 캐나다로 온 후 첫 두 달은 다운타운에 있는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유학원을 다녔다. 하루하루 지나가며 참 많은 것을 경험했고 즐거운 추억도 많이 만들었다. 전세계에서 온 유학생들을 만나고 그들과 대화하며 그들의 언어, 문화를 배울 수 있었고 한국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에게 한국어와 한국의 문화를 알려주었다. 두 달 동안 값진 인연도 만나고 정말 많은 것을 경험했다. 그리고 조금씩 캐나다에 적응해 갈 때 즈음 드디어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캐나다는 다민족 국가이기 때문에 다양한 인종이 살고 있지만 내가 다니는 학교에는 캐네디언 밖에 없었다. 마치 내가 하이틴 드라마에 들어온 듯했다. 그리고 과연 내가 이 친구들과 어울리며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가 한창 심할 시기라 유학생 또한 많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친구를 어떻게 사귈지에 대한 걱정은 없었는데 이 곳에서는 가장 큰 문제점이 있었다. 바로 언어였다. 그래도 유학원 다니는 동안 영어에 익숙해지고 회화도 자연스러워졌지만 나와 같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친구들에게 영어를 쓰는 것과 영어가 모국어인 친구들 앞에서 영어를 쓰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다행히 좋은 친구들을 만나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우연히 같은 수업에 들어온 한국인을 만나게 되며 학교에 한국인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 나는 얼른 영어를 익히고 영어 실력을 키우는 게 최우선이었기에 한국 친구들과는 딱히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지만 이곳에서 한국인들하고만 친하게 지내는 한국인들이 좋게 보이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모두들 이 먼 곳까지 온 것에는 목표가 있을 테고 영어 실력이 향상되길 바랄 것인데 왜 저들은 노력하지 않고 편한 곳에만 있으려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한국인들과 친해지면 문화도 같고 언어도 같기 때문에 편하고 재미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 목적은 캐나다에서 한국 친구를 만들기 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유학생이기에 서로에게 공감하며 힘든 시기에 위로받을 수 있었고 결국 그렇게 나는 한국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처음 학교를 다녔을 때 어려운 난이도의 게임에서 퀘스트를 하나 하나씩 깨는 느낌이었다. 하루하루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즐거웠고 또 두근거렸다. 그렇게 이제 조금 익숙해져 할 때쯤 사건이 하나 일어났다. 영어 시간이었고 그 반에는 여자아이들이 나를 포함해 4명 정도밖에 없었다. 시끄러운 남자아이들이 많았다. 그 날은 선생님이 개인사정으로 학교에 오지 않았기에 보조 선생님이 들어오는 날이었다. 보조 선생님이었기에 그 친구가 그렇게 했다는 걸 나는 나중에 알았다. 당시 반에는 작은 징 모형이 서랍장 위에 있었고 그 서랍장 바로 옆에 내 자리가 있었다. 보조 선생님은 우리에게 학습지를 나눠주며 남은 시간 동안 그 학습지를 작성하라고 했다. 나는 학습지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남자아이가 내 옆자리에 있는 징 쪽으로 다가갔다. 나는 그것을 봤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다시 학습지에 눈을 돌렸는데, 뎅~ 징 치는 소리에 함께
“Welcome to China!”
나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당시 그리 큰 소리는 아니었고 징 주변에는 나 밖에 없었기에 아무도 듣지 못한 듯했다. 보조 선생님 또한 못 들은 거 같았다. 처음에는 내가 들은 것이 인종차별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당시 정말 얼어붙은 나는 아무 대응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못 들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는 것이 내 최선이었다.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한국인들만 있는 곳에서 살았기에 인종차별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 생각했고, 해외 여행을 갔을 때 겪었던 인종차별은 가족들이 모두 있었기에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갔다. 하지만 이곳에선 아니었다. 그렇게 아무 대응도 하지 못하고 내가 얼어 붙어있는 사이 수업은 끝났고 나는 서둘러 그 교실에서 나왔다. 벗어나고 싶었다. 무서웠고 불쾌했지만 무엇보다 나를 비참하게 한 것은 내가 그 당시 아무 대응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왜 내가 피부 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런 일을 겪어야 하고, 저들은 왜 피부가 좀 더 밝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이 곳에 섞이고 싶었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내 피부색으로 인한 차별이었다. 이들에게 나는 그저 피부색이 다른 이방인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최대한 그 사건을 잊으려고 했다. 정말 놀랐고 심장이 쿵, 쿵 뛰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잊으려 할 때마다 더욱 선명히 떠올랐다. 그 말, 그 아이의 표정, 징소리. 모든 게 끝없이 반복되었다. 나는 그 이후로 영어 교실이 무서웠다. 언제 또 그 아이가 그런 말을 할지 몰랐기에 항상 긴장하고 있었고 바짝 날이 서 있었다. 나와 웃고 떠드는 이 친구들도 결국 피부색으로 인해 ‘나’와 본인들은 다르다고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니 점점 숨이 막혀왔다.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부모님에게는 말할 수 없었다. 내가 느낀 것의 배로 상처받고 힘들어할 거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 보려고 날 이 곳에 보내주신 게 아닐텐데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결국 같은 학교의 한국인 친구들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때로는 나와 같은 일을 겪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때가 있다. 그들은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참 이기적이게도 나는 내가 힘들 때 내게 위로를 건내준 그들에게 마음을 열었다. 다른 한국인들이 왜 한국인들과 어울리는지 알 것 같았다.
그 이후 캐나다 친구들에게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사실은 이런 일이 있어서 너무 힘들었고, 너희들이 조금 멀게 느껴졌다고. 친구들은 나에게 공감해주었고 위로해주었다. 이게 당연한 반응이겠지만 나는 놀랐다. 나 또한 내 친구들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백인이기 때문에 인종차별은 겪어본 적도 없고 인종차별을 겪은 이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나는 어느새 내 친구들마저 의심했던 것이다. 이곳에 와서 의지하고 정말 많은 것을 공유한 친구들인데 그런 그들을 내가 의심했다는 사실이 미안했다. 먼 곳에서 온 나를 많이 배려해주고 캐나다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나를 위해 많은 것을 경험시켜 준 친구들인데 나는 정작 그들의 피부색 만으로 너희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 또한 피부색으로 인해 인종차별을 겪었음에도. 그렇게 나 또한 내 친구들에게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친구들과 함께 지내며 피부색은 사람을 사귀고 그들과 친해지는 데에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배웠다. 한국을 떠나와 이 곳 캐나다에서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을 만나고 어울리며 많은 추억을 쌓았다.
마트에 가면 빨간 사과와 초록색 사과를 볼 수 있다. 우리에게 빨간 사과가 더 익숙하다고 해서 초록색 사과가 사과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초록색 사과가 빨간 사과와 색이 다르다고 해서 그 본질이 사과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초록색 사과도 빨간 사과도 모두 같은 사과일 뿐이다. 이처럼 사람들도 서로 다른 것이지 어느 하나가 틀린 게 아니다. 사람들은 모두 다르고 피부색은 무수히 많은 차이점 중 하나일 뿐이다. 결코 피부색이 사람을 구별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만 살았던 내가 다문화 다인종 도시인 밴쿠버에서 살아가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느낀 것은 나와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이 아니고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은 다 다르고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다만 열린 마음으로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