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렌토(Sorrento)

카프리섬에서 조그만 배를 타고  20분 거리에 위치한 소랜토에 도착했다.
배에 내려서 바로 앞에 마치 높은 절벽이 받처주는 듯 한 곳이 눈에 펼처진다.  이 절벽을 “Z” 자로 된 좁은 길를 타고 올라가니 시내가 그 산 위에 있었다.  카프리처럼 좁은 길과 고풍 건물 양식의 아름다운 색깔이 인상적이었다. 높은 절벽 위에 세워진 오래 된 고급 비토리아 (Grand Hotel Excelsior Vittoria) 호텔에서는 세계  3개 미항 중의 하나인 나포리만 (灣) 의 파노라믹 한 경관이 너무나도 아름답다고 한다.
소랜토는 유명한 나포리 민요 “돌아오라 소렌토” (Torna a Sorrento)로 우리 귀에 익숙한 노래이며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의 열창이 나로 하여금 그 곳을 더 많이 동경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 노래의 가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아름다운 저 바다와 그리운 그 빛난 햇빛 내 맘 속에 잠시라도 떠날 때가 없도다. …돌아오라 이 곳을 잊지 말고 돌아오라 소렌토로 ”
이 곳의 아름다운 바다의 찬란한 그 햇빛은 바로 이 노래의 선율을 연상하고도 남는다
소렌토에는 보석 디자이너들이 마호가니나 아이보리로 직접 예술품을 만드는 것을 가까이서 관찰 할 수 있었고 폼페이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여 우리 일행은 한 시간 동안 자유시간을 이용하여 쇼핑을 했다.

 

폼페이(Pompeii)

소렌토에서30분간 버스를 타고 폼페이에 도착하였다. 필자가 폼페이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은 50년전에 토론토에서 만난 이태리에서 잠시 일한 경험이 있는 어떤 한인으로부터였으나 당시에는 도저히 믿기가 어려웠다.  폼페이는 기원전 6-7세기경에 바다에 인접한 그 곳의 기후와 토양이 좋아 베수비우스 (Vesuvius) 산 밑에 2만여명의 사람들이 여섯 개의 조그만 마을을 이루어 살았었다고 한다.
서기62년에 폼페이에서 처음으로 화산이 폭발하고 지진이 일어났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베수비우스 산이 한번 폭발하고 나서는 잠자는 화산 (dormant volcano)이라고 믿고, 그 자리에 새로운 포도밭을 가꾸고, 농가와 좋은 별장도 짓고, 재건을 꽤하였으나, 서기 79년에 잠자는 화산이라고 여겼던 베수비우스 산에서 화산이 다시 폭발하여 마을 사람들이 마치 뜨거운 용광로에서 흘러 넘치는 섭씨  250도를 넘는 광물과 화염에 디어서 죽던지 타서 죽고 아니면 화산의 폭발로 인해 생긴 개스 때문에 숨이 막혀 폼페이의 인구  2천여명이 사망하였다고 한다.  두번째이자 마지막 화산 폭발은 폼페이 도시를 4-6 미터의 잿더미로 묻어버렸기 때문에 거의 2천년 동안 방치해 두었었으나 약 1백여년 전부터 뜻과 관심이 있는 고고학자, 화산 연구전문가 및 지역의 유지들이 힘을 합하여 베수비우수 화산 폭발로 생매장되었던 사망자들, 당시의 가옥, 벽화, 공동시설, 신전 등을 발굴하여 현대인과 후세들 그리고 관광객들과 인류를 위하여 폼페이의 귀중한 문화적 유산을 복구하고 개방하여 매해 2백 5십 만명의 관광객들이 이 곳을 찾는다고 한다.
특히 우리의 주목을 끈 발굴물 중에는 화산 폭발 당시 앉아있던 한 남자의 상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석고처럼 2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아주 잘 보존되어 있었다.
우리가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아주 최근에 발견된 어느 부자집 벽화에는 신화에 나오는 나르씨서스(Narcissus)가 연못에 반영된 자신의 이미지에 매혹되어 자기의 열정에 불타버렸다고 말하는 데이는 1세기 로마시대에 흔했던 주제였다고 한다.
우리는2천년 전에 폼페이오에 살던 사람들의 유적을 보며 느낀 것은 그때나 지금 세상이나 별로 다른 것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그때 이미 그들은 부억에서 오븐과 멧돌을 사용했다.
(다음호에서는산토리니(Santorini) 와아크로폴리스(Acropolis)를소개하기로하겠다.)

 

글 ·사진 김봉환박사 (밴쿠버노인회부회장 겸 노인열린대학장)

김봉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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