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을 지나는 밴쿠버는 밤새 거친 비와 바람으로 우리네의 잠을 설치게 하였고,아침 날씨를 걱정하는 나를 비웃느냥 언제 그랬냐는 듯 맑은 하늘로 변덕을 부린다. 요사이 나는 계속 이 일을 해야 할지를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 뒤집기를 반복 중이다.
관리형 홈스테이 8년째인 이 곳 생활에 그래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나를 믿는 이들이 있다는 뿌듯함 때문이었다.허나, 요즘 내게 일어나는 일 들은 나는 바보이고, 멍청이라는 생각에 눈물이 뚝뚝 흐를때가늘어난다는 것이다.
 
나는 아이가 한 명이다. 아들이고 순하며 맑은 웃음을 가진 아이. 그리고, 이 곳 밴쿠버에 오기 전 내 아이가 가진 별명은 ‘언제나 맑음’이었다. 아이가 원하여 이 곳에 오게 되었지만, 생각 했던 것 보다 스스로 적응을 잘 하는 듯 보였고 다른 아이 보다도 빠르게 발전하는 모습 때문에 어쩜, 함께 온 아이들에게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타국 생활을 시작 하며 유일한 내 아들은 함께 온 형에게 큰 아들 자리를 내 주었고, 밥을 먹을 때나 무언가를 함께 할 때도 첫째 아들 하며 형을 먼저 챙겼으니… 아들 속이 어떠 했을지 7년이 지난 지금에야 그 마음을 생각해 보는 나는 나쁜 엄마임에 분명하다. 우는 아이젖 준다는 옛 말처럼… 내 아이는 울지 않았기에 그저 괜찮은 줄 알았다. 그리고 그 사이 나머지 아이들은 무럭무럭 성장하여 각자의 길을 잘 가게 되었고 여전히 곁에서 잘 지내고 있다.
 
주변의 사람들은 내 아이는 부모와 함께 있으니 좋겠다고, 나머지 아이들은 얼마나 부모가 보고 싶을까 라고 말들한다. 맞는 말이다.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 말은 ‘우리 아이가 손이 많이 가는 아이였다’면이라는 전제가 붙는 것 같다.
지금도 공부 방 시간이 되면, 아이들 공부 지도를 해 주고 테스트를 보기도 하며 아이들의 불평 불만에 대응해 주는 조력자 역할을 하느라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강제로 그러한 역할을 시킨 것은 아니지만, 아빠,엄마의 일이니 당연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렇게 문제가 없는 듯 커가고 있는 아이에게서 얼마 전 힘든 말을 듣기 전까진 잘 가고 있는 줄 알았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홈스테이 아들임이 너무 싫다는 내 아이…
아이들이 생활이나 서로에 대한 불평을 늘어 놓는 순간에도, 내 아이 또한 그들에게 할 이야기가 많지만 할 수 없고, 어느 곳을 가든 자신의 공간 또는 시간을 가질 수 없는 일상이 행복하지 않았단다. 그러한 마음을 헤아리지 못 했던 나는 가슴에 피멍이 든다.
 
약 2년쯤 되었다. 새로운 아이들을 받기 시작한 것은… 이 아이들과의 만남은 나와의 직접적인 인연이 있었던 게 아니라 지인들의 소개로 함께 하게 되었다. 새로운 아이들과의 생활은 기존의 아이들과는 많이 다른게 사실이다.
나는 아니라고 하지만, 어떤 아이와 부모에게 나는 그저 하숙 집 아줌마였다. 내가 그렇지 않음을 보이기 위해 교육자 마음으로 아이들의 플랜을 설계하고 엄마 마음으로 인성과 건강을 챙겨 좋은 성적, 건강한 모습으로 바로 서게 하여도…
뒤로 들려오는 이야기는 우리 아이가 뛰어나서 얻은 결과이고, 돈을 주고 돌봄을 받으니 아이에게 무엇이든 당당하게 요구하라는 부모의 가르침이다. 이런 말들과 태도에 항상 마음이 상하니 엄마의 약한 모습을 아이가 지켜 보는 입장에선 이 생활이 좋을리가 없을 것이다.
처음 시작하던 7년 전에는 아이들 대신 늘 대표로 꾸중을 들었고, 좋은 습관과 가정 교육을 실천하게 하였으니 외아들로서 홀로 받을 수 있는 사랑을 여섯으로 나눈다는 건외로운 마음을 더 크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배움과 음식, 사랑은 나누는 거라는 부모의 가르침은 고작 열 두살 아이에겐버거운 짐이었을 것이다.
 
