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전부터 남편이 살림을 맡았다.
나는 윌체어에 앉아 말(言)로, 남편은 행동대장으로 살림살이 대장정에 들어갔다. ‘오른쪽? 아니, 아니, 왼쪽에 …’  뭐든 한 번에 찾아 내는 건 무리다. 포스트잇에 번호를 써서 좌악 붙여 놓았다. 주방의 그릇장, 서랍장, 정리장, 이쪽 저쪽 냉장고 그리고 소소한 함까지 … 한결 수월하다. 말을 날리기보다 손짓, 눈짓으로 통할 때도 있고 짧게 말하거나 명료하게 풀어 놓으며 남편과 조율하고 있다.
아들네가 가끔 배달시켜다 먹는다는 ‘집 밥 반찬’ 가게에서, 우리도 일주일에 한번씩 배달을 시키니 반찬은 해결되었다. 과일, 유제품 등을 사는 것도 남편 몫이니 남편이 더 바빠졌다.  골유합이 빨리 되어야 한다고 소 꼬리를 한 아름 사 왔지만 아무리 인터넷 검색을 해도 도저히 끓이는 방법을 모르겠단다. 할 일을 앞에 두고 못 보는 탓에, 와인 바 의자(다리가 긴)를 주방에 놓아 달라고 하고 그 위에 걸터 앉았다.  ‘꼬리를 한 시간 정도 담갔다가 핏물을 빼고, 한 번 끓여서 그 물은 버리고, 정수기 물을 가득 넣어 가며 4시간을 고아야 한다.’고 하니 끄덕끄덕 …
나는 가스 불 두세 개를 켜 놓고 끓이고 볶고 하면서 한 번에 음식을 후다닥 하는 편이다. 잡다한 주방일도 초스피드로 끝낸다. TV 보며 인터넷 검색하고 친구들과 문자 날리고 서너 가지는 거뜬하다. 남편은 절대 아니다. 주방에선 한 가지씩 만 가능하다. 천천히 하나씩 하면 될 텐데 뭐 하러 서두르냐며 오히려 나를 힐난한다. 모든 게 내 탓이다. 남편에게 주방일을 부탁한 적이 없다. 언젠가 설거지 맡겼다가 앞치마는 물론 주방은 물천지가 되었고, 엄지 척하며 끓인 라면은 바싹 졸아 볶음 라면이 되었으니 주방일에 관한 한, 그 이후 전설이 되었다. 내 맘 편하고자 주방일은 나 혼자 끌어안기로 했다.
주말에 아들이 다녀갔다. 빨간 장미 한 다발과 최신형 마사지 기기, 입맛 돋우는 음식 등을 바리바리 차에 싣고 …  다치지 않은 발도 무리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가끔 맛사지도 받는 게 좋겠다고 한다. 집안에서도 크러치보다는 윌체어가 편한데 손바닥이 아프다고 하니 가죽장갑을 대령한다.
청명하고 햇살이 이렇게 좋은 날, 숲 속의 맑은 공기를 쏘이자며 윌체어에 나를 태우고 바람 타듯 센트럴 파크로 향했다. 아들이 어릴 때, 유모차에 태우고 공원으로 백화점으로 훌훌 다니면 아들은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지금은 엄마를 윌체어에 태우고 산처럼 듬직한 아들이, 3주 만에 산책 나온 나를 기운 나게 한다. 나풀거리는 모자 사이로 상큼한 바람이 손뼉을 치며 나를 반긴다. 쏟아지는 햇살처럼 거리낌 없이 오랜만에 아들과 달큼한 얘기를 나누었다. 아들 앞에선 왜 잊었던 감각이 새록새록 깨어나고 무장해제가 되는 것일까.
아들은 집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도울 일이 없나 찾아 다닌다. 내 컴퓨터 2대를 양쪽에 켜 놓고 이것 저것 체크하며, 요즘은 엄마가 컴퓨터를 적게 하여 그건 다행이라고 위로한다. 청소기도 돌리고 내가 흩트린 책도 정리해 주고 아이폰과 아이패드도 내 가까이 놓아주고, 아들은 자기집으로 돌아갔다. 통증보다 먼저 약해지려는 엄마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서 …  말수가 적고 속이 깊은 아들이 이처럼 살갑게 구는 건 왜 일까.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一家를 이루고 살아가며 부모에 대한 각별한 정이 더욱 더 생겨난 것일까.
2년 전에 서울에서 교통사고로 오른 발에 심한 찰과상을 입은 적이 있다. 이번엔 왼발이 골절이 되었다. 발등의 가느다란 뼈이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남편이 나를 위로한다. 특별히 조치할 건 없고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붙는 다니 의연하게 기다리자. 골진이 나오고 골유합이 되려면 10주 이상 걸린다고 한다. 아픔이 잠시 들여다보는 사이 가족에 대한 사랑을 되새기고 힘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면 차라리 이 고통을 착하게 받아 들여야겠다.
저녁을 깔끔하게 차린 남편이 식탁으로 이끈다. 이제 남편은 빠른 속도로 지구인으로 진입중이다. 내가 자유롭게 움직이면 다시 외계인으로 복귀시켜야 하나.

문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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