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해서 일하고 있는데 총괄 매니저가 주방에 와서 우리 회사 더 이상 직원 식사를 해주지 않기로 했으니 프로덕션에 가서 일하겠냐고… 프로덕션에도 지게차 운전이나 기계 다루는 일을 하지 않으면 몸쓰는 일밖에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괘씸한 마음 만든다.
그래도 2시간 하여 일하면서 생각하다 옆 지기한테 메시지 보냈는데도 답이 없다. 전화도 받지 않는다. 가까운 누군가에게 그냥 말하고 싶은데 아니 말을 해야 할 것만 같은데 말할 기회가 없다.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띵하다.
지난번 베트남으로 가기 전날도 그리고 화요일도 어제도 계속 내가 만든 음식을 쓰레기라고 말하던 사장이 태도가 이상한 걸 눈치챘어야 했는데 눈치를 챘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다. 오후에 총괄 매니저한테 내가 30여 년 조리사 생활만 해왔고 포장하는 일은 할 수 없다.
그냥 정리해 고용자를 줘라. 하니까 부서를 크로 칭하는 것이니 그렇게 써주겠다고 한다. 사실 포장일을 한다고 무시한 다거니 그런 게 아니라 현장직으로 들어가면 프로덕션 매니저와 같은 내 임금을 주고 나를 오래 일을 시킬 것 같지 않아서 이었다. 조금 시키다 핑계를 대고 내보내려 할 것이 분명하였으니…사전에 2주의 시간을 주고 노티스를 주는 것은 노동자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고용주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이번 주 금요일까지란 데 이틀 남은 상태에서 다른 부서로 갈래하면 예 할 줄 알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직원의 생살여탈권은 내가 쥐고 있다는 것을 과시라도 하듯이 베트남에 돌아간 지 일주일 만에 다시 나타나서 2일 동안 스트레스만 팍팍 주다가 해고통지나 다름없는 식당 크로싱이란 명제를 툭 던져놓고 자긴 어제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총괄 매니저가 사전에 미리 통고해야 하는데 어제 쇼핑하러 간다니까 다음주에 쓸 거 쇼핑할 필요가 없다고 할 때 느낌이 이상하긴 했다. 그리고 총괄 매니저 얼굴이 상당히 굳어 있어서 화가 난 게 아닌가 했었는데 사실은 내게 어떻게 말해야 하나 고민했던 듯하다.
아니 휴가 전부터 나는 육감으로 내 집에 위험을 감지했는지도 모른다.
캐나다에 이민 와서 처음엔 정말 가진 돈은 없고 취업은 안되고 정말 입이 바짝바짝 타 들어갔었다. 그리고 9.11사태 때 그 사태가 나의 직업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대규모 정리해고. 정리해고 후에 그 회사에서 다시 일을 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일하고 있는 친구도 있지만 난 당시 다른 직장을 구한 상태라 돌아가지 않다가 사장이 매출로 계속 회의 때마다 쪼여와서 그만두고 내 사업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직장을 몇 번 옮기고 몇 달밖에 일을 못한 직장이 있기도 했지만 내 의지하고는 상관없이 불쑥 찾아오는 손님처럼 불행이 찾아오면 정말 준비 못 하고 있다가 어퍼컷 한 대 맞은 느낌이다.
세상에 철밥통 직장도 많은데 왜 내겐 계속 힘든 일이 계속될까 싶기도 하다. 한편으론 내가 만든 음식을 쓰레기로 부르는 사장을 더 이상 참고 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후련하기도 하다. 오늘 사장이 쓰레기라고 부르던 음식을 직원들이 더 맛나게 먹어서 남은 음식이 없어 기분이 좋다. 사실 사장은 직원들을 차별한다. 대놓고 사무실 직원과 현장 직원을 차별한다. 현장 직원들에겐 주지 않는 음식도 사무실 직원들한테는 따로 챙겨서 나누어 먹이거나 선물도 따로 사다가 돌린다고 들었다. 격려의 말도 사무실 직원들한테 더 많이 한다. 그럼에도 자기 딸한테 어느 누구도 회사일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다고 불평한다. 자기가 하던 일을 가르치고 나면 오너 딸이 자기 일을 하게 되고 직장을 잃게 되는데 누가 자기 잡을 없애려 할까. 이민 오기 전만 해도 캐나다나 미국은 청소만 해도 대접받으면서 살 수 있다고 듣고 그렇게 알고 이민을 왔다. 하지만 대접받는 청소 일은 학교 청소 같은 노조가 있는 일이었다. 쓰레기차를 운전하는 일조차도 괜찮은 직업이라고 대부분이 백인이다. 공사장에서 교통신호를 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백인이다. 내가 다닌 캐나다의 직장도 모두 사무직이 우선이다. 현장은 한수 깔고 무시하는 게 맞다. 어떤 직장에선 사무실은 에어컨이 빵빵 들어오고 불을 써서 더운 주방엔 에어컨이 없이 선풍기를 돌리니 뜨거운 바람만 도는 곳도 있다. 지금 일하는 직장도 그렇다. 총괄 매니저가 내가 휴가 갔을 때 며칠 주방에서 일해보고 주방이 너무 덥다고 몇 번을 말하더라고 하더란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현장직은 또 백인 비율이 높다. 이민자이니까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고 한다. 나는 그러했으니 자녀들은 사무실에서 좀 편하게 근무하길 원하는데 자녀들은 그런 마음을 또 몰라준다. 그리고 힘든 일을 골라서 하면서 날마다 불평을 한다. 이런 직업이 좀 더 나을 거 같은 데라고 조언하면 그건 아빠가 원하는 직업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긴 하다. 캐나다에 와서 보니 경찰도 한국 경찰하고는 대우가 사뭇 다르다. 그래서 경찰이 되면 어떻겠냐고 하니 극구 반대로 가는 자식을 보면서 마음이 아프다. 세무서든 시청이든 직장생활을 계속하려면 철밥통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좋으면 아빠가 하란다.
아빠는 이미 현장에서 뒹굴어서 또한 네이티브 영어를 쓸 수 없어서 그런 직업을 가질 수 없는데도 말이다.
힘들 때 자녀가 든든한 직장에 일하면 괜히 힘이 날 것 같은데 자녀들은 그 마음을 몰라준다. 그럼에도 오늘도 꿈을 꾼다. 좀 더 좋은 직장에서 사람으로 대접받으면서 살아가는 캐나다 생활을 말이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남들은 집들이 올라 밀리언 에어가 되었다고 해도 렌트비가 많이 오르지 않은 것에 감사한다. 수입에서 렌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50%가 넘어서 살기가 더욱 힘들어진 밴쿠버는 더 이상 이민자들이 꿈꾸는 꿈의 이상향이 아니다. 거기다 직장의 불안은 삶을 위태롭게 만든다. 그래도 살아있어 좋고 저승보다는 이승이 좋다지만 순간순간 지옥을 경험하기도 한다. 기업은 능력 있는 사람만을 쓰려고 하고 노동자는 누군가 자신의 능력을 알아봐 주고 능력을 키워갈 수 있는 직장에서 일하길 원한다. 기업은 이익을 추구하고 노동자는 삶의 질을 좋게 할 직장을 원한다. 삶의 질을 좋게 한다는 것은 적정한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있으며 노동시간을 잘 지키고 베네핏도 모두 갖추고 있으면 좋지 않을까?
어쩌면 서로가 바라보는 곳은 곳은 같은데 서있는 곳이 달라서 달리 보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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