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여행을 다니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아내의 행동에서 내가 보인 겁니다.
부부가 오래 살면 닮는다고 하더니
얼굴만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아내가 아내를 보는 시간보다
내가 아내를 보는 시간이 많다는 건 알았지만
아내도 나를 보는 시간이 많았나 봅니다.

사람들이 어쩌면 그렇게 닮았냐고
형제 같다는 말을 했을 때도
할 말이 없어서 누구나 그 빈 공간을 채우고자
아무런 이유 없는 말을 하는 줄 알았는데
이런 말에도 이런 일리가 있다니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같이 사는 아내와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아들과 딸, 어머니와 아버지
우리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넘어서
친구, 친구들 자주 가는 가게의 아주머니 직
장의 동료, 동료 옆의 사람들도
아침저녁으로 지하철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그렇게 닮은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닮음을 주거나 닮음을 받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아,
나는 혼자 사는 게 아니었습니다.

나는 왕따로 사는 게 아니었습니다.
미워하는 사람도 무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흉보면서 배운다더니 모두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나는 길을 가다가도
일하다가 밥을 먹다가 자다가도,
시장에서 장을 보다가도
다른 사람의 얼굴에서 내가 보입니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내가 보입니다.
그 사람들도 다른 얼굴에서 자기 얼굴을 보겠죠?
나의 얼굴에서 그들의 얼굴이 보이겠죠?
내가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사람들도
내가 무시하거나 나를 무시하는 사람들도
눈 있는 사람들은 다 보겠지요?
보이겠지요?

돈이 없거나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도
권력이 있거나 잘 나가는 사람들도
불행하거나 행복한 사람, 누구나 그렇겠지요?
싫든 좋든 닮아가면서 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