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대 초 이탈리아 빈민가의 아이들은 방치되고 있었다.
그저 먹고사는데 급급한 부모들이 일 하기에 정신이 없을 때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은 할 일 없이 마을을 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보다 못한 뜻있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 아이들을 한 건물에 모아서 관리하려고 했지만, 그 사람들 역시 아직 어린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 몰랐다.
한참을 고민하던 중에 의사이자 교육자인 한 여성이 모두에게 말했다.

“밝은 빛이 들어오는 따뜻한 교실에
아이들의 몸에 꼭 맞는 책상과 걸상을 마련합시다.
그리고 아이들을 순수하게 지켜봐 주세요.
어느 순간 아이들이 자기 일에 몰입하면
교사들은 간섭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녀의 말에 의아해했고, 줄 맞춰 서는 것도 못 하는 아이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무서운 선생님이 아이들을 호되게 다루어야 할 것 같은 생각만 들 뿐 모두들 당황 해 하며 서로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의 변한 모습에 지켜보던 사람들은 놀라고 말았다.
식사 시간에 줄을 서서 음식을 받고, 자기보다 작은 아이를 돕고, 어느 순간 글을 읽고 쓰게 된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감사 인사를 말할 줄 아는 어린이들이 되었던 것이다.
모두가 기적이라고 감탄할 때, 그 여성 교육자는 담담히 말 할 수 있었다.

“기적이 아니에요.
어린이들은 내면에 보물을 가지고 있고,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에요.”

어린이는 어른들이 일을 하는 동안 말썽이나 부리는 존재라고 생각했던 때, 이들을 가만히 지켜봐 주고 기다려주자고 말했던 이 사람이 바로 세계적인 교육자 마리아 몬테소리이다.

내 아이가 어린시절,
가장 처음으로 접했던 교육 역시 이와 비슷한 교육이었다.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아이들에게 주입식으로 접근하는 방향은 어쩜…그 아이들만이 가진 가치있는 ‘내면의 보물’을 성장시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컴퓨터 자판 앞에 앉았다.
10년의 생활이 그저 잔잔하고 고요한 삶으로 추억이 된다면…지금은 많은 걱정과 포기라는 부끄러움도 선택해야 하는 인솔자 자리에 서 있는것이 부담이 되는 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 부부처럼 아이들의 교육을 돌보는 일을 할 때, 아이들과 부모를 어느 정도 알고 시작하는 삶은 축복인 것이다. 함께 생할을 할 때도 학습과 진로를 감당하는 보호자 일때도 그렇다.

지금은, 서류상의 인적 상황과 공항에서 맞이 하는 첫 대면으로 시작하는 유학원의 지사장이라는 자리는 타이틀만 근사할 뿐, 매 순간 긴장감의 연속이 된다.
얼마 전 1월은, 꽤 많은 아이들과 인연이 시작된 2020년이었다.

몇몇 아이들은 우리 가정으로 직접 돌봄을 받기 위해 들어왔고 몇 아이들은 캐네디언 가정으로 인솔이 되었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홈스테이를 옮겨야 한다는 소식들이 한 두명씩 늘어나며 혼란스러운 생활이 시작된 건 생각하지 못한 일과였다.
이유는, 대부분이 음식에 대한 불만이었고 집과 시설이 낡아 불편하다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불만들 중에 사람으로 오는 불평은 거의 없었다.
문화가 다른 가정으로 흡수가 되기 위해선 어쩜…가장 먼저 포기해야 하는 것이 음식과 주거 환경에 대한 기대치이지 아닐까 싶은데….우리 아이들은 타향 생활을 할 준비가 충분히 되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

캐나다의 집들이 나무로 지어져 소음에 약하고 많은 캐네디언들이 오래 된 친구를 돌보듯 지내는 주거 시설은 낡았다고 보기보다는 이들의 자연스러운 삶이고 역사인 것인데…
도심 속에서 현대화 된 생활을 했던 우리 아이들에게는 불편할 수 있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런 상황을 맞이할 때, 우리와 부모님이 하나 된 마음으로 조금 더 익숙할 때까지 기다려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면 좋겠지만…대부분은 그렇게 되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서 우리는 이번에도 지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한 번쯤은 깊게 생각 해 보아야 하는 문제이긴 하다.

유학이라는 큰 변화의 선택을 하였는데, 그 나라의 문화에 흡수 될 준비가 안 되었다면 곁에서 바라보는 우리의 판단은 공부와 생활을 모국에서보다 편하기 위해서만 유학을 선택했다고 밖에는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환경을 받아들일 자세는 부족했고 돌봐 주는 어른들과의 관계는 주종의 관계만이 유지 되는 이 현실이 가슴이 시려오기도 한다.
식사 제공과 라이드, 청소, 빨래 등 종의 입장에서 제공할 일들에 대한 평가로 아이들의 대화를 스쳐가며 듣는 일들이 일쑤인 요즘.
10여년이 지난 아이들과의 삶이 때론 가치없게 여겨지는 상황이 속상한 것은 감출 수가 없는 마음인 것이다.
그런 마음에서 이제 유학을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이야기 하고 싶은 작은 마음을 표현 해 보려한다.
이렇게…
안타까움과 걱정되는 마음이 드는 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옮긴 아이들은 짧은 유학생활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도 했고…때로는 한국인의 가정으로 들어오기도 하였다.

우리 부부가 아이들을 맡을 때 보는 것은 꽤 쉬운 모습이다.
공부를 잘 하거나 욕심이 있는 아이 보다는 잘 웃고 긍정적인 모습의 아이들이다.
그런데…요근래 아이들의 뾰족함은 물질적인 픙요와 지나친 보호로 길들여진 안타까움의 결과가 아닐까 생각 해 본다.
늘상 아이들의 곁에서 함께 식사하고 지내는 식구인 우리들 모두의 중요함을 가르치지만…10여년이 넘는 시간을 그리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은…
나눔과 배려 그리고 참을성이 부족한 듯 싶다.

짐작컨데, 처음 유학의 시작은 기대로 벅찼을 것이다.
학교 선택과 영어 공부에 대한 준비 또는 현지에 와서 필요할 물품 구입 등 보이는 것에 대한 준비로 바빴을 것이다.

하지만, 내 아이가 타국 생활을 하게 될 때 필요한 준비는 생각의 전환이다.
예를들어, 음식을 먹고 자신들의 그릇을 싱크대 개수대에서 물로 대강이라도 씻어 식기 세척기에 넣는 모습, 어른과 친구들을 만나도 밝게 인사를 하는 다정한 모습, 내 주변을 정리할 줄 아는 예의 등의 아주 기본적인 생활을 알고 시작하는 것이 더 중요한 때도 있다.
유학 생활이 그러하다.
이 나라는 더불어 사는 곳이다. 나만 중요시 여긴다면 한 동안은 너무 힘들게 생활이 시작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문화든 학습이든 배우러 왔다는 마음 가짐과 불편함을 받아들여 나만의 스타일로 변화 시키는 융통성 또한 값진 생활이 된다.

옆 집 캐네디언 집으로 의탁한 한 소녀는 처음엔 당돌함에 당황도 했지만, 그 모습이 지금은 당당함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문화가 달라서 다가왔던 불편함을 당연하다고 여기며 맞춰가는 현명함도 기특함이었고 불과 1학기가 지났을 뿐인데…많은 일에 도전하며 자신을 만들어가는 아이의 모습을 예쁘게 봐 주지 않을 어른은 없을 것이다.

언젠가 통화를 나눈 어머님은 말씀하셨다.
“우리 딸 예쁘게 봐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그래도 아직은 미성숙한 아이니 야단도 쳐주시고 모르는건 가르쳐도 주세요”
이런 어머니 아래서 교육 받은 아이는 자기 몫을 잘 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하며 또 한번 미소가 지어진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에게 큰 자부심을 느끼며 지금도 이 위치에 서 있는 것이다. 시작은 미흡하겠지만, 아이들의 생각의 건강함이 우선시 되고 함께 지내는 삶이라는 것을 인정하며 부딪히는 새로운 곳에서의 시작은~~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각각의 아이들은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그들만의 보물 한 가지씩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끌어내 주는 것은 어쩜…
어른들의 기다림과 바른 가치관을 보여주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지금은, 서로 다른 생각의 구성원으로 요동치는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사실 끝은 웃음으로 마무리가 될 것이라는걸 오랜 경험으로 알 수 있다.
놓지않고 함께 가는 선택이 아이들과 그들 가정에 좋은 선택이었고 축복이 될 것을 항상 기도하며 오늘도 아이들과의 생활에 사랑을 깃들여 보려한다.

지금 3월 봄의 시작은,
초록 물방울같은 새싹들이 산과 들에 손을 흔들며 봄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얼마 지나지않아 이 작은 손짓들은 푸른 큰 숲을 이룰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새롭게 시작하는 우리 아이들도 봄 햇살을 맞으며 크게 성장할 것을 기대하며 2020년 새 봄을 맞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