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숫자와 싸워 온 30년 은행원 경력이 밴쿠버에서 어디 가지 못했다. 해서 10여년 이상을 밴쿠버에서도 세무회계업무에 종사하는 한편, 각 사회 및 예술 단체 등에서도 재무이사(Treasurer)로 봉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최근 40대 초반의 이민 1년차 부부를 만났었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IMF 졸업학번이었다. 취직이 되지 않아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겨우 중소기업체에 직장을 잡았는데, 경제는 점점 나빠지고 미래가 보이지 않아 할 수 없이 이민을 결정했다고 한다. 아직 젊으니 캐나다 드림을 이루어 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캐나다 현실도 이민자 젊은이들에게는 만만치 않다. 그저 위로랍시고 나는 ‘자식들에게는 이민이 가장 큰 선물이 될 것’이라고 했다.
비록 지금은 일식 집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으나 자식들에게 희망을 걸겠다고 하며, 내 한 마디가 큰 힘이 되었다고 했다. 나이 들어 가면서 말 한마디로 젊은이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나도 감사할 일이었다.
언뜻 1998년 봄의 모 대학 교정이 생각났다. 당시 IMF 경제위기 여파로 내가 다니던 직장이 문을 닫았다. 한창 중요한 일을 할 나이인40대 후반, 졸지에 나는 실업자가 된 것이다. 동 대학 외래교수였던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대학 강의를 나갔는데 한 여학생이 수업 후 면담을 요청했다. 교정 잔디밭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기업체들이 모두 구조조정에 들어가니 졸업반인데도 취직시험을 칠 수 없다고 하소연하면서 은행원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학생은 여전히 나를 은행 지점장으로 알고 있고, 지점장은 꽤 높은 사람이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내게 물어본 것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면 좋은 기회가 또 찾아올 것이라는 한마디 밖에는.
역시 최근 워크퍼밋(고용허가비자)으로 밴쿠버에 와서 일식당에서 일하는 20대 중반의 젊은이를 만난 적이 있다. 좋은 스폰서를 만나 영주권 신청을 하였으며 가을이면 영주권이 나올 것이라 기대된다고 했다. 그 나이에 어떻게 해외이주를 결심했느냐고 물었다. 군대 제대하고 나오니 ‘최저임금 상승’으로 종업원 급여가 높아져서 기업들이 채용을 줄여 도무지 갈 곳이 없어 모험을 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상황이 다른 경우도 있다. 30대 초반의 시민권자인 젊은이. 캐나다에서 태어나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편하단다. 부모의 말은 알아 듣는데 한국어로 대화는 불가능. 40년 전에 이민 온 부모가 먹고 살기 위해서 밤낮으로 일하는 바람에 한국어를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했을 뿐더러, 캐나다에서 살려면 한국친구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해서 전혀 한국어를 할 기회가 없었다. 대학졸업 후 다국적 회사에 취직, 열심히 일했는데 도무지 승진이 되지 않더라는 것. 늦게 입사한 후배를 백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기의 직속상사로 임명하는 바람에 기분이 상해서 사표 내고 나왔단다.
마침 한국 대기업이 북미주 영업망확보를 위해 현지인을 고용하는데 대우도 괜찮고 중견간부직을 주겠다고 해서 인터뷰를 했는데 떨어져 버렸다. 이유는 전혀 한국말을 못하니 한국의 본사와 지상사 사람들과 소통하기 힘들겠다는 것이었다.
한국은 이제 60,70년대 캐나다 한인이민 초창기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한국경제통계에 의하면 국가 GDP(Gross Domestic Product; 국내총생산)가 캐나다에 이어 11위이다. 1인당 GDP는 $31,346로서 세계 29위. 약 200여 세계국가들이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었다.
게다가 한류열풍으로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높아져, 한국과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예컨대 2018년 서울의 K대학에서 개최된 ‘세계외국인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는 55개국 출신 1,195명이 참가하여 한국말 실력을 겨루었다고 한다. 처음 대회를 시작한 1998년에는 11개국 56명이 참가했다고 하니 금석지감(今昔之感)이요, 상전벽해(桑田碧海)다.
그러나 여기서 만족할 수는 없다. 한국이 통일된다면 프랑스와 영국을 뛰어 넘는 거대한 경제국가가 되리라는 예측이 자주 나오고 있다. 우리는 그 시대를 대비해야 하고, 그 시대의 주역은 현재 20대, 30대가 될 것이다.
그래서 과거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던 소위 ‘7080(1970년, 1980년대에 20대, 30대였던 사람들)’세대가 이제는 또 다른 기적의 주역이 될 현재의 20대, 30대를 위하여 밴쿠버에서 청년모임을 시작한다. 유학생이던, 일시 방문자이던, 고용비자로 와서 일하고 있던, 영주권자나 시민권 자 이던 모두 한민족의 피를 타고난 젊은이다.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대고 미래를 위해 꿈을 키워 나간다면 캐나다의 한인사회는 물론, 한국을 위해서도 좋은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지금 밴쿠버 교민사회나 한국의 정치상황이 어지럽고 복잡하다고 개탄할 일만은 아니다. 해결방법은 청년이다. 청년이 진정한 답이다. 한국으로 되돌아 갈 젊은이는 캐나다에 친구를 만들고, 캐나다에 사는 청년은 한국에 친구를 만들면 상호 협력하여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
마침 늘 푸른 장년 회에서 시도하는 ‘차세대 한국학대학’ 프로그램을 재외동포재단과 밴쿠버 총영사관이 후원하기로 했다. ‘2030포럼’, ‘청년예술제’, ‘차세대 한국문화 홍보대사’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청년들 뿐 아니라 다민족 청년들과도 함께하여 이 지구촌을 더 희망차고, 평화롭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나가는데 그 취지를 두고 있다.
기성세대들이여. 우리는 비록 사라져 가지만, 젊은이들을 위해 열심히 밭을 갈고, 논을 내면 눈을 감을 때라도 흡족하지 않겠는가? 젊은이들이여.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아름다운 한인사회, 함께하는 내 조국, 한국을 위해 헌신하지 않겠는가? 그리하면 ‘서로 돕고, 함께 하는’ 한국인의 기상이 세계만방에 드높여지리라. 큰 꿈을 가지자. 미래를 위해. 오직 청년만이 가질 수 있는 큰 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