지금 지내는 아이들 또한 당연히 모두 착하다. 그저, 이 짧은 세월에도 세대 차이가 나는 것뿐일 것이다.
아이들 입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 아빠, 엄마는 어느 대학 대학원 나왔다. 차는 무엇을 탄다.
내가 이걸 해 내면 무엇을 사 주기로 했다’ 등 겉치레를 표현하는 것에 익숙한 신세대인 것이
다. 내적성장보다 허례허식을 먼저 가르친 한국 기성세대의 단면인 듯하여 한쪽 마음이 허전하다.
 
처음 함께 한 아이들 부모들은 ‘그 곳에 있는 이모 이모부가 네 부모다’라고 일러 주었기에 가정의 분위기는 순조롭게 순항 할 수 있었고, 힘들었던 상황들도 이겨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한 번씩 어긋나는 일들은 있었어도 서로를 챙김도 익숙해져 가는 그런 사이였으니 적어도 나는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가질 수 있었다. 어쩜, 내 아이도 자신의 자리는 나누었지만 엄마가 보람있어 하였고 정을 쌓아가며 형에게 독방을 내 주어 부모와 방을 사용 하여도 참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지금처럼, 가시가 돋은 엄마는 아니었기에…
여느 홈스테이 가정에서 늘 있을 수도 있을 부풀림이 섞인 고자질과 무례함도 처음 겪은 나는 단련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매번 놀라고 운다면, 그래서 그걸 보는 내 아들이 힘겹다면 나도 바뀜이 필요한 것 같다. 모든 것에 너그러워질 큰 어른의 마음을 진작에 갖지 못한 것에 고개가 숙여진다.
 
“진작 힘들다 이야기하지”라는 나의 말에 아이는 이렇게 답한다. 유학을 오자고 한 자신 때문에 스트레스나 힘듦으로 엄마는 병을 얻게 되었고, 마음이 힘들어 나약해지는데, 자신까지 힘들다고 한다면 엄마가 잘 못 될 것 같았다고, 그래서 무서웠다고 한다. 이제 성년이 되어가는 자신도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고 싶기에 엄마한테 ‘힘드니 어떻게든 해 주세요’ 하는 거란다.
 
귀 기울일 것 그랬다. 예전, 우리 가정을 소중히 여겨 주셨던 어떤 집사님의 말처럼. 아이가 외로울 수 있다고, 평범하지 않은 아이를 좀 더 특별하게 가르치라는 그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아
여기까지 왔고, 다른 아이들의 외로움이 걱정 되어 소중한 내 아들에게 소홀해져갔던 나는 행복지수 99.9%였던 내 아이를 지키지 못함에 미안한 엄마가 되었다.
지금, 자신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어 놓은 내 아들은 다시 인생을 새롭게 뛰어보려 준비 중이다. 좋은 성적과 활동으로 일찍 졸업 하여 대학교 2학년이 되었지만, 내면적인 갈등을 이겨내고 앞 날을 설계하여 다시 하고자 하는 일을 준비하는 아들에게 지금부터라도 좋은 엄마이고 싶다.
이렇게 살아가는게 아들에게 잘 하는 거라 생각했던 초보 엄마였기에, 아팠던 부분은 지우라고…
아들 때문이 아니라 아들 덕분에 이 곳에 와서 좋은 것도 많이 경험하고 행복했음을 기억하였음 좋겠다. 아들이 새로운 출발을 기약하 듯 엄마 또한 함께 새로운 삶을 준비할 것을 약속한다.
오늘은 많은 아이들의 엄마이모가 아닌, 내 아들만의 엄마 마음을 표현하고픈 평범한 엄마로서 글을 마무리 하여 본다.
진정 사랑한다~내 아들아! 
 
**JNJ 홈스쿨 원장(www.canbced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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