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삶이라는 이름은 어느 누구도 나에게 지어 준 적이 없었던 이름이다.
이 가난의 이름은 내가 스스로 이름지어 가슴팍에 붙이고 살았다. 25년전 멀리 이사를 오면 그 가난에서 벗어나질까해서 짐보따리를 배에 싣고 하늘꼭대기 머리에 이고 부산의 어느 구석 동네에서 캐나다 밴쿠버가 어느 쪽에 붙어있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살아야하는 방법은 더욱 모르면서 얼굴도 보지 못한 비행기 조종사의 비행에 4명의 식구 모두의 목숨을 아무런 의심없이 맡기고는 오늘 이날 여기까지 와 있다.
그 동안 살아오면서 나의 눈에 비춰진 세상의 가난들은 재물(돈) 에서의 가난 , 지식의 가난, 신분의 가난등이 있었다.누군가가 말했다. 바람 중에 가장 센 바람이 무어냐면 그건 돈 바람이라고 했다.
그런 것 같다. 돈의 힘은 가장 강력한 바람으로 태풍이 몰아칠때도 있다.
오늘은 재물의 가난에 대해 나누어볼까한다.
나의 삶에서의 가난의 요인은 나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 책임은 남편에게 있었고 그 적은 수입은 당연히 감사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리고 남편의 도박을 하는 습관이 오로지 가정형편을 어렵게하는 요인이라고 확정 지워놓고 살았다.
과연 그것만이 가난으로 끌고간 주역이었을까?
아니면 그 중에 내가 거들은 일은 무엇이었던가?
그 안에서 단지 남편의 문제만이 가난으로 이끌고간 삶의 전적인 책임만이 아닌 일이 더러 있었다. 그 일은 나 자신의 일이 투명하게 드러남을 알 수 있었고 이런 일들은 나 자신을 원망하고 비관하는 일이 아니고 또 자책도 아니며 그동안 나를 볼 수 없었던 닫혀진 마음이 열리고 있음을 감지하면서 누구든지 실수를 하고 잘못을 할수는 있지만 그 곳에서 고인물로 안주하지 않고 나의 실수와 잘못을 드러내고자 한다면 그것은 더이상 실수와 잘못으로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을 비판하지 않는 삶은 나 스스로를 보듬어 안아 줄 수 있는 일이고 그 범위는 인간관계의 새로운 면모를 갖출 수 있게도 되었다.
나에게 있어서 가난한 삶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무도 나에게 “넌 가난한 사람이다” 라고 말하지도 않았으며 무시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가난하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다. 참 큰 장벽이며 누가 이 큰 담을 어떻게 허물수 있을까 싶다.
답은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가난이란 것이 눈으로 보이는 것에 기준을 둘 수 없는 일이며 마음의 평가기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안다면 나는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민을 오기전에는 나의 가난을 이래저래 포장하고 살다가 더 이상 포장하고 만족한 척 하는 일이 싫중나게 되자 보따리 싸서 이름하여 이민 이라는 상품에 몸을 던지게 되었다.
그 가난의 연속은 700달러가 넘지 않는 렌트 하우스에 몸을 숨기고 살면서 좋은 차도 집도 없었으며 통장에 여유돈은 더욱 없었다. 하지만 그 시절이나 지금 물가가 천정부지로 오른 이 시점에서 볼때 지금은 모기지도 모두 갚은 밀리언의 집에 살고 자동차도 그 때보다 좋은차를 타고 은행에는 그리 빠듯하게 살지 않아도 될만큼 저축도 되어가고 있는데도 내가 부자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 이 조화 속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가난한 삶에 대한 생각의 습관에 익숙해져있고 애초에 불확실한 분별에 길들여져서 가난은 나쁜것 싫은것 하면서 생각이나 말로만 벗어나고 싶다고 하고 있지만 실상 알고 보면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반전은 잘 수긍하기 힘든 상황에 놓여 있지만 나의 경험은 한치도 빗나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생각과 말로만 가난한 삶이 싫다고 하면서 거기에 안주하려고만 하고 있는가?
잠시 동안은 입으로만 감사하다, 즐겁다 하고 살 수 있었다 .그런 말과 행동은 돌아설때의 그 공허함은 참 난감했다. 또한 그나마 지금의 삶이 유지되지 않을까봐 불안해하고 지금 이 시간을 사는데 힘들어하면서 즐기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 나 보다 나은 사람의 삶을 동경하고 그런쪽으로 눈을 돌리면 도처에 널려있는 다른 사람의 삶이 나보다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단지 생각 만으로…..
그러기에 아무리 많이 가져도 부자의 대열에는 함께 할 수 없기에 가난한 자의 이름에서 벗어날수 없다는 것이다.
가난한 자의 이름에는 특성이 있을까?
나의 삶은 끊임없이 비교하며 살아왔다.
내가 비교하고 시기하고 비판하는 삶을 살때 잘 살려는 노력은 하지않고 남 잘되는 꼴은 못 봐주고 다른 사람에 대한 원망과 걱정으로 시간을 메꾸고 살았었다. 그것은 마음이 병이들어 나타나는 증상이었고 그런 와중에 이민 온지 1년 6개월만에 늦둥이가 태어나고 일을 할 수 없게 되고 새로운 핑계거리가 생기게 되었다. 아이가 커서 혼자서도 등하교를 할 즈음에는 내 나이 이미 50대 중반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돈을 벌면 남편은 다시 노름을 하든지 카지노 출입을 할 것 같아 생계유지의 핑계로 남편을 묶어 놓고 싶은 의도도 깔려 있었다.
그렇다고 살림을 규모있게 산 것도 아니고 마음은 항상 어딘가 정착을 못하고 둥둥 떠 다니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난 돈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고 욕심이 없는 사람처럼 보일려고 위선을 떨었고 돈이 없는 이유를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몰아 갔으며 아이들에게도 가난의 위험신호만 심어준 일이 그 아이들의 삶이 얼마나 꼬이고 힘들어 하는 것을 보면서 아픔을 절절히 통감해 왔다. 지금은 나 자신과 남편, 자녀들에게 그 보상의 시간을 메꾸어 나가고 있다.
이런 일들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가난한 자의 이름에서 벗어날수 없었던 일이 있었다.
내가 비록 일선에서 돈벌이를 할 수 없었다고해도 할 수 있고 해야하는 일임에도 하지 않았기에 결정적인 낭패를 보고 그 가난을 오랫동안 끌고 왔던 것이 이런 부분이었다.
남편이 직장에서 돌아오면 거의 매일같이 직장에 대한 불평과 혼자서 일한다는 사실이 힘들다고 할때마다 난 들어주고 이해해 주지 못했다. 한마디면 해 주었으면 해결 날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그 시간을 그렇게 오랫동안 끌고 온 것은 나의 고집과 자만심임을 알게 되었다. 첫 단추가 잘못 채워진 상태에서의 삶이란 것이 또 남편이 직장 일에 매진하도록 용기를 주고 할 수 있다는 능력을 믿어주면서 응원해주지 못했으며 남편이 가정이나 직장에서 얼마나 소중하고 필요한 사람임을 말해주지 않고 살았다.
그러기에 장점보다는 단점의 꼬투리 잡는 일에 열중하면서 무시하고 무언의 행동으로 자극을 주면서 살았다는 것이다. 또한 결정장애를 갖고 있는 남편을 우습게만 보고 진정 그 사람의 아픔으로 봐주지 않았던 일이 있었다. 이 모든 일은 내가 가난한 사람이라는 이름을 가지는데 충분한 조건을 갖추게 될 수 있는 일이었다.
어제의 나의 삶과 오늘의 삶이 내일의 나의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난 지금도 내일로 가는 시간속에서 이런 삶으로 연결되어 살아가고 싶지 않기에 그것을 끊어내겠다고 선언하고 행동 할 수 있는 나에게 힘을 실어본다. 힘을 싣는다는 것은 먼저 나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 고백하는 것이고 이 자체가 보상이라는 것이며 자신의 마음을 그냥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보기만 할뿐이지 비판하고 원망하고 후회하고 들볶지 않고 변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가족들에게도 내 마음 즉 나의 고집, 고정관념 등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그리 거창하고 대단한 일이 아니더라도 상대방 그들의 일이 아닌 나의 일에만 집중 하면서…….고집과 고정관념은 침묵하기를 좋아한다. 그도 그럴것이 인생살이 자존심 대결구도가 삶을 좌자우지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것이다. 그럼에 있어서 나의 흠집을 들춰내어 침묵을 깬다는것이 쉽게 되는 일이 아닐수 있기에 이럴때 난 진실로 절박한 외마디 기도가 나오게 되었다.
신이시여! 나를 도우소서…..마음스캔, 그 이후에 행동이 주어진다면 분명 정신과 재물의 가난한 사람아라는 명찰을 때어놓고 큰 불편없이 살아갈수 있음을 경험하며 살 수 있다. 이런일은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시간과 장소와 방법이 주어져야하기에 비영리단체인 한인고민방에 노크해주세요. 코로나 19로 인하여 세이프웨이 커뮤니티룸은 잠정적으로 별도의 지시가 있을때까지 문을 닫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