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년 전 그때는 훨씬 젊었기에 하루 동안 구석구석 놓치지 않고 다 구경하고픈 욕심이 과해서 지치는 줄도 모르고 이리저리 뛰어다녔었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는 동물원 전체 한 바퀴를 돌며 동물들을 구경하고 사진 찍느라 만 팔천 걸음을 걷고는 거의 기진맥진해서 발바닥을 딛고 걷기조차 힘들어져 혼이 났다.
야속한 세월이 우리 부부만 비껴간 건 아니었다. 몸은 물먹은 솜처럼 천근만근 피곤했지만, 맘과 눈은 여행에서 누리는 호사로 말미암아 어느 때 보다 행복한 하루였다.
다음날 길고도 아름다운 파란색 코로나도 다리를 지나 코로나도 섬에 위치한 호텔 델 코로나도를 찾아 메릴린 먼로와 만났다.
호텔 델 코로나도는 건축가 제임스 리드가 나무만을 이용해서 빅토리아 양식으로 1888년에 지은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의 해변 리조트로 국가 역사 문화재로 지정된 역사의 일부분이다. 이 호텔은 루스벨트 대통령이 가장 사랑한 휴양지로 유명하고, 또한 메릴린 먼로의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 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호텔 지하와 1층 선물 상점 안에 전시된 오랜 사진 액자들 속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메릴린 먼로가 이 호텔에서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보내서인지 그녀의 수많은 사진과 온갖 종류의 선물 아이템들이 즐비했다. 코로나도 해군 기지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지만 군사 비밀 요지라 접근조차 할 수 없어 돌아오는 발걸음이 아쉬웠었다. 멕시코 국경 근처, 우리가 묵는 숙소 근방의 멕시칸 음식점에서 본토 식 음식으로 맛있게 먹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저렴한 가격 대비 음식이 푸짐하고 꽤 맛이 있었다.

세 번째로 방문했던 큰 도시는 바로 로스앤젤레스. 여행하느라 제대로 된 한정식을 먹지 못했었는데 웨스턴 몰에 위치한 B 식당에서 점심을 실로 오랜만에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베벌리 힐스, 로데오 거리, 한국 타운, 일본 타운, 마지막으로 차이나타운을 관광했다.
다음날은 에나 하임 디즈니랜드에서 하루를 온전히 보냈다. 종일 땡볕에 2만 보가 넘는 걸음을 걷고, 아찔하게 토 나오는 롤러코스터를 아이들과 같이 타고 다녔더니 속이 울렁거려 저녁조차 먹을 수가 없었다. 신이 난 아이들과 더불어 내 나이를 잊고 동심으로 돌아가 소리도 지르고 환호하며 웃고 떠들며 보낸 참으로 잊히지 않을 하루였다.
딸 아이가 아찔한 롤러코스터를 처음 탄 후에 “엄마 내 soul이 없어졌어”라고 하길래 뭔 말인가 자세히 들어보니, 정신이 아득해져 “영혼이 가출했다”라는 의미인 걸 알고는 온 가족이 박장대소했었다.
20년 전 올랜도 디즈니 월드에서는 네 살배기 어린 아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다녔었지 회상하며, 유수 같은 세월의 흐름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밤 9시 30분에 휘황찬란한 불꽃놀이를 감상했다.
밤하늘의 이곳 저곳에 디즈니 불꽃놀이가 수놓는 마법 같은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포물선과 더불어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며 팡팡 터지는 불꽃들…… 넋을 잃고 바라보며 헤벌쭉 감격해 하는 딸아이의 반응이 인상 깊게 기억에 남는다.
연이어 10시 30분에 전기쇼 거리행진 (Main Street Electrical Parade)을 맨 앞줄에 자리를 잡고 쪼르르 앉아, 온 가족이 처음으로 함께 구경했다.
올해 2017년이 디즈니에서 ‘전기 쇼 거리행진’을 마지막으로 지켜볼 수 있는 역사적인 기회라기에 더욱 의미가 있는 짧지만, 마음에 오래도록 남을 공연이었다.
내 딸은 참으로 조용하고 사려 깊은 성품으로 공부도 꽤 잘하고, 미술적인 감각 또한 뛰어나 예술(Art)쪽으로 전공을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세상 물정을 하나도 모르는 철부지 같아서 이 험한 세상 풍파를 어찌 헤치며 살아갈지 좀 걱정스럽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이번 2주간의 가족 여행을 통해 단단히 갇혀 있던 자신만의 작은 세상의 껍데기를 조금씩 깨고 허물며 여물어져 가는 것을 느꼈다. 딸아, 우물 안 개구리 같던 좁은 시야를 벗어나 드넓은 세계를 향해 끝없이 너의 꿈을 맘껏 펼칠 수 있기를……
그리고 우리 가족이 함께하는 이번 여행의 추억을 언젠가는 되새기며 그때가 참 좋았더라고 회상하기를……
다음 날은 디즈니랜드의 강행군으로 모두 과하게 피곤했던 터라 느즈막이 산타모니카로 출발했다. 그 유명한 Bay Watch의 촬영지,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수영을 즐기고 놀았다. 뜨거운 태양과 시원한 바람, 가슴이 확 뚫리는 파도의 하얀 거품, 넘실거리는 쪽빛 바다 모래사장을 맨발로 거닐며 아직은 좀 차가운 태평양 바다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라스베이거스로 향하는 도중에 잠깐 들렸던 할인매장 (Barstow Outlets)에서 맛보았던 인앤아웃( InNout) 햄버거. 1948년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 유명세를 치른다는 그 햄버거는 햄버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신토불이인 나의 입맛마저도 사로잡았던 정말 맛있는 햄버거였다.
캘리포니아 주 남부에 있는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모하비 사막, 소금 염전을 품은 황량한 데스 밸리와 옛 금광촌 테마 공원으로 영화세트장처럼 꾸며진 고스트 타운을 거쳐 드디어 일자로 길게 뻗은 사막 한가운데 불야성의 도시, 네바다주의 최고의 관광과 도박의 도시인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에 도착했다.
오후에 도착한 터라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거리 관광에 나섰다. 멋들어진 거리 풍경을 일일이 카메라에 담

느라 인파 속을 헤치며 분주히 다녔다.

문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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