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한인교회와 한인회 창립에 기여한 심선식, 김풍환 박사 인터뷰 그 두 번째”

 

김진아 홍보이사: 다음 세대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라든지, 남기고 싶은 말씀을 해주십시오.
심선식 박사: 캐나다에 이민하러 온 한국사람들이라면 캐나다 사람으로 좋은 시민이 되어야겠지요. 또 한국사람의 혈통을 이어받은 캐나다인 한국인으로서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지요.
김풍환 박사: 어디에 가든지, 어느 나라를 살든지, 좋은 시민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한인회 총회가 있다고 해서 가보면, 핏대를 올려가면서 한국에 대한 애국심을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러한 주장을 하는 분들의 캐나다에 올 때 목적이 한국에 대한 애국심에 불타서 왔는가? 그렇지 않고 개인사정으로 개인의 인생을 좀 개선시키고 싶어서 왔는가? 솔직하게 알아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여기와서 한국이 발전하고 부강해지는 것을 기뻐하는데, 여기에 와서 조국에 대한 애국심을 자랑하는 것도 좋지만, 캐나다에 왔으면 캐나다의 좋은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한편, 한국인으로서 한국 전체를 위해서 다른 민족으로부터 욕을 듣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 이런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김진아 홍보이사: 자녀분들에게 한국 문화나 한글을 가르치셨나요?
김풍환 박사: 우리가 처음 정착할 때는 그런 것이 없었어요. 자라면서 좀 더 바람직하게 배우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고. 저희들 스스로 한글학교에 찾아 간 적도 있었고, 손자 아이들도 ‘내가 코리안이다. 코리아에 대해 알아야겠다. 너희는 그것을 해야 한다’ 그렇게 시킨 적은 없어요. 자기들이 필요에 의해서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지요.

김진아 홍보이사: 부모가 억지로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뿌리를 찾아 가는 정신이 더 훌륭하네요.
김풍환 박사: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여기 이민 와서 사시지만, 아이들은 우리도 한국인이다(‘We are Korean too.’) 이렇게 말을 해요.
심선식 박사: 한글학교가 이 교회에서 처음 시작됐어요. 주일학교에서 한글을 가르치고 애국가를 부르고, 그러다가 한글학교를 창설해서 한글학교가 독립해서 나간 것입니다.

김진아 홍보이사: 당시 한글학교를 처음 만드신 분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심선식 박사: 내가 초대 교장 노릇을 했지요. 이름은 “한인 한글학교”, 1966년에 시작했어요. 영사관에 얘기해서 한글 교과서를 받아서 했지. 학생은 10명 정도였고. 제일 먼저 가르친 한글이 애국가 부르는 것이었어요. 애들이 좋아했어요. 우리 교회에서 약 1년인가 하다가 차차 외부로 독립해서 나갔습니다. 교회에서 한글학교를 시작했으니 ‘잘했다, 좋은 일을 했다’하고 칭찬해주는 것보다, ‘교회가 왜 한글학교를 만드느냐’ 하고 질투하고, 그래서 ‘한글학교는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하는 분위기도 있었어요.
김풍환 박사: 세계적으로 인구 대이동을 많이 한 민족이 중국인, 유대인을 꼽을 수 있어요. 그런데 그들은 특유한 차이가 있어요. 유대인들은 어디를 가든지 자기들의 민족성과 종교를 그대로 자자손손에게 물려줍니다. 중국사람들은 어디를 가든 그 나라 언어에 익숙하게 되어도 자기네들 중국어를 보존하는 것을 커다란 사명으로 압니다. 중국 이민자들을 보면 여전히 중국어를 많이 사용하고 잘 지키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중국인들과 유대인들의 큰 차이점은 유대인들은 이주를 하게 되면 그 나라, 그 지역의 언어를 수용해서 배우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예를 들어 여기 미국, 캐나다에 이주한 유대인들의 영어는 아주 유창하죠. 중국인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한국인들도 언어에 있어서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죠.

김진아 홍보이사: 마지막으로 앞으로 이 땅에서 살아갈 이민 후세대들과 한인사회 발전을 위해 한 말씀해주세요.
심선식 박사: 아, 이렇게 인터뷰할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캐나다에 이민 오시는 분들, 한국인으로 잘 사는 것 보다 주류사회와 더불어 함께, 소위 ‘코리안 캐나디언으로’ 잘 살아라! 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김풍환 박사: 한인 사회에 대해, 우리 한인 역사에 관해서 더 알고 싶으면 내가 몇 년 전에 에세이를 쓴 것이 있어요. 아마 교회에도 있을 것이고. 캐나다 연합교회 아카이브 사무실이 다운타운에 있습니다. 거기에 에세이가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압니다. 내가 쓴 것은 역사를 쓴 것은 아니고, 비밀문서도 아니고, 에세이니까. 거기서 복사본을 열람해보세요.
김진아 홍보이사: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분 모두 건강하고 활력 있게 사시는 모습을 보니 우리 이민 후세대가 본받을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한인사회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 충고와 조언을 아끼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한인 이민사의 첫 장을 연 두 분의 인터뷰는 여기서 끝을 낸다. 그러나 두 분이 쓴 에세이와 한인 신문사인터뷰 기사 등 내용을 통해 후세대들에게 전하고 싶은 내용을 보충하기로 한다.
지난 수십년간 이렇게 다양성을 띄고 하나의 성숙한 한인교포사회가 된 오늘날에 전 교포의 힘을 모으면, 한인사회의 발전에 걸맞은 범 교민 연합사업을 펼칠 수 있다. 그것은 한인 문화회관 건립사업이다. 현재의 밴쿠버 소재 한인회관과는 별도로 한인문화회관(Korean Cultural Centre)이 설립되면 (현재의 K-Culture 확산에 부응하는) 각종 비영리 문화단체들에 장소를 제공할 수 있다. 즉 교회, 신용조합, 한글학교, 도서실, 한인 신문사들, 무용단, 합창단, 각종 동창회, 식당, 미용실 등을 다양한 용도의 단체나 사업체가 한 건물에 입주한다면 우리는 중국사회나 일본사회에 못지 않은 한인 사회의 구심점을 시현할 수 있다. 나는 그런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기도한다. ‘범 한인 문화회관 건립 모금운동연합회’를 만들어 활발하고도 지속적인 모금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비결이라고 본다. 우선 최소 수백만불의 목돈을 모아야 한다. 때가 오면 현 한인회관을 매각하여 부채를 갚고 남은 돈으로 문화회관 기금에 기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용 발췌: ‘조국, 캐나다 그리고 나라사랑’ 6.25참전 유공자회 ‘나의 6.25 참전 및 이민수기’에 게재된 심선식 박사의 수필문)

이제는 ‘이문화선교(intercultural mission)’도 필요합니다. 어떤 이민사회이든 이민 1게대는 끼리끼리 잘 모입니다. 그러나 캐나다는 복합문화주의 사회(multicultural society)를 지향합니다. 우리도 이런 복합문화주의 사회에 뚫고 들어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여러 민족들과 어울려 함께 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문화선교는 타민족과 어울려 함께 잘 사는 것을 넘어 신앙으로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비록 앞장서 롤모델이 되는 것은 피하였지만 한인 연합교회의 이문화선교에 대해서 적극 지지해 왔습니다. 연합교회의 이문화선교를 위한 기금모금 달리기에 팔순의 나이에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문화와 피부색의 장벽이 없는 사회라면 그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오래 전에 테리팍스라는 청년이 불구의 몸으로 암연구기금을 모아 캐나다 횡단을 한 적이 있지요. 저는 그 모습을 TV로 봤습니다.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요. 그에 영감을 얻어 이문화 선교 기금모금 달리기를 제안했습니다. 우리도 이제는 한국인으로 세계인의 일원이 되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인용발췌: ‘여든, 8년간 쉬었던 달리기 대회에 나갑니다.’ 밴쿠버 조선 2010년 4월 16일자 김풍환 박사 인터뷰